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여섯달 동안 미친 듯이 사랑했다. 두어개 계절을 품에 안고 지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넘치는 사랑에 그는 행복해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전광석화와 같은 이별통보를 받고 왜? 왜? 왜? 를 외치며 괴로워한다. 또 같이 걷던 거리, 같이 먹던 식당, 같이 이야기하던 조그만 포장마차, 오로지 자신의 영역이었던 공간에 침범한 그녀의 기억들에, 너는 그랬니 나는 그랬어라며 나를 보여주고 너를 알아가던 소중한 그놈의 기억들로 괴로워한다. 축약하자면 남자는 추억과 의문으로 괴롭다.
남자는 기억 때문에도 괴롭지만 이별통보 하루 전까지 사랑을 쏟아내던 그녀가 왜 갑자기 이별통보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앉는다. 의문은 점점 커져 남자의 뇌를 터뜨릴 것 같다. 하루 전 간단한 통화에서도 이별의 징조는 없었다. 아니 있었던가.
“나는 노란 튤립을 좋아해.” 통화 중에 남자는 말했다. “어… 정말… 노란 튤립을 좋아해? 나는 너무 싫어하는데….”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말했다 “어… 그럴 수도 있지.” 여자는 말했다. “아냐… 우리가 그렇게 다른지 몰랐어.” 설마… 그 통화 내용 때문인가… 그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갈등은 전날 그것밖에 없다. 노란 튤립 때문에? 설마….
남자의 머릿속은 의문 천지다. 그녀는 태연스럽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이유를 묻는 그에게 사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르다고… 설마 그 다른 이유가 노란 튤립 때문은 아니겠지… 그리고 벙쩌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애완견 아롱이의 설사가 요즘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가려는 여자를 붙잡자 저녁때 엄마와 쇼핑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금방 가봐야 한단다.
이 행동은 뭐지? 남자는 의문에 휩싸여 집에 들어와서는 이불 안에서 실연의 아픔과 싸워야만 했다. 의문이 점점 커진다. 이별 일주일 만에 남자는 여자의 블로그를 뒤적거린다. 여자는 이별한 다음날 이승환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에서 즐거움을 만끽 중인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 있다. 다이어리에는 아롱이의 설사가 나아가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만 있다. 그 남자의 존재는 없다. 폭발 직전의 뇌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잡은 단서이자 의문은 노란 튤립과 이승환 콘서트와 아롱이의 설사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문을 꿰뚫는 단 하나의 결론은… 남자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천장에 대고 외쳤다.
“젠장… 넌… 넌 사이코패스야”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연애에 있어 사이코패스… 이별에 대한 소멸에 대한 감정의 자각이 없다. 그래 넌 분명 사이코패스일 거야….
의문은 풀리고 추억은 남자에게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기억과 소멸에 자각이 없는 이와의 추억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21세기 이 화려한 대한민국에서 운이 없는 당신은 언제든 이런 종류의 사이코패스를 만날 수 있다. 보통 사람처럼 다가와 사랑을 주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척하다가 어느 날 돌처럼 차가운 심장을 보여주고 당신과의 추억을 구겨서 휴지통에 버릴 것이다.
연애에 사이코패스가 난무하는 시대다. 물론 당신이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세상 사는 데 편할지도 모르겠다. 따뜻함으로 위장한 채 사랑을 주는 척하다가 쌓였던 추억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 위에 비듬처럼 털어버릴 수 있다면 말이다. 역시나 범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추억은 관계맺음이 끝난 이들에겐 어마어마한 독일 때도 있지만, 그 독이 독이 될 수 있는 미련한 사람이 되는 게… 그러한 미련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추억에 아파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미련함이다.
장 비고의 유작 <라탈랑트>(1934)는 무척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영화다. 그 영화가 아름다운 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탐욕스럽고, 집착하고, 소유하기 위해 상대방을 상처내며, 추억 앞에 미련하기 때문이다. 라탈랑트호의 가난한 젊은 선장은 결혼을 하고 신부와 함께 항해를 떠난다. 가난한 부부의 삶은 그런대로 만족스럽지만 젊은 신부는 호기심이 많다. 그녀의 호기심을 붙드는 세상은 선상 위로 흘러가지만 선장의 욕심은 신부를 배 안에 가두어놓으려고만 한다. 신부는 어느 날 파리의 밤거리에 취해 라탈랑트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선장은 질투심에 그녀없이 항해를 시작하고 만다. 그리고 우연이 그들을 다시 맺어줄 때까지 그 둘은 서로를 죽도록 그리워한다. 아직도 라탈랑트의 두 남녀의 재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사실 모든 사랑영화는 그러한… 사랑에 대한 추억에 대한 미련함이 있다. 하지만 영화 <라탈랑트>는 유독 미련스럽고 어리석으며 눈물나게 사랑스럽다. <라탈랑트>는 수많은 인간적인 매혹을 지닌 보물창고 같은 영화다. 나에게는 천번을 봐도 지겹지 않은 영화다. 물론 구백오십번 정도를 채워야 천번을 보는 게 되겠지만. <라탈랑트>는 점점 사이코패스를 향해 진보하고 있는 너와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