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장근석] 열아홉, 즐거운 인생
2007-12-28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장근석은 만 열아홉살 소년이다. 무엇이든 이제 ‘처음’일 게 많은 나이. 그는 인생의 제2기에 돌입해 있다. 2007년 가을,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으로 배우 장근석을 처음 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전인 2006년 가을, 드라마 <황진이>로 탤런트 장근석을 처음 접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전에도 장근석은 이미 스타였다. 밝은 햇살 아래 친구와 함께 학교 담장을 멋지게 뛰어넘는 모 교복CF, 고아라와 함께 새하얀 교실에서 춤추는 모 이동통신CF는 이미 장근석의 알려진 얼굴을 이용한 것들이었고 봉태규, 현빈, 한예슬, 이윤지 등이 출연한 시트콤 <논스톱4>(2003∼2004)에서 장근석은 밝은 갈색 머리칼에 꽃무늬 셔츠가 잘 어울리는 꽃미남 대학생으로 안방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장근석은 자기 이름을 내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장근석의 영스트리트>), TV 가요프로그램 MC와 케이블TV 리얼리티쇼 MC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작 열아홉살이지만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그가 해온 일들은 많고 다양하다. <황진이>와 <즐거운 인생>이 화제가 되지 않았어도 장근석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금방 매치되는 연예인이었다.

장근석은 아이돌 스타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케이블방송 <HBS>의 드라마 <행복도 팝니다>(1997)로 연기 데뷔를 치르고 지금의 10대들이 즐겨봤던 어린이드라마 <요정 컴미>(2000~2001)에 출연하는 등 아역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장근석은 바로 그 ‘아역배우 출신’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 <논스톱4>의 스타일 뿐이었다. 일본 호러 <착신아리 파이널>(2006)에도 출연하고, 광고도 찍고, 여기저기 얼굴은 계속 나오는데 ‘그래서 그는 뭐하는 사람이야’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조금 난감한. 짝사랑으로 깊은 병을 얻는 도령 은호(<황진이>)와 절망한 40대 가장들을 닦아세워 그들을 무대로 이끄는 열정과 냉정의 로커 현준(<즐거운 인생>)이 아니었다면 곧 개봉할 로맨틱코미디 <기다리다 미쳐>의 장근석을 의미있게 눈여겨보기란 지금보다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다. 6살 연상의 여자를 두고 군대에 가게 되는 이 영화의 캐릭터와 더불어서 1월부터 방영될 TV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야망 많은 남자 이미지에도 얼핏 일어나는 기대는, 이제 존재감을 명백하게 알리기 시작한 배우 장근석에 대한 기대다. 그럼 이전의 장근석, 만 열아홉살 아이돌 소년의 인생 제1기는 어떠했나. 오전 9시30분, 사진 촬영장소에 나타난 그가 밥을 못 먹었다며 스탭에게 “나는 맥모닝~” 하고 메뉴를 주문하는 모습을 볼 때까지만 해도 우리 역시 아는 바가 없었다.

-<즐거운 인생>과 <기다리다 미쳐>를 선택한 시기가 비슷했다. 어떻게 각각의 영화를 택했나.
=그 시기가 드라마 <황진이>를 끝내놓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을 때였다. 그런 것들을 확립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선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쉬워 보이더라도 일단 잘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고른 게 <기다리다 미쳐>였고, 불과 며칠 사이에 <즐거운 인생>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무조건 한다 그랬다. (누군가 커피를 갖다주자 갑자기 고음의 목소리로 반갑게) 어머~ 땡큐!

-<기다리다 미쳐>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데 <즐거운 인생>의 경우는 사람들이 한 번쯤 ‘왜 장근석일까’라고 했을 것 같다.
=장근석은 왜 끼어 있을까? 나도 너무 많이 들었다. 배우로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알았고, 그때 오기가 생겼다. 선배들을 이기고 싶다는 건 아니었는데, 자꾸 비교 대상이 되니까 지고 싶지 않은 욕심은 있었다. 연기로서는 이길 수 없어도 열정에서만큼은. 그들이 이미 즐겨버린 젊음이 나에게 있고, 그만큼 덤빌 자신이 있었다. 적이 많아야 끊임없이 성찰을 하면서 정진할 수 있는 것 같다. 옹호자들만 있으면 너무 편해진다. 쉽게 가게 되고. 그들의 채찍질이 때로는 더 큰 연료 성분이 된다.

-적의 존재를 처음부터 그렇게 인정하긴 어렵다. 본인이 그걸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된 시점이 언제라고 생각하나.
=<황진이>였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수많은 질타와 욕설과 비방과. (웃음) <논스톱>에나 나오던 애가 뭔데 저기서 하지원이랑 하냐. 처음엔 상처를 진짜 많이 받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너희들 그렇게 욕하지, 내가 너희들을 다 뒤집어줄게, 가 됐다. 마인드의 차이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부정적인 마인드가 세상을 다르게 보듯 내가 자신감을 가지니까 조금씩 되더라. 실제로 드라마 시작하고나서 시선들이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걸 맛본 이상 계속 그 느낌을 갖기 위해 어떤 작품을 하든 거기 빠져들고 집중하게 된다. 그게 너무 신난다.

-그런 목표의 대상이 <황진이> 전에는 어떤 거였나.
=없었다. 그때는 어떤 목표도 없었고 그냥 사람들이 날 알아본다는 것에 만족했다. 난 TV 나오는 연예인이야. 사인? 해주지 뭐. 사진 찍어? 아 귀찮아. 그런 식이었다. <논스톱4>가 끝나고서 슬럼프가 왔다. 개인적으로 정말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런데다 거기 같이 나왔던 배우들이 하필 다들 잘됐다, 나만 빼고. 내가 뭐하고 있었던 거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바닥까지 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목표의식을 하나씩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대학. 대학은 원래 신문방송학과를 수시모집 때 넣었다. 내신이랑 수상기록 등등 여건은 다 만족스러워서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학교에서 연예인은 안 받는다고 해서 떨어졌다. 그 담에 연극영화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낮에 학교 갔다가 오후에 드라마(<프라하의 연인>) 촬영하고 저녁에 라디오(<장근석의 영스트리트>)하고 밤 11시에 대학로 넘어가서 새벽 3시까지 과외하고 독백연습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붙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연극을 해보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꿈꾸던, 남이 설계해준 목표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내가 세운 첫 목표였던 것 같다.

-왜 신방과를 가려고 했나.
=일단 되게 오만한 생각이었다.

-왜 오만하나. 그럴 수도 있지.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열살 때부터 시작했고 현장에서 배울 만큼 배웠기 때문에, 나는 지식은 없어도 현장에서의 스킬은 갖고 있어서 어디 가서 연기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있어, 하는 오만함과 되지도 않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왜 연영과를 들어가서 처음부터 연기를 다시 배워야 하지? 싫어. 내가 하고 있는 방송의 주체적인 무언가를 알고 싶어, 그래서 신방과를 간다고 했던 거였다.

-아역배우 출신이 대부분 그렇듯 본인도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해왔다.
=주주다. (미소)

-어머니가 본인에게, 넌 이런 스타가 되었음 한다, 이런 연기자가 되었음 한다, 얘기한 게 있나.
=우리 엄마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게, 나서시진 않는다. 내 뒤에서 그림자처럼 방향만 알려주고, 이리 가면 어떻겠니 저리 가면 어떻겠니 상의해온다. 회사에서 내 위치 잃지 않게 항상 자리잡아주시고. 정산 꼬박꼬박 받아주시고. (웃음) 어머니와의 관계는 너무 좋다. 너무 좋은데, 어머니의 틀이라는 게 있다. 요즘에는 내 자신을 찾기 위한 약간의 의견차가 어머니와 생겼다. <즐거운 인생>을 촬영하면서 특히 그런 게 있었다. 예전에는 어머니 말씀이 무조건 정답이고 엄마와 내가 의견을 조합해나가는 방향이었는데 이제는 내 자신의 선택, 내 자신을 믿고 싶고 지금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처럼 독립해서 전기세도 직접 내보고, 빨래도 직접 하고, 사랑에도 배반당해보고 싶고, 우정에도 배반당해 아파해보고 싶고, 그런 것들에 지금 나는 두려움이 없다. 내겐 젊음이 있고 패기가 있기 때문에 다 뚫고 나가보고 싶다.

-<논스톱4>와 대입 사이에, 어린이뮤지컬 <헤라클레스>(2005)도 했다.
=할 게 없었다. <논스톱4> 끝나고 한동안 작품없이 계속 쉬었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 운좋게 뮤지컬이 들어왔다. 그때도 거만하게, 에이 안 할 거야, 그러고 겁도 없이 쟀다. 연습 며칠 나가서 하면 되겠지, 했는데 무대 위에서 내가 너무 ‘메롱’인 거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인데 대사 까먹고.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이게 아니구나, 이래 가지고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연기를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까지 갖고 있던 모든 걸 다 버리고 대학로로 갈 용기는 없었고, 대학에 가서 체계적인 지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현장에서 쌓은 지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을 배워 습득하고 현장 가서 지혜를 부려야겠다고. 뮤지컬이 나에겐 큰 전환점이 됐다. 그때 예능쪽이나 음반쪽 등으로 빠졌다면 나는 지금쯤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 시기에 이 일을 그만둘 생각도 있었나.
=있었다. 주변에서 찾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들한테 점점 잊혀져간다는 게 많이 두려웠고,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고 ‘장근석이다’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무감하게 지나가버렸을 때의 그 냉담함. 같이 라디오하면서 알게 된 연예인 형들과 밥 먹으러 갔는데 그들에게는 다 사인 받으면서 나한테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렸을 때. 이건 어느 연예인한테나 되게 상처가 되는 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너무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만큼 그 반대의 상황은 얼마나 희열인 줄 아나. 얼마 전에 <SBS 인기가요> MC 그만두면서 신혜성 형이랑 희철이 형이랑 나랑 스탭들이랑 밥을 먹으러 갔다. 어떤 40대 중년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즐거운 인생>에 나오는 배우 아니냐’ 해서 ‘예, 맞아요’ 그랬더니 자기가 그 영화 팬인데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사인 한장만 해달라고 하시더라. 펜을 집어드는데 손이 너무 떨렸다. 처음 느낀 희열이었다.

-만약에 <기다리다 미쳐>나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가, 정말 만약에, 잘 안 된다면 어떡하나.
=그러면 일단 이유가 있는 거다. 재미가 없었다든가 혹은 내가 내 캐릭터에 치중을 못했다든가. 근데 영화나 드라마는 안 돼도 내 캐릭터는 살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죽었다 그러면 나는 쉬어야 한다. 올해 2월부터 한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지금도 1분 안에 울어보라 그러면 울 수 있을 정도로 내 안에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하고 도전해보기로 한 것인데 그만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건 지금 내가 너무 피로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과 같은 슬럼프가 또 올 수도 있을까.
=그때는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마저 없었다. 이제는 나에게 뭐가 부족한지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있고, 장근석이라는 콘텐츠에 대해서 프라이드가 있기 때문에 절대 그런 슬럼프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쪽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어떤 거였나.
=내가 유치원 다닐 때였는데 부모님이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그때 탤런트 장용 선배님이 우리집을 보러 오셨다. 그분이 내 눈을 똑바로 보시더니, 얘 나중에 연예인 시키라고, 얘는 정말 하면 잘될 애다, 하셨다더라. 엄마가 얘기해주신 거다. 그때 그분의 한마디가 부모님에게 긍정적인 의견을 자리잡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버지가 배우를 하고 싶어하셨던 분이다. 끼도 많으셨고. 외할아버지도 연극배우를 하셨던 분이고. 그래서 가족들 얘기론 그 피가 나한테 다 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건 모르겠고(웃음) 나는 나다.

장소 앤틱 백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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