[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스포츠 인기, 스크린으로 옮겨볼까?
2007-12-13
글 : 이영진
60, 70년대 충무로 김기수, 김일, 이안사노, 천규덕 등 인기 스포츠맨 캐스팅 붐
<내 주먹을 사라>

“스포츠맨이 영화에 대량수출됐다!” 1970년 5월 <영화잡지>는 ‘스포츠 선수가 스타가 되었다’며 전 동양챔피언인 권투선수 이안사노와 프로레슬러 천규덕의 영화 출연 소식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1969년 4월에 동양챔피언을 뺏긴 뒤 인쇄업 등에 손을 댔으나 쓴맛을 본 이안사노가 박운교 감독의 <황금의 부루스>로, ‘한국 푸로레슬링’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당수의 귀재 천규덕(천호진의 아버지)이 이만희 감독의 전쟁물 <물쥐도끼>로 데뷔한다는 내용이었다. “손에 그럽(글로브)을 끼던 자신이 얼굴에 분칠을 할 때 뉴앙스가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처음엔) 좀 창피스럽기도 하고 어색했어요.”(이안사노) “이번 출연을 계기로 팬들의 반응이 좋다면 직업을 바꿀 의사도 있습니다.”(천규덕) 링에서 내려와 은퇴를 고민하던 스포츠 스타들의 스크린 진출을 두고 <영화잡지>는 “돌연 영화계에 이변이 일어났다”며 “스타 기근에 허덕이는” 충무로는 이들에게 격려와 갈채를 아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불황 타개를 위한 영화계의 스포츠 스타 영입은 이안사노-천규덕 이전에도 있었다. 김기수-김일이 더 먼저였다. “특유한 맷집과 무섭게 파고들어 마구 부수는 파괴전법”의 복서이자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이었던 김기수는 <내 주먹을 사라>(1966)에서 “상대방 선수의 급소를 타격하여 숨지게” 만들어 은퇴한 뒤 다시 재기하는 권투선수로 등장한다. 김지미, 박노식 등과 함께 출연한 그의 극중 이름 또한 본명인 ‘김기수’. 1965년 1월10일 일본 도쿄 고라쿠엔 경기장에서 동양챔피언 가이즈 후미오를 7회 KO로 물리친 그는 이듬해에는 박정희가 직접 대전료를 지불했던 세계챔피언전에서 이탈리아의 리노 벤베누티를 상대로 15회 판정승을 거뒀으니 그야말로 “국민의 영웅”. 게다가 리노 벤베누티는 6년 전 로마올림픽에서 무릎을 끓은 선수였던 터라 김기수는 드라마틱한 리벤지의 주인공이 됐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권투선수가 <피묻은 대결>(1961)에 주인공 대역으로 출연했다고 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논란이 되고 지탄을 받던 시대는 이미 아니었다.

역도산의 후계자로 일본에서 영웅으로 등극한 김일 또한 김기수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다. 단성사에서 이른바 ‘땜빵 푸로’로 상영했던 다큐멘터리 <역도산>이 2달 넘게 장기상영하면서 32만2880명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듬해 김일의 주요 경기장면을 담은 <역도산의 후계자> 또한 만들어졌다. <주간한국>에 따르면, <역도산의 후계자>는 애초 단편으로 기획되었으나 김일에 대한 세간의 관심으로 인해 결국 “400만원이 투여된” 85분 분량의 장편기록영화로 일단 완성됐다. “우리나라에 두개밖에 없는 시네스코 줌 렌즈가 동원됐고” “현장의 공기도 동시녹음한” <역도산의 후계자> 제작진은 장편기록영화에 대한 흥행의 우려 때문에 적잖이 불안했지만, 첫 시사회 이후 “(제작비) 회수가 손쉬울 것 같다”는 호의적인 반응을 듣고 ‘6개국 친선국제프로레스링대회’‘극동 헤비급 프로레슬링 선수권대회’‘김일과 파 콜린즈의 대전’ 등을 모두 담은 105분 분량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내놓게 된다.

1912년 단성사에서 유각권구락부가 권투 시범을 선보인 이래 1960, 70년대 인기를 구가했던 스포츠맨들의 스크린 입성은 그러나 충무로의 가뭄을 해소할 만한 장대비가 되진 못했다. 1975년 권투선수 유제두를 앞세운 <눈물젖은 샌드백>(1975) 등 스포츠 스타들의 영화 출연은 간간이 이어졌지만, 박정희가 “국민에게 내린 선물”이라는 TV의 위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962년 5월 KBS가 전국장사씨름대회를 시작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작했고” 시청률 싸움에서 뒤질 수 없는 MBC, TBC 등도 “프로권투, 여자농구, 야구, 배구” 경기 등을 찍어 내보냈다. KBS의 경우, “1965년 11월8일 프로그램 개편시 <TV 스포츠>”에서 ‘프로레슬링’을 분리해서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였고, “4일간 프로레슬링을 특집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권투나 프로레슬링을 보기 위해 TV수상기 가진 집이나 다방에 몰려드는 기이한 현상이 점점 일상화되고, 1970년대 들어서는 TV수상기의 보급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한 충무로의 시도가 허사가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참고자료/ <영화잡지> <주간한국> <한국스포츠 100년> <우리방송 100년> <동아연감> <한국현대사산책> <신문기사로 본 한국영화>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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