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다람쥐 밴드의 크리스마스 습격
2007-12-11
글 : 황수진 (LA 통신원)
50여년만에 스크린에서 부활한 다람쥐 밴드 <앨빈과 슈퍼밴드> LA 시사기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인 햇빛 쨍쨍한 로스앤젤레스. 한물간 작곡가 데이브(제이슨 리)는 예상치 못한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된다. 가지런하던 데이브의 집안을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손님들은 바로 천방지축 다람쥐 형제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데이비는 이 귀여운 존재들이 부엌을 엉망으로 만드는 재주 외에도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망이라곤 없어 보이던 데이브의 음악은 다람쥐 형제를 통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자신은 단지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이브와 그의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다람쥐 형제. <앨빈과 수퍼밴드>는 팝 스타로 우뚝 서게 된 장난꾸러기 다람쥐 형제와 작곡가 데이브가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되는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이다. 몇 십년 동안 이차원의 화면에 머물러 있던 이들 사고뭉치 다람쥐 형제는 <앨빈과 슈퍼밴드>에서는 보송보송한 털에 둘러싸인 삼차원 캐릭터로서 그 귀여움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다람쥐 형제는 반세기 전, 로스 바그다사리온 시니어에 의해 탄생했다. 1958년 <Witch Doctor> 음반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장난꾸러기 다람쥐들의 목소리는 느리게 녹음된 노래를 빠르게 돌림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다람쥐 형제 특유의 목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 음반을 만들어냈고 이후 장난꾸러기 앨빈, 영리한 사이먼, 귀여운 테오도르라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텔레비전 만화 시리즈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반세기에 걸쳐 이른바 미국 대중문화의 고전이 된 다람쥐 형제들은 원작자의 아들이자 80년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시리즈의 PD 겸 성우를 맡았던 로스 바그다사리온 주니어와 그의 아내 재니스 카르먼의 공동제작을 통해 2007년 크리스마스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앨빈과 슈퍼밴드>다.

그러나 그저 예전의 다람쥐들을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몇 세대에 걸쳐 고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전만화 캐릭터를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능들이 필요했다. 제작진은 <심슨네 가족들>의 작가인 존 비티의 시나리오와, ‘리듬 앤드 휴즈’의 3D애니메이션 기술을 끌어들였고, 거기에 <다이하드4.0>으로 얼굴을 알린 저스틴 롱, <크리미널 마인드>의 매튜 그레이, 디즈니의 아이돌 스타 제시 매카트니 등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수혈했다. 팝 아이돌 스타의 산지인 LA를 배경으로 한 <앨빈과 슈퍼밴드>는 잠이 달아나는 건강식품이라며 휘핑크림을 듬뿍 담은 커피를 어린 다람쥐들에게 쥐어주는 탐욕스런 프로듀서 이안(데이비드 크로스), 2007년의 대형 스캔들 중 하나인 팝가수 애슐리 심슨의 립싱크 공연을 연상케 하는 립싱크 사건과 야유하는 관중 등, 오늘날 미국 팝 아이돌 세계를 가볍고 신나는 손길로 그려내고 있다. <앨빈과 슈퍼밴드> 정킷은 프로듀서 로스 바그다사리온 주니어가 소유한 샌타모니카 저택의 바닷바람이 부는 앞마당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소중한 자식의 생일파티를 여는 듯한 정킷이었는데, 프로듀서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클래식을 업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다람쥐 형제 목소리 연기한 저스틴 롱, 매튜 그레이, 제시 매카트니 인터뷰

사고뭉치 다람쥐 형제의 목소리를 맡은 저스틴 롱, 매튜 그레이, 제시 매카트니. 세명의 배우가 함께 인터뷰에 참가하자 분위기가 꽤 소란스러워졌다. 롱과 그레이는 비슷한 무늬의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는 누가 먼저 입었느냐 가지고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젊지만, 롱 말대로 너무나 ‘일하고’ 싶어하는 그런 배우들이었다. 무척 유쾌한 삼총사였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저스틴 롱: 폭스에서 전화가 왔다. <다이하드4.0>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폭스랑 관계가 좋다. (웃음) 전화를 받자마자 “언제, 어디로 가면 돼요?”라고 했다.
=매튜 그레이: 그리고 “얼마?”가 붙었겠지. (웃음)
=저스틴 롱: 제일 중요한 부분이지. 사실 엄청 떨렸다. 왜냐하면, 오디션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날아갈 지도 모르니까. 원래 나는 사이먼 역으로 오디션을 받았다. (그러자 그레이가 “정말?”이냐며 동그랗게 눈을 뜬다.)
=매튜 그레이: 결국 내가 붙고 네가 떨어진 것이구나. (웃음)

- 힘든 점이 있었다면.
=저스틴 롱: 더빙하는 내내 로스가 옆에 있었다. 엄청난 압박이다. 생각해보라. 앨빈 목소리를 몇 십년간 해온 로스가 내가 하는 연기를 보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매튜 그레이: 로스는 이전 텔레비전 시리즈 클립을 보여주고는, “이런 목소리와 톤이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과 달라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그러니까 <카사블랑카>의 유명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바로 이렇게 해야 하지만 그건 또 아니다라는 소리랑 같지 않나.
=저스틴 롱: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냥 직접 하시지 그래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기 일보 직전일 때도 있었다. 아니, 빈정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정말 그들이 바로 진짜 목소리였으니까. 왜 나를 쓰려고 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시 매카트니: 업데이트를 원했으니까. 우리는 기존의 캐릭터에 뭐랄까 힙한 요소를 살짝만 가미하면 되었는데, 그게 되게 어려웠다. 클래식에다 뭔가 새로움을 얹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목소리 연기를 해보니 어떤가.
=제시 매카트니: 10회 정도 녹음했는데, 편안 옷차림으로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스틴 롱: 나는 연기할 때 손이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서 늘 의식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나처럼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목소리 연기는 최고인 듯. (웃음)

다람쥐들에게 윽박지르는 연기에 아이들이 화낼까 걱정이다

데이브 역의 제이슨 리 인터뷰

베레모를 쓴 제이슨 리는 인터뷰 내내 껌을 씹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옆집 아저씨 느낌이 훨씬 강하다. 실제 그에게는 확실히 캐릭터 데이브의 수더분한 모습이 있다.

-오리지널 <앨빈과 수퍼밴드>에 대해 알고 있었나.
=크리스마스 캐럴로 유명해서 알고 있다. 이들의 80년대 펑크 음반도 기억난다.

-어린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4살이다. 이번에야말로 아들에게 좋은 아빠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이전 작품들이나 <내이름은 얼> 같은 TV 시리즈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지겨워하더라. (웃음) 아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에 출연한 것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보너스라고 할까.

-극에서 데이브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인정하기를 꺼려한다.
=글쎄, 왜 데이브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 이유에 대해서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결국 나중에 그들을 잃고 나서, 그 부재 속에서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인물이 전달되었다면 그것으로 내 몫을 다한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내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앨빈!!!!” 하고 그 조그마한 다람쥐에게 윽박지르는 데이브를 관객이 싫어하지 않게 할까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화를 내는 장면에서 컷 사인이 떨어지면 감독에게 가서 이거 너무한 것 같지 않냐고, 아이에게 화내면 안 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곤 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 있다면.
=매일매일 5주일 동안 보이지 않는 다람쥐들을 상대로 혼자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그것도 이 세 마리 다람쥐들은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세 마리가 각각 다른 장소에, 그것도 계속 움직이면서 말이다. 그 모든 움직임을 상상하고 반응해야 했으니까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데이브는 탐욕스러운 프로듀서 이안에게 말한다. “녀석들은 아이들이라고!” 당신에게 아이란 무엇인가.
=놀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가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아역배우들과 마주치기도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아무 걱정없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아들은 아이다운가.
=그렇다. 가끔 나랑 같이 디즈니 클래식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녀석은 뒤뜰에서 뛰노는 스타일이다. 비디오 게임은 절대 못하게 하니까.

-텔레비전 시리즈인 <내 이름은 얼>로 확실하게 지명도를 굳히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보고 싶나.
=<내 이름은 얼> 이전에는 언제나 일거리를 찾으러 다녀야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조지 클루니가 아닌 이상 할리우드의 배우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겠나. 그래서 적어도 시리즈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이 하듯 늘 출근할 곳,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시리즈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 불러준다. 수염을 자를 수 없어서인가? (웃음)

“이 다람쥐들은 진짜 자식과 같은 존재다”

공동 프로듀서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이어와 재니스 카르먼 인터뷰

공동 프로듀서이자 부부이기도 한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와 재니스 카르먼에게서는 캐릭터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들은 30여년을 이 캐릭터들과 함께하면서 실제로 그들을 키운, 미국의 다소 극성스럽기도 한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 그대로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거의 10년이 걸렸던 것 같은데.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매일매일이 프로젝트가 엎어질지도 모르는 변수들로 가득한 10년이었다. 실사 합성이다보니 배우들의 연기, 애니메이션, 음악, 음향효과, 더빙 등의 모든 작업 과정에서 하나의 오차도 허용할 수가 없었다.

-원작자가 당신의 아버지이고, 스스로가 30여년이 넘게 캐릭터와 함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 하나하나, 연기 하나하나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생각해보라. 당신 같으면 당신 자식을 낯선 사람에게 맡기고는, 몇년 뒤에 다시 찾아올 때까지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는 우리에게 진짜 자식과 같은 존재이다.

-반세기 동안 몇 세대에 걸쳐 인기를 끌어온 캐릭터이다. 만화였던 원작을 실사와 3D애니메이션 합성 영화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원작의 팬층이 세대마다 있기 때문에 3D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새롭게 재탄생하더라도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다워야 했다. 외모에 삼차원의 입체가 더해지지만, 그들의 말투나 말하는 태도, 행동 양식은 원작 그대로야 했으니까. 동시에 이번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그냥 말하고 노래하는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진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였다. 이안이 데이브와 통화를 끊자 앨빈이 “데이브예요?”라고 하는 표정에는 데이브가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이브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어야 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