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쾌락과 혼돈의 로마, <펠리니의 사티리콘>
2007-12-20

EBS 12월22일(토) 밤 11시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은 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불완전한 단편들로 남아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 작품을 로마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을 풍자한 <달콤한 인생>의 1세기 버전처럼 구성하는 한편, 그 1세기 로마를 18세기 유럽에 대한 날카로운 비유로 형상화했다. 이 영화는 펠리니의 역사물이라고 칭해지지만, 사실, 영화 속 로마는 꿈과 판타지의 세계에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 환상은 히로니뮈스 보시의 <쾌락의 정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살냄새 가득한 욕망의 혼돈으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탐욕적인 사랑이 폭력과 살육으로, 부유층의 교양이 천박한 속물스러움으로 뒤섞이는 과정을 파편적인 서사의 조각들로 여기저기 흩뜨린다. 인간의 육체는 고깃덩어리의 부분처럼 다루어지며 절단된 신체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펄떡인다. 종교는 추문이 되고 사랑은 변태적인 욕망이 된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이 세계는 그저 스스로가 끝까지 자신을 파멸시켜 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일전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악령들>(켄 러셀)의 지옥만큼이나 생생하며, 인간의 욕망 저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시선은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펠리니는 여기서 쾌락의 아름다움 속에 잠재된 파괴의 본능을 형상화하며 천국에 내재된 지옥, 한때는 찬란했던 로마에 내재된 몰락의 계기를 본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대개 카메라의 현란한 움직임보다는 세트의 인공성이나 인물들의 무리 혹은 그들의 표정에 정면으로 집중하듯, 이 영화 역시 카메라의 작은 움직임조차 나머지 요소들의 기괴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살과 피냄새가 풍기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입체적으로 살아 있는 색채나 그 어떤 사실적인 배경보다도 부패한 지옥의 스펙터클을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세트들이야말로 <사티리콘>의 중심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몇년 전, <할리우드 리포터>에서 마틴 스코시즈는 조명과 컬러를 가장 탁월하게 이용한 세계의 영화 베스트10 명단에 이 영화를 집어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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