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민은 바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인 12월19일 오후 4시30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3개의 인터뷰를 해치운 뒤였다. 1인 록밴드 ‘올라이즈밴드’ 뮤지션 우승민은 2001년 첫 음반을 낸 뒤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다 올해 초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나오면서 2007년 버라이어티쇼계의 최고 ‘신인’으로 떠올랐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올 초 강호동을 통해 팬텀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도 맺었다(강호동 소속사). 우승민은 최근, 군대 간 남자친구들을 기다리는 네 커플의 이야기 <기다리다 미쳐>에서 부산 출신의 늦깎이 신참 ‘허욱’ 역으로 출연했는데, 사실 이 영화가 그를 캐스팅할 무렵에 우승민은 지금과 같은 조명 세례 속에 있지 않았다. <기다리다 미쳐>쪽이 운이 좋은 건가?
“쌉니다. 진짜 쌉니다.” 억센 부산 사투리로 우승민은 자신의 몸값이 겁나게 싸서 케이블채널 <M.net>의 팝음악 프로그램 <블링블링팝> 진행을 맡게 된 거라고 말했다. “스티브 김씨인가, 그분이 음주운전하셨잖습니까. 그래 가지고 제가 하게 된 겁니다. 그분이 음주운전 안 걸렸으면 제가 몬했죠.” 당혹스러울 정도의 단답이 아니면 리듬감 넘치는 부산 사투리로 ‘팩트’를 꼬집는 그는 본인이 ‘떴다’라는 사실의 환기를 지나칠 정도로 경계하며 아무 기대없는 태도를 지키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화려한 문답이 오갈 거란 예상은 무너뜨렸으나, 인터뷰 자리에서 할 말은 다 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도 분명해 보였다. 우승민은 이 모든 걸 오로지 ‘일’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 목숨과 명예를 걸 이유가 전혀 없는. 촌철살인 화법의 뮤지션 우승민의 자의식은, 돈을 버는 일 앞에서 완벽하게 증발한다.
-많이 바쁜 듯하던데, 일주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요.
=하나도 안 바쁩니다. 텔레비전 방송 몇개 하고, 그냥 집에서 자고…. (뚱)
-영화 출연은 언제 결정한 건지.
=올 초에 계약이 와서 하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영화 왔다고, 시나리오 함 읽어보고 함 해봐라, 해서 읽어봤는데, 부산 역할이더라고요. 내가 뭐를 하기보다는 많이 배운다라는, 호기심 반, 이런 생각으로 하게 됐죠.
-그외에도 시나리오 들어온 게 있었나요.
=없습니다, 없습니다. (잠시) 몇개 들어온 게 있긴 있었다 그러더라고요. 그 카메오, 뭐 그런 거로는 안 한다 그랬습니다.
-영화를 찍어보니 어떻든가요.
=음. 좋데요. (웃음) 일단은 배우들이 계속 뭉쳐 있으니까 인간적인 매력이 좀 많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방송할 때는 스케줄이 바쁘니까 끝나고 끝나고 가고 가고 이런 게 있는데 이거는 거의 하루 날 잡아서 같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거는 한번 찍고 나면 자리를 또 바꾸더라고요. 대기 시간이 많으니까 이야기도 좀 많이 하고 이래 되니까, 가까워지는 거 같아서, 그런 게 좀 좋았습니다.
-사실 영화 보면서 저 역할에 굳이 ‘올밴 우승민’을 캐스팅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어요. 영화 후반부에 욱이가 “아, 똥국~” 이러면서 내무반에서 나뒹구는 신 보고, 저것 때문이었구나 납득하게 됐죠.
=참고로 애드리브였습니다. 카메라 감독님한테, 요고 진짜 재밌다고, 내 함 믿어보라 하고 뵈줬그든요. 웃더라고요, 재밌어가지고. 감독님께선 영화가 너무 코미디로 가버리면은 너무 날리게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오바를 좀 많이 하지 말란 얘길 하셨거든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슛 들어가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그게 진짜 잘 살았는데 카메라 감독님이 웃는다고 카메라가 흔들려가지고 NG도 나고 해서 다시 했어요. 그게 갔으면 좋았는데, 같은 걸 계속 할래니까 첫 대사가 안 나오잖아여. 좀 아쉽긴 했습니다.
-감독님 의도대로라면 우승민씨는 영화에서 튀면 안 되는 건데, 그러면 왜 우승민씨가 캐스팅됐을까요.
=음, 일단, 싸지 않았나 그래 생각을 해봅니다. 감독님 만나가 브리핑도 하고 대본 가지고 리허설도 하지 않습니까. 사실 감독님이 나를 컨택하신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얘가 되겠나, 연기도 안 해봤고, 긴가민가. 까일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뭐라 했느냐면 영화는 망해도 내 신만큼은 확실하게 재밌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으니까 무조건 내를 쓰라고 했습니다. 내 안 쓰면 후회할 거라고. 퇴학하고 자퇴하고 똑같은 건데, 퇴학이라 그라믄 쪽팔리거든요. 또 감독님도 생각 안 해보셨겠습니까? 가격 대비 성능 비교하고, 이래 하셨을 거고요.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로고송 만들어주고 나서 출연 제의받은 거라고요. 추리닝 입고 앉아 있는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일부러 잘리려고 비방송용 말도 편하게 막 한 거라고 그랬는데.
=자기 자리가 아닌 데 가면 불편한 게 있잖아요. 다 유명하고 다 (사람들이) 아는 연예인이고,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말 그대로 병풍이잖아요 병풍. 그동안에 돈은 없어도 내 자신감 하나로 살아왔는데, 내가 믿고 있던 신념과 그런 거는 다 쓰레기였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 있잖아요. 이게 진정한, 코미디인 거 같습니다. (피식)
-방송을 보면, 가만히 있다가 가끔씩 한마디로 허를 찌르는 식인데, 나중에는 그런 말버릇 때문에 잘릴 우려는 안 들었는지.
=제가 뭔가 했을 때 남의 리액션을 바라고 그라는 걸 저는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저는 (피식) 그냥 바로바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많이 하거든요 사실. 그러니까 방송 같은 데서는 가급적이면 말을 안 할라고 많이 생각을 하죠. 하면 주워담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해라, 라고 제작진이 요구하지 않습니까.
=합니다.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말 하라고 스케치북에 써서 나 보여주거든요. 그러면 그냥 모른 척하고…. 준비된 액션은 못하겠더라고요. 나도 뭔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이 얘기를 어느 타이밍에 하면 좋지 이런 걸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무리에 어울려가지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이거를 웃겨줘야 되는데…, 이런 거는 저하고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게 있으면 이 일을 몬할 거 같더라고요.
-그런 압박을 느꼈나봐요.
=<작렬! 정신통일> 할 때 많이 느꼈죠. 그 PD가 내를 <무릎팍도사> 보고, 임마는 데꼬 오면 무조건 된다, 했거든요. 너는 다른 거 없이 무조건 말만 많이 하면 된다, 이 형이 내 캐릭터를 잘 몰랐던 겁니다. 그런 거에 있어서, 외세의 압박, 이런 거를 많이 느꼈죠. 그러나 저는 철통같은 수비로….
-새 앨범은 언제 내나요.
=내년에. 곡은 많이 써놨고, 로고송 같은 거 많이 만들어주고 있으니까. 음악은 계속 하고 있거든요. 그동안 만들어놨던 노래들로 내는 겁니다.
-음악 스타일은 기존의 것이 유지되나요.
=이게, 내가 진짜 사람들 말을 안 들어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게, 1집 내놨을 때는 욕 많이 한다고 지랄하드만 2집 내놓으니까 이젠 욕을 안 한다고 지랄을 하더라고요. 변했다고. 그니까 이게, 그들이 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나한테 만족하면 괜찮더라고요. 항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거 같더라고요. 뭐든지.
-그럼 남들이 말하는 그 변화, 욕을 많이 하던 1집에서 욕이 없는 2집으로 가게 된 그 변화는 왜 온 거라고 본인은 생각하세요.
=내가 1집을 만든 게 욕을 할려고 만든 거는 아니거든요. <무릎팍도사>도 보면 거기서 내가 제일 웃겼다고 생각하는 거는 싸이 나왔을 때 ‘손바닥은 하나만 가지고 소리 못 낸다’고 그래서 내가 이걸로 (오른손의 엄지, 검지를 맞붙이고 그 손을 막 흔들어서 딱딱 소리내는 액션) 이걸로 웃겨줬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이런 걸로는 별로 안 웃고 ‘롯데는 왜 이리 몬합니까’ 이런 걸로는 막 웃기다 그라고요. 이게 코드가 안 맞는 거 같애요. 방송에서는 내를 좀 싸가지없고 이런 이미지로 많이 만들어갈라고 하거든요. 그라니까 내는 거기 따라가면은 안 되고, 최종 수비는 할 건 또 해주고 해야 되겠다….
-최후방어선이 음악인 건가요.
=방송에서도 음악하는 형들은 내보고 그라거든요. 니는 음악을 계속 해야 된다. 자기들도 뭐, 이제 음악하면은 사람들이 웃는다. 근데 나는 내가 예전에 방송 나가기 전에도 내가 음악하면 사람들이 다 웃었거든요. 근데 그때보다는 많이 순화되는 건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웃으면은, 아하, 쉬발놈들, 지금 웃나, 이랬는데 이제는 웃으면은 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웃는 구나, 이래 많이 유들유들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이영자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본인에게 ‘가수면 노래를 해야지 왜 개그를 하고 있냐’고 했죠.
=그래 말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근데 나는 노래도 하고 있고, 공연도 하고 있는데, 그니까 이거를 무슨 종족처럼 생각해가지고 ‘니는 가순데’ 이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다 광대 아닙니까.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이 직업인데, 어느 순간부터 문화생활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걸 예술이라 칭하면서 이 ‘후까시’에 사로잡혀서 지가 존나 대단한 줄 알고 나는 아티스트, 이런 게 나는, 같이 하는 입장에서 좀 안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본인도 음악을 할 땐 뭔가 진정성을 갖고 하려고 할 거 아닌가요. 그러면 그것도 그 순간에 예술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올라이즈밴드 1집 자체가 조롱이거든요. 기존에 있던 음악이나 가수들이 하는 거를 많이 비웃고 풍자, 이런 게 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시작 자체가 그런 거였거든요. 학교(부산예술대학)에서 음악을 배울 때부터. 근데 일반적으로 편견이 그렇잖아요. 쇼프로는 좀 우습게 보고, 코미디언은 낮게 보고.
-팬텀과의 계약은 언제 만료인가요.
=에, 그거는 보안입니다, 보안. 탑 시크리트. 근데 다들 영화 얘기는 별로 안 물어보고 <무릎팍도사>만 물어보고….
-그게 제일 이슈이다 보니. 지금 <무한도전>과 함께 버라이어티계의 쌍두마차이지 않습니까.
=내년에는 <동안클럽>이 치고 올라올 겁니다.
-<동안클럽>도 출연하세요.
=포맷이 바뀌어가지고 제가 투입이 되면서, 기타를 치고 전세계를 돌면서, 뭘 먹으러 댕깁니다.
-신년에 투입되는 프로그램들이 더 있습니까.
=코미디 프로 몇개 한다든데, 아직 포맷이 안 나와가지고요.
-훨씬 더 바빠지겠네요.
=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