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블루스>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 이 감독 참 독하구나. 비좁은 택시 안에 카메라며 조명이며 녹음장치까지 달아놓고, 한손으로는 운전하고 한손으로는 카메라 스위치 조작하며, 머리와 입으로는 인터뷰하고, 눈으로는 관찰하고, 그 와중에 생계까지 챙겨야 했을 버거움이라니. 혹은 그 모든 걸 되새기며 뻔뻔하게 연기까지 해내다니. <택시 블루스>는 그런 집요함이 아니었더라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최하동하 감독은 그가 만났던 승객을 찍은 실제 화면과 그들과 마주치며 겪은 경험에 살을 붙인 픽션을 뒤섞어 <택시 블루스>를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기록의 습관이 항상 피곤하다”고 말해도, 이 영화는 그 피곤한 습관의 집적물인 셈이다. 그는 요즘 뉴욕에 산다. 누군가는 이제 그럼 뉴욕의 택시운전사를 하러 갔느냐고 진부한 농을 걸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특별히 목적을 두고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버리지 못하는 일은 있다. 요즘 그가 푹 빠져 있는 게 있다면 역시 뉴욕의 지하철 풍경을 틈틈이 기록하는 일이다. 개봉을 맞아 잠시 서울에 돌아온 최하동하 감독에게 그가 서울의 밤에 바쳤던 서울 소야곡, <택시 블루스>에 관해 물었다.
-한달 반 전부터 뉴욕에 살고 있지 않나. 갑자기 왜인가.
=음… 내 주변의 누구는 이런 질문받으면 이명박씨 대통령 되는 거 보기 싫어 간 것이라고 말하라고 하던데…. (웃음). 실은 일 때문에 종종 다른 나라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국외자로 사는 느낌이 좋았다. 언제 한번 그렇게 살아볼 수 있으려나 생각하다 무작정 뜬 거다. 지난해에 촬영 아르바이트 때문에 간 적이 있는 뉴욕이 그냥 마음에 들어 택한 거고. 카메라를 갖고 갔으니 내가 보고 다니는 걸 그냥 찍게 되는데, 그런 것에 의미를 두고 산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단 한 2년 정도 버텨보고 그 다음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마침내 영화 개봉을 하니 숙제를 마무리하는 느낌일 것 같다.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딱히 극적인 느낌은 없다. 이런 쪽의 일을 하다보면 좀 무감해지는 면이 있어서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나빠도 나쁜 게 아니다. 구걸해서 개봉하지 말자는 생각은 했었다. <택시 블루스> 개봉일자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출국 날짜 잡은 것도 그래서였고.
-시간을 한번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3년에 택시기사 자격증을 땄고 다음해에 촬영했다. 택시기사 생활은 많은 부업 중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힘들었거나 혹은 어떤 재미가 있었나
=많이 힘들었다. 택시 일만 하면 좀 덜했겠지. 하지만 영화와 병행하다보니…. 게다가 서너명 되는 스탭과 같이 다녀야 할 때는 더했고. 아마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나를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전부 “너 요새 모습이 왜 그러냐”가 인사일 정도였으니까. <택시 블루스> 말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차라리 경험 안 했으면 좋았을 법한 일이었겠지.
-여하튼 당시 택시 승객에게 무언가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런 이중고를 택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짧은 시간을 함께 가지만, 승객에게서 많은 것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에 오래 있다보면 외로움을 탄다. 왜 택시 타면 짜증날 정도로 수다 떠는 기사들 있지 않나. 그게 이해가 가더라. 그러니까 승객이 하는 작은 행동, 기침 소리 하나도 내가 스펀지가 되어 빨아들이는 것 같더라. 그들이 큰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 사람들을 알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걸 경험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집합체가 된다면 서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하고 욕심이 나더라.
-많은 승객을 만났을 텐데 그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가던가.
=딱히 어떤 부류라고 구분해서 말하긴 힘들다. 가령 서울에서 유생 회의가 있어 올라온 시골 할아버지들 무리, 술내기해서 취하게 만든 여자를 선배 방에 넣어주고 왔다며 떠드는 남자들, 밤새 일하다가 아침에 돌아가는 삐끼들이 전날 밤 손님에 대해서 하는 말 등등 사람들의 편차는 너무 다양하고 너무 디테일하다. 그중에서 많은 부분 애증관계나 서민의 애환 같은 것이 내 관심을 끌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퇴폐적이고 악의적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는 한 아주머니가 이른 아침에 타서 졸고 계시기에 다 왔다고 깨우고 나서 택시비를 받는데, 한 0.5초 정도 됐으려나, 그 아주머니 손톱에 밀가루가 하얗게 끼어 있는 게 보이더라. 여하간 그런 날이면 그날 밤 그들이 살았던 시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아주머니 장면이 영화에 들어갔다면 무척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 왜 그런 건 안 넣었나.
=들어간 거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몇몇 인물들을 통해 그러한 부류의 삶이 얼마간 녹아들어갔다고 보는 거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로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고, 시각적으로 갖추어야 할 완성도 문제도 있었고, 또 표현하기 어려운 디테일은 빼야 했다. 나는 보편적으로 녹이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는 “왜 사람들이 다 취해 있냐? 왜 센 것들만 넣었냐?” 하는 반응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반응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두 가지로 답해야겠다. 일단은 실제로 내가 겪은 게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밤에 술 안 취한 사람은 택시 거의 안 탄다. 나로서는 이런 일화들이 센지 아닌지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밤에 한두팀 빼놓고는 다 취한 사람들이니까. 그게 내 눈에 보인 그대로여서 그렇게 했고 또 그게 굳이 과장된 것이라 해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느낀다. 두 번째, 왜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았느냐, 왜 편향되어 있느냐, 그런 것에 대해, 나는 영화란 편향되어야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환이라고 좀전에 말했는데 애환이란 대상에 대한 애정도 포함하는 말이다. 그 애정이 잘 안 느껴진다. 감독의 시선은 대체로 사람보다는 죽은 고양이나 매미처럼 사람이 아닌 것에 더 애정이 가 있다. 게다가 실제 자료가 당시에는 그렇게 센 장면이 아니라고 느낀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중에 연출한 부분은 이미 그게 세다고 의식하면서 넣은 것일 거다.
=밤의 서울을 그리는 게 서울의 모습을 그리는 데 부합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거기에 알맞을 것 같은 승객과 정경들의 모습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통해 나름대로 정서적인 면을 가져가려고 했다. 무명화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택시비를 내지 않는 승객과 감독이 처음에는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독이 그 승객을 따라 좁은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그가 날품팔이로 연명하지만 실은 화가인 걸 알게 된다- 편집자). 나보고 다큐멘터리계의 김기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그게 그리 듣기 좋지 않다. 다시 말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래 내가 세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길게 얘기할 게 없다.
-카메라, 조명, 녹음기 장착 과정에서는 긴 시행착오와 개선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 스탭들에게는 그게 아마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일 거다. 하도 고생을 해서. 얘기가 좀 긴데, 독자들도 재미있어하시려나? 처음에는 혼자서 한 6개월 정도 허비했다. 뒤에 스탭들이 달라붙고 나니 그제야 진척이 있었다. 화질이 욕심나서 큰 카메라를 달아볼까, 신기종을 써볼까 많이 알아봤는데 결국 큰 카메라를 달면 승객이 난리치고, 인터뷰도 안 되더라. 너무 싸구려로 작은 걸 달면 화질이 안 좋고. 요즘은 안 쓰는데 디지털카메라 나오기 직전 소니에서 자연환경 다큐나 스키 탈 때 헬맷에 달고 찍을 때 쓰는 라이터 2개 정도 크기의 카메라로 최종 낙점했다. 화질은 가정용 8mm 정도였다. 그걸 한 다섯 군데 정도 달았는데, 그걸 매번 다 녹화한 건 아니고, 때에 따라 두개나 세개 정도 녹화하면서 내가 운전석 옆에 만들어놓은 스위치로 그중 필요한 카메라 앵글을 중계하듯이 바꿨다. 1번 카메라, 2번 카메라 이런 식으로. 내가 운전하면서 그걸 다 해야 했다. 손님들과 수다도 떨어줘야 했고, 테이프도 갈아 끼워야 했고, 사고 많이 날 뻔했고 실제로 그래서 사고도 났다. 조명도 처음에는 밝게 해놨더니 손님들이 이상해하더라. 결국 택시 실내등이 제일 적합하다는 생각에, 튜닝숍에 가서 택시 조명으로만 대여섯개 정도 설치했다. 마이크는 천장에 달고, 믹서기는 트렁크에 넣고. 촬영하는 내내 계속 세팅 조정을 했는데, 그게 다 완성된 1년쯤 됐을 때 내가 택시기사를 그만뒀고, 촬영도 끝났다. 영화 속 연출된 부분은 택시 일을 끝내고 다시 찍은 거다. 한 6개월 정도 스탭들과 똑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 다음, 소니 pd150 디지털카메라 한대와 200만원짜리 소나타를 한대 사서 내부를 택시처럼 개조한 뒤 연출장면을 찍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많은 장면이 그렇게 찍혔다.
-음… 얘기를 듣다보면 확실히 돈벌이에 유능한 택시기사는 아니었을 것 같다. (웃음)
=그렇지. 회사에서야 찐따 같은 놈이었지.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 정도 금액이 아니라 체납으로 오도가도 못하고 택시회사에 매여 사는 사람들도 있더라.
-연출이 아닌 부분을 볼 때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승객에게 동의를 얻어냈을까 하는 점이다. 기술이랄까 비결이랄까.
=이런 영상작업에선 그 결과를 갖고 동의를 얻으려면 잘 안 되는 경우들이 있을 거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그전에 일종의 노출증이 있다. 그걸 어느 선에서 넘어서면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런 작업들을 하다보니 그런 걸 자주 본다. 그 사람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내가 충분히 드러내줄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정성껏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거다.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많은 승낙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그런데 노출과 카타르시스를 말하기에 앞서, 감독은 총체적 구조를 내다보고 있지만 거기에 동의한 사람들은 아주 일부분만 알고 있었을 테니, 한편으로 이 거래는 매우 불공정한 셈이다. 그들은 완성된 영화를 예측 못했을 거다.
=물론 불공정하지.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거의 모든 매체가 그런 이유 때문에 일면 폭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방송에서 행사되는 폭력에 노출되는 수위보다 이 영화의 수위는 훨씬 얕은 것이라고 본다.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찍고 찍히는 것에 대한 도덕적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 거다.
-동의를 얻지 못한 부분은 극화했다고 하던데 극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나.
=할 수 있다면 극을 최소한 줄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많이 연출하게 됐다. 하지만 픽션을 삽입한다는 건 처음 기획안부터 이미 예견이 되더라
-한눈에 척 보고 어떤 게 연출된 것이고 아닌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바꿔 말하면 감독의 연출력이 발휘됐다는 얘기도 된다.
=택시 안에서의 기억은 나나 배우나 다들 보편적이어서 일단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가 좋았다. 내가 택시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때 얻은 디테일들을 기억해두려 하지 않았다면 어려웠겠지만, 여하튼 그 덕분에 상상력이 생겼다. 지폐에 적혀 있던 낙서 기억나나. 그건 내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거다. 디테일들 위주로 배우에게 말하니까 도움이 된 것 같다. 연기가 안 나오면 계속 차를 태워서 홍대나 연신내 주위 등을 돌면서 나올 때까지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정 안 나오는 경우에는 실제로 술을 먹였고. 연기를 하다가 필름이 끊긴 사람도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은 내 생각 이상으로 난동을 피우기까지 했다. (웃음) 기대 이상으로 해준 사람들도 있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성형 이야기하는 여자 중 한 사람은 분장맡았던 사람이다. 평소 알고 있는 걸 말하니 자연스러웠다.
-그때 대사들을 다 줬나.
=찍혀 있는 자료가 있는 건 배우에게 보여줬지만 기본적인 대사는 많은 부분 배우의 애드리브다. 대사를 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두세 가지 상황들이 섞인 것도 있다. 왜 무례하게 돈 던지고 내려서 내가 쫓아가서 때린 그 양반도 실은 두세 가지가 섞인 캐릭터다. 택시 안에서는 배우가 연기한 거고, 내린 다음부터는 실제 찍혔던 화면이다.
-그 장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새 하는 말로 낚인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이를테면 리얼리티 쇼, 가짜 리얼리티 쇼에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가 <택시 블루스>에도 유사하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대상의 입장에서 노출의 카타르시스를 말했지만, 그들이 노출을 한 것이 아니라 노출을 당한 것이라면, 그때에도 카타르시스란 가능할까.
=일단 그 장면은 비루한 인간들끼리 벌이는 감정에 어울렸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시선의 과정을 극복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지는 않다. 당신과 나의 전제가 다른 것 같다. 리얼리티 쇼나 가짜 리얼리티 쇼라고 특별히 지칭되는 것 외에도 사실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다 그런 맥락이다. 좋은 경력이 아니어서 잘 말을 안 하는데 나 역시 방송 촬영을 해봐서 알고 있다. 리얼리티와 리얼리티 쇼라고 구분을 지어서 보는 건 무의미할 때가 있다. 사실은 자기가 속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사람들은 속고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데 나로서는 더 힘든 것 같다. 오히려 나는 내가 이번 영화에서 촬영한 사람들에 대해 떳떳한데 그걸 본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그게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의미에서 편향된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서는 영화작업을 할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해보자. 애초 큰 밑그림이었던 서울에 대한 느낌은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나는 확률이라는 것에 의존하는 버릇이 있다. 만약 외국인이 택시에 탔다면 하루에 택시 25번을 태운다면, 그중 어떻게 외국인이 두 사람일까, 그럼 서울에 외국인이 얼마나 산다는 말일까, 서울은 얼마나 메트로폴리스인가 등등 생각하게 된다. 내가 미루어 짐작하던 걸 그런 확률 계산을 하면서 뭔가 윤곽을 잡아나가는 거다. 또는 공간에 대한 느낌들. 승객은 행정 구역명을 말하지 않는다. 정보부길로 가주세요, 빨랫골로 가주세요 한다. 처음에는 그게 참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보면 누군가는 뒷좌석에서 정보부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런 게 상징적으로 서울을 말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택시 시작하고 한달 만에 무더기로 그게 학습된 거고. 지금 뉴욕의 지하철을 볼 때 드는 어떤 원초적인 느낌들처럼 그때 내가 매혹된 서울의 단상들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영화에 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도 많다. 포괄적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승객 부분을 줄이고 그런 걸 좀더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