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6일 일요일 오후 5시, 용인 성지중학교 복도에 때아닌 뮤지컬 무대가 펼쳐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여섯 번째 인권영화프로젝트 중 방은진 감독이 연출하는 <진주는 공부중>의 촬영현장이다. “우린 아직 어려요. (…) 바람이 불면 절벽으로 밀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스스로 날아요.” 방준석 음악감독이 만든 곡에 방은진 감독이 가사를 붙인 노래에 맞춰 교복을 입은 26명의 여학생들이 춤을 춘다. 안무가 박해준(<발레교습소> 등)과 함께 총 10회에 걸쳐 율동을 익힌 이들의 풋풋한 모습이 특별한 조명없이도 그저 눈부시다. 한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스탭을 돌아보며 “너무 귀엽지?”라고 반문하는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이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 역시 더없이 즐거워 보인다. 중학교 2학년. “거대한 입시지옥에 아직은 발을 들이지 않은, 주어진 환경을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완전히 튕겨져나간 이들로 나뉘기 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전교 1등과 꼴등이 한반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그린 <진주는 공부중>은 뮤지컬이다. 단지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늘 주눅들어 공부하는 우등생 박진주와 언제나 당당하고 꿈 많은 꼴찌 마진주의 모습을 “음악의 힘을 빌려”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20분짜리 단편이지만 컷은 600컷에 육박하고, 상시 동원되어야 하는 배우 26명을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두세명씩 선발했으며, 잠깐 얼굴을 비추는 10명 가까운 교사들을 꼼꼼히 섭외하는 등 “7천만원짜리가 아니라 7억원짜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이진숙 총괄 PD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내년 전주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고 이후 개봉하게 될 이번 인권영화프로젝트에 참가한 감독은 이 밖에도 김태용, 이현승, 윤성호, 전계수 등이다. 12월20일 <진주는 공부중>이 마지막 촬영을 무사히 마치면서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뺀 네편이 촬영을 마무리했다. 실사영화로는 네 번째로 시도되는 이번 인권영화프로젝트의 공통주제는 청소년 인권이다.
진주를 빛나게 하는 게 내 역할
선생님 역의 배우 성지루
다음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미술실 칠판을 도화지 삼아 어린 배우들과 함께 낙서에 열중한 그 모습이 영락없는 담임선생님이다. 아이들이 돋보여야 하는 영화 속 전형적인 선생님으로 얼굴을 비추는, <진주는 공부중>의 유일한 베테랑 배우 성지루에겐 출석부와 지휘봉이 썩 잘 어울렸다. 최지용 프로듀서를 비롯해 연극배우 시절부터 좋아했던 선배 방은진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단편영화 출연이 이것으로 벌써 네 번째다.
“선생님 중에는 가장 비중이 크지만, 두명의 진주가 돋보이게끔 도움을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대체로 성깔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재밌는 구석도 있는 담임이다. 아이들 눈에는 악역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 장면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춤추는 장면도 찍었다. 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환상 속에서는 그처럼 등장한다는 뜻이니까 특별히 악역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달라 보이니, 인물보다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 최근 <산타마리아> 촬영이 끝나고 합류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너무 적극적이고 나를 많이 따른다. 어제, 오늘 봤다고 이제는 막 친한 척도 하고, 함께하는 게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