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에서 내털리 포트먼이라면 결코 휘말리지 않을 사건의 리스트로 제시한 것들이다. 유명 스트립클럽에서 케이트 모스와 폴 댄스(pole-dance)를 추는 것, 스칼렛 요한슨처럼 화장실 벽에 적힌 외설적인 농담의 주인공이 되는 것, 남자친구와 포르노 비디오를 찍는 것, 그리고 마약을 하는 것. 다시 말해 1994년 <레옹>으로 강렬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내털리 포트먼은 별다른 스캔들없이 안전하고 명석하게 어른배우로 도약한 가장 성공적인 예다. 기자들이 그녀를 장식하는 수식어로 질리지 않고 사용하는 말 중에도 “하버드를 졸업한”, “똑똑한”, “자의식 강한” 따위가 독보적으로 많다. 배우로서의 성공보다 그 부작용에 민감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한때 성적인 느낌이 드는 역할은 모두 거절했다지만 눈에 띄게 어른스러워진 <클로저>(2004) 이후 포트먼은 다소 도전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시리즈 사상 유례없이 극진한 사랑을 그려 조지 루카스가 “신파 <스타워즈>”라고 귀띔했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제외하면, 극중 역할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했던 <브이 포 벤데타>나 마음을 끄는 시나리오만 믿고 출연을 결심했다는 신인 잭 브래프 감독의 <가든 스테이트>, 매번 코웃음치듯 가볍게 무시하려 했지만 다시금 누드신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스페인영화 <고야의 유령들>, 이쑤시개를 입에 문 채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다즐링 주식회사> 모두 그리 안정적인 선택만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지적이고 용감한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자기 확신이 결여된 장난감 가게 점원 몰리를 연기한 <마고리엄의 장난감백화점>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의 시나리오를 썼던 자크 헬름의 연출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역배우 출신의 그녀가 처음 출연한 “아동영화”다. “예전에 친구들이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타워즈>는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광선검이 나오긴 해도 싸우는 장면들이 많아 아이들에게 딱히 보여주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처음 이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스스로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동시에 ‘내 친구의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겠구나’ 싶더라.” 일찍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기가 막히게 연주해 “음악 신동”으로 불렸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도 가장 자신있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뿐이라는 몰리는 자신 안에 숨은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인물.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등과 협연하고 뤽 베송, 마이클 만, 조지 루카스, 앤서니 밍겔라, 웨스 앤더슨 등을 매혹시킨 배우와는 비슷한 구석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포트먼은 오히려 “나는 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것 같다”고 받아친다. “내 또래들은 놀라운 세상에 열중해 살고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일이 뭔지 알아도 정작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이런 딜레마가 정확히 지금의 나와 부합하는 점이다. 나 역시 갈림길에서 불안감을 떨쳐내고 내 의지와 생각을 고수하면서 무엇에 의욕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혼란스러운 감정의 실타래마저 논리정연하게 풀어낼 것 같은 내털리 포트먼은 연기, 나아가 좀더 공정한 삶을 위한 모험답안이 무엇인지 얄미울 정도로 정확히 꿰뚫고 있는 배우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완전한 채식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계란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고”, “되도록 가죽이나 모피는 입지 않으려 하”며, “‘새것은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흔치 않은 셀레브리티인 그녀에게 찬사를 퍼붓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처사다. “민주당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은 정말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다른 모든 여성들에게 큰 힘과 희망이 될 것 같다. 정치나 그린피스, 자선활동, 마이크로파이낸스(저소득·금융서비스 소외계층을 위한 소액금융서비스)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원하고 싶고, 보람있거나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27살의 나이에 25편이 넘는 출연작을 쌓아온 포트먼의 차기작은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시대극 <디 아더 볼린 걸>. 헨리 8세가 교황의 반대에도 기어이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할 만큼 매혹적이었으나 그의 변심으로 단두대에서 운명을 마감하고 마는 비운의 여인 앤 볼린 역을 맡았다. 그녀와 정반대의 매력을 발산하는 육감적인 나신의 소유자 스칼렛 요한슨이 언니 메리 볼린으로 등장한다니, 잠시나마 헨리 8세의 침대를 점령했던 두 여인의 대조가 은근히 호기심을 자아낸다. 물론 연인을 사랑한 심장으로, 열렬히 민주주의의 성취를 소망했던 아미달라 여왕의 후예라면, 상대 여배우와 윈윈하는 방법 역시 단숨에 체득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