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그날 GP에 무슨 일이 있었나, 공수창 감독 신작 촬영현장
2007-12-12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거대한 성처럼 음침한 GP(Guard Point: DMZ 내에 있는 소대단위 벙커)에서 대원들이 쏟아져나오고, 노수사관(천호진)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예닐곱명의 건장한 수색대원들이 노리는 것은 앰뷸런스를 탈취하여 도망가려던 GP장(조현재). 엄격한 군인정신을 겸비한 수사관과 독기를 품은 젊은 군인이, 백전노장의 중견 배우와 혈기왕성한 젊은 배우가 날카로운 눈빛을 교환한다. 11월의 마지막 밤. 강원도 청평에 마련된 <GP 506>의 오픈세트는 막판 촬영의 열기로 매서운 겨울의 문턱을 지나는 중이다. 그럴 만도 했다. 비무장지대 GP에서 21명의 부대원 대부분이 몰살당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 노수사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스릴러물 <GP 506>이 60%가량 촬영한 뒤 제작 중단된 것이 지난 6월. 4개월 만에 배우는 물론 제작진 전원이 합류하여 막판 촬영에 열중하는 그 마음에 신바람이 절로 난다. 군복을 입었으면 배우요, 방한 점퍼를 걸쳤으면 스탭. “억압적인 군대생활에 대한 한풀이 때문”인 것 같다며 <알포인트>에 이어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물을 연달아 연출하는 이유를 밝히는 공수창 감독 이하 대부분의 팀장급 스탭들은 <알포인트>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배우들은 “스릴러라는 장르가 아닌, 철저한 반전물이라는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대선배 천호진 덕분인지, 웬만한 군인들 보다 반듯하고 우애있는(?) 모습이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발걸음을 돌린 조현재와 <후회하지 않아>의 작은 인기몰이의 주인공이었던 이영훈이 미스터리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로 출연 중이다. 총 14개의 세트를 지어 전체의 90%를 촬영한 <G. P. 506>의 또 다른 주인공은 세트를 비롯한 미술. GP 외관을 재현한 오픈세트와 근처 창고에 GP 내부를 옮겨놓은 실내세트 구석구석이 흥미롭다. 수차례에 걸쳐 덧칠하여 오랜 시간의 느낌을 입은 결과물이다. 미로 같은 지하 벙커의 자세한 내부, 이곳에서 벌어지는 말 못할 비극의 전모는 내년 4월 밝혀진다.

장춘섭 미술감독

“GP 출신들이 세트가 실제와 비슷하다고 하더라”

<가발> <구타유발자들> <바르게 살자>… 그리고 <GP 506>. 필모그래피에서 묘한 일관성이 느껴지는 장춘섭 미술감독은 “예쁘고 모던한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웃음)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 뭐랄까 숙성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낮에도 어둠이 빠지지 않는 지하를 주된 배경으로 꾸미면서 가장 처음 고민했던 것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도리가 없는 GP의 내·외부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재현할 것인가였다. “실제 GP 근무자를 인터뷰한 녹취를 봤는데, 정말이지 저마다 다 다르더라. 일종의 성처럼 주변의 지형지물에 따라 규모나 스타일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우리는 큰 규모에 속하는 GP라고 설정해서 장르영화로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려고 했다. 실제 GP 출신들이 세트를 구경하고는, 기능적인 면에서 GP와 흡사하다고 말했던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실제감을 살리기 위해 “세트로서는 정말 기피하게 마련인” 기울어진 벽을 마다하지 않고, 조명이 더해져서 어떤 질감이 날것인지를 보기 위해 세트 질감 테스트만 3개월을 소요하고, 평균적인 세트 제작기간의 2배가 넘는 기간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시멘트와 페인트를 덧바른 결과다. 촬영 중에도 노고는 끊이지 않았다고.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처럼 공들인 세트에 피를 비롯한 온갖 분비물이 튀고, 이를 다시 지운 뒤 촬영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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