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테넌바움>이 개봉한 건 2002년 3월이다. 근 5년이 넘어서야 웨스 앤더슨의 새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이리저리 뜯어봐도 귀여운 영화다. 소품인 것 같지만 깊이가 있고 귀여운 인물들과 재치있는 대사들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웨스 앤더슨의 원색적인 화면은 인도에 와서 물 만난 고기 같다. 덜떨어진 삼형제는 왜 인도로 간 걸까. 그곳에 가서 그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이 유쾌한 여행기를 소개한다.
웨스 앤더슨이 선호하는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고 신기하다. 지난 네편의 장편영화 <바틀 로켓>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원제 <러시모어>) <로얄 테넌바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는 팔푼이에 머저리다. 실력도 없으면서 한탕을 꿈꾸는 <바틀 로켓>의 디그넌이 그런 인물이다. 웨스 앤더슨의 절친한 친구이자 페르소나인 오언 윌슨이 이 인물을 연기해서 유명해졌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맥스 피셔는 제 잘난 멋에 사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는, 그러나 실은 열등생인 이상한 몽상가다. 진짜 천재들이었던 <로얄 테넌바움>의 형제들은 결국 성장통을 견디지 못해 보통 사람 이하의 상태로 추락한 이들이다. 그리고 빌 머레이가 연기한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의 선장 지소는 그중 나이가 제일 많지만 대책없는 고집불통의 늙은 소년이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휘트먼가 삼형제도 그다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얼굴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자기 몸도 건사 못하는 형편에 지나치게 동생들까지 간수하려 드는 맏형과 형에게는 대들기 일쑤고 아버지의 유품은 모조리 품고 다니는 병적인 둘째와 자기의 여성 편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 애인의 전화만 도청하는 조용한 막내가 그들이다. 그런데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이상하고 신기한 건 이 인간 실격자들 또는 성숙이 멈춘 정신적 미숙아들의 세계의 소동을 쫓으며 웃다보면 어느새 그들이 성숙해 있거나 관계회복의 국면에 접어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게 실은 웨스 앤더슨의 도통한 재주다. 휘트먼가의 얼간이 삼형제에게 이번에 성숙의 계기로 주어진 건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이다.
파리에서 시작한 ‘인도, 기차 그리고 삼형제’
삼형제의 인도 열차 여행기는 희한하게도 뭄바이가 아니라 파리에서 이야기의 틀이 잡혔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공동 각본가이자 영화 속 막내 잭을 맡은 제이슨 슈워츠먼은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 촬영을 위해 파리에 머무는 중이었고, 마침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의 유럽 홍보 투어 일정 마지막 장소인 파리에 도착한 웨스 앤더슨은 친구 제이슨 슈워츠먼의 아파트에 함께 기거하게 됐다. 매일 저녁 인근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이슨 슈워츠먼은 자연스럽게 공동 각본가가 됐고, 믿거나 말거나 “삼형제의 이야기니 각본가도 세명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또 한명의 친구 로만 코폴라를 끌어들여 각본을 완성했다. 그러고 나서 세 친구는 50쪽 남짓한 시나리오를 써놓고 2006년 3월 인도로 현지답사를 갔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아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집안에 충격을 몰고 왔다.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는 인도의 어느 오지로 떠나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가 되었다. 장례를 치른 지 근 1년이 되었지만 큰 사고를 당한 삼형제는 그동안 말 한마디 없이 소원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러다 맏형 프란시스(오언 윌슨)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형제들의 우애를 회복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상처도 낫지 않은 힘든 상황에도 기어이 동생들을 인도로 불러모아 여행을 떠난다. 실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둘째 피터(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임신한 여자친구와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고, 막내 잭(제이슨 슈워츠먼)은 작가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소설로 쓰고 있다. 삼형제는 여행 도중 기차에서 말썽을 부려 결국 사막으로 쫓겨나지만 우연히 물에 빠진 소년들을 구해주고는 그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들이 미처 구하지 못했던 한 아이의 장례식을 함께 치르고 난 뒤 다시 어머니를 만나러 떠난다.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질문 받을 때마다 웨스 앤더슨의 대답은 대개 유사하다. “인도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기차에 관한 영화도 만들고 싶었고, 또 삼형제에 관한 영화도 만들고 싶었다”고 반복한다. 그런 점에서 <다즐링 주식회사>의 이야기는 ‘인도와 기차와 삼형제’, 이 세 가지 키워드의 결합이다.
그들이 인도에 간 까닭
<다즐링 주식회사>의 작업을 하기 전에 한번도 인도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인도에 대한 웨스 앤더슨의 관심은 지대했다. 특히 장 르누아르의 <강>을 보고 나서 깊은 감명을 받은 웨스 앤더슨은 언젠가는 인도에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중얼거리고 다녔고, 인도의 거장 샤티야지트 레이의 영화를 좋아하는 감수성은 또 다른 동력이 됐다(영화에는 샤티야지트 레이의 영화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극장에 들어간 우리는 인도 땅을 밟기 전 먼저 한 군데 들러야만 한다. 파리에 있는 슈발리에 호텔이다. 관객은 본편 <다즐링 주식회사>를 보기 전 ‘파트1’이라고 이름 붙여진 13분짜리 단편 <슈발리에 호텔>을 먼저 보게 될 텐데, 형제 중 막내인 잭이 파리 동명의 호텔에서 여자친구(내털리 포트먼)를 만나는 짧은 일화다. 명확한 이유가 첨부되지는 않았지만 이건 일종의 대장정을 떠나기 전 파리와의 작별 인사이며 큰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붙여진 프롤로그다. 이 단편이 끝나고 ‘파트2’라는 자막을 지나고 나면 무대를 본격적으로 인도로 옮겨 본편의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가 시작한다.
인도에 관해 웨스 앤더슨은 확실히 느낌이 남다른 것 같다. “일상의 너무 많은 부분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 영화의 90%가 삼형제의 협상과 말다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 고대의 나라를 통과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라는 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웨스 앤더슨은 말한다. 이런 명상가적인 발언을 굳이 가식이라고 욕할 수 없는 건 인도라는 낯선 영지에 도착한 외국인들의 서투른 감동과 공감을 영화가 무척 잘 표현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비결에 관해서는 프로듀서의 말이 도움이 된다. “그(웨스 앤더슨)는 배우들이 직접 분장을 하고 아침에 알아서 옷을 챙겨 입는 등 마치 그들이 이 여행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영화 속 세계에서 움직이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어했다.”
영화 속에서 맏형 프란시스는 그들의 여행을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그가 마침내 붕대를 벗고 만신창이가 된 얼굴을 묘하게 당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멋진 장면이 영화 속에 있다. 그때의 신랄함과 통쾌함은 어쩌면 프란시스 본인이 느끼는 극복의 자세일 것이고, 웨스 앤더슨이 인물들을 데리고 인도에 간 이유일 것이다.
각자의 방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기차
삼형제는 그런데 자동차나 비행기가 아닌, 다즐링 리미티드라고 쓰여 있는 기차를 타고 다닌다. 기차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정말 그토록 중요했을까.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웨스 앤더슨은 대부분 실제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촬영하기를 원했고 그 덕분에 프로덕션디자이너는 실제 기차 내부를 인도식과 서양식의 조화로 꾸며내야만 했고, 촬영감독은 조명 설치에서부터 카메라의 운용까지 많은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정말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찍어야만 했다.
그런데 웨스 앤더슨은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언제나 기차에서 일이 벌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왜냐하면 장소가 변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장소가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는 그런 것 말이다.” 이 말은 한 가지 단서를 준다. 기차 내부도 중요하겠지만 흐르는 풍경이 존재하는 차창 바깥도 중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질문은 또 생긴다. 자동차라고 해서 차창 밖의 풍경이 없을 것인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자동차에는 없지만 기차에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때 삼형제가 타고 있는 이 기차가 칸칸이 나뉘어 있는 구조라는 건 보기보다 무척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싼 숏”이라고 웨스 앤더슨이 지칭한, 동시에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있다. 롤링 스톤스의 <Play With Fire>가 흘러나올 때 카메라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각각의 칸에 타고 있는 인물들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 관해 웨스 앤더슨은 “세트를 따로 지어야만 했다. 게다가 우리는 빌 머레이와 내털리 포트먼을 포함하여 (이미 촬영을 마치고 인도를) 떠난 사람들까지 모두 다시 불러들여야만 했다. 오후에 사막에 나가서 찍었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복잡하고 힘들었다면서 그 장면을 왜 찍었을까. 거기 누가 있는지를 보면 될 것이다. 기차에는 지금 삼형제, 차장과 승무원, 승객,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했던 비즈니스맨 (빌 머레이), 파리에 남겨두고 온 애인, 그들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호랑이(!)까지 타고 있다. 카메라는 수평으로 흐르며 각자의 칸에 있는 그들을 보여준다. 그들이 실제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건 지금 상상의 기차다. 웨스 앤더슨의 표현으로는 “생각의 기차”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구조물이란 ‘막’과 ‘장’과 ‘칸’이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커튼의 막으로 구성되고 <로얄 테넌바움>의 이야기는 1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테넌바움가의 사람들은 각각의 칸에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에는 <다즐링 주식회사>의 생각의 기차와 너무 똑같아서 ‘생각의 배’라고 불러야 할 만한 장면도 있다. 이런 장면 연출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일 것이다. 열차의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각자 자기만의 장소에 있지만 넓게 보면 실은 한 기차에 같이 탄 사람들. 어딘가 있을 사람들까지 불러모아 한 기차에 태운다는 건 지금 서로가 서로를 ‘상상하고 생각한다’는 뜻일 거다. 그렇게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때 웨스 앤더슨은 형제애와 우정이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형제, 같은 뱃속에서 나온 너무 다른 우리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다즐링 주식회사>가 프리미어 상영을 가질 즈음 날아든 소식은 공교롭게도 오언 윌슨의 자살 시도였다. 프란시스는 영화 속에서 상처를 이겨낸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할을 맡았던 오언 윌슨은 실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대학 때 단짝으로 만나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냈던 오언 윌슨의 갑작스런 사고 소식에 대해 질문 받을 때 웨스 앤더슨은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항상 영화 속에서 이런 식으로 질문하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명이 현실에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형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말이야.” <다즐링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대사다.
국내에서 개봉한 웨스 앤더슨의 영화 <로얄 테넌바움>이 형제 같은 우정, 친구 같은 형제애에 관한 관계를 질문한다는 걸 영화를 본 사람은 모두 안다. 그들은 이상한 가족이며 팀원이다. 그 관계를 강조하는 웨스 앤더슨의 방식이 이 때 재미있다. 아무렴 그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말할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는 대신 인물들에게 유니폼을 입힌다.
<바틀 로켓>에서 멍청이 디그넌이 그렇게나 강조한 건 노란 유니폼을 함께 입은 “우리”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맥스가 사랑하는 건 교복을 입은 자신이다. 그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서의 소속감이 아니었다면 사랑하는 여선생도, 친구이자 연적인 빌 머레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로얄 테넌바움>에서 빨간 아디다스를 입은 부자 삼총사가 우스꽝스러운 안전 훈련을 할 때 당신은 아마 깔깔 웃었을 것이다. 또는 그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빨간 모자와 푸른색 잠옷을 다 같이 입었을 때에야 드디어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은 시작되며 그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다즐링 주식회사>에서 얼간이 삼형제가 죽어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휘트먼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알록달록한 가방 꾸러미들이다. 그뿐이 아니라 그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같은 옷을 입는다. 그 장면을 지금 모두 말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다만 유니폼을 나눠 입은 삼형제는 귀엽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공동체와 소속감, 관계성에 관한 이 유년적 시각의 기호를 보는 건 유쾌하고 들뜬 일이다. 실은 같은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똑같이 입었는데도 각자 산만하고 정신없기 때문이다. 같은 옷을 입고도 이렇게 동상이몽인 집단이 또 있을 것인가. 웨스 앤더슨은 그 정도의 느슨한 관계, 결함과 차이를 끌어안는 공동체와 소속감이면 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타이밍과 리듬감을 너무 잘 아는 감독
<다즐링 주식회사>는 인물들만큼이나 허전하면서도 산만한 영화다. 도중에 끊기고 새로 시작하는 칸칸의 서사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이렇게 쓸데없는 짓들을 늘어놔도 영화가 되는 구나 싶을 정도다. 웨스 앤더슨이 “그는 스스로 원한 방식으로 그 자신만의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트뤼포는 내게 위대한 역할 모델 중 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이유를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둘은 확실히 닮았다. 웨스 앤더슨이 훌륭한 건 이 산만한 서사를 엮어주는 게 좋은 타이밍과 리듬감이라는 것을 또한 트뤼포에게서 잘 배웠다는 점이다. 줌, 트래킹, 슬로우 모션등 유치하고 화려한 기교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모두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침내 킹크스의 <This Time Tomorrow>가 흐르고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카메라가 고개를 내밀 때, 그건 인도에서의 마지막 바람을 느끼는 삼형제의 시선 일 것이다. 유쾌한 여행을 마치는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