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워킹타이틀이 제작한 <러브 액츄얼리> 바이러스는 엄청났다. 이듬해 <새드무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연말연시를 겨냥한 옴니버스영화 붐을 일으키더니, 올해도 종합 ‘러브 스토리’ 선물세트 두편을 탄생시켰다.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든 개기일식을 계기로 사랑을 찾거나 떠나보내거나 인정받거나 뒤늦게 발견하는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내 사랑>과 군대 간 남친과 기다리는 여친, 일명 ‘군화’와 ‘곰신’ 네 커플의 파란만장 730일을 다루는 <기다리다 미쳐>가 바로 그것이다. 두 영화는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루는 점에서, 딱 네 커플을 고른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랑이 애틋한 기다림과 연관되는 점에서 닮은꼴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글은 ‘무엇이, 무엇이 닮았을까’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게임의 규칙은 ‘다른 그림 찾기’로 바뀌었다. 비슷해 보이는 두 영화의 외양 속에 숨겨진, 사랑에 대한 다른 이해. 그것을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지고지순한 기다림 vs. 어쩌다보니 기다림
두편의 영화에서 사랑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테마는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을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내 사랑>은 달과 태양이 만나는 개기일식을 은유적으로 차용한다. 낮과 밤이라는 상반한 영역에 존재하던 하늘 위의 존재들이 120년 만에 만나는 숭고한 순간에 오랫동안 기다리고, 더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남녀가 만난다. 그 덕분에 이들의 만남에는 어쩐지 운명이니, 일생이니, 유일이니 하는 묵직하고도 경건한 수식어들이 들러붙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3년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장난꾸러기 연인 주원(최강희)의 기억은 현재의 세진(감우성)의 삶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고, 신입생 때부터 좋아해왔던 선배 지우(정일우)를 따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그를 해바라기하는 소현(이연희)이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하는 카피라이터 정석(류승룡)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무리 밀어내도 덤비는 수정(임정은)이 있고, 6년 전에 헤어진 연인의 전화 한통을 받으러 한국으로 돌아온 진만(엄태웅)도 있다.
반면 <기다리다 미쳐>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그리고 그런 남성들을 애인으로 둔 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혹은 여러 번 경험해봤을 군입대가 기다림의 계기가 된다. 통과의례의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워낙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운명이니 뭐 그런 말보다는 ‘너 고생 좀 하겠다’ 정도로 위로받는 수준에서 끝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절차를 거치면서 군대 안팎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커플은 약동하는 젊음을 묶어둔 2년 동안 그런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6살 연상연하커플(장근석/손태영)은 나이의 벽과, 사회와 군대의 거리를 깊이 실감하고 거의 이별 직전까지 갔다가 해후하고,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던 닭살 CC(김산호/유인영)는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다. 원래 단순히 밴드 멤버였던 커플(장희진/데니안)은 ‘세상에서 가장 꼬시기 쉬운 게 군대 간 남자’라는 공식을 잘 살려 연인이 된다. 그리고 같은 집에 살던 날라리 커플(한여름/우승민)은 다소 시끌벅적하게 멤버 교체를 하면서 그냥 잘 산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오래 기다림의 미덕을 칭송한다. 그러나 <내 사랑>이 기다림 자체를 사랑의 순도와 등가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달리 <기다리다 미쳐>는 그것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한 가지일 수 있다고만 말한다. 그런 차이가 <내 사랑>의 모든 연인은 겉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마치 한 종류의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기다리다 미쳐>의 연인들의 사랑이 좀더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번쯤 본 듯한 연애담을 말랑말랑한 클리셰에 녹여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아이디를 바꿔가며 도배질하는 듯한 전자에 반해 이 사람 저 사람이 올린 듯한 글을 짜깁기한 후자가 좀더 재밌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관계에 대해 일원화한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 점에서 좀더 매력적이다. 적어도 <기다리다 미쳐>는 기다림과 기다지 않음 사이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걸 알려준다. <내 사랑>에서 모든 기다림이 긍정적인 답변으로, 그렇지 못하면 적어도 유일한 사랑으로 가치평가받는 것과 달리 <기다리다 미쳐>는 헤어져도 각자 웃으며 만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해주기 때문에 사랑을 보는 좀더 포용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섹스리스 천사들 vs. 몸이 먼저 가는 인간들
기다림과 사랑에 대한 등식을 보여주는 <내 사랑>보다 그 사이의 약간 복잡한 함수관계를 설정하는 <기다리다 미쳐>가 더 확실하게 갈라서는 지점은 바로 ‘섹스’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 사랑>에는 섹스가 없고, <기다리다 미쳐>에는 섹스가 있다. 그 때문에 전자는 판타지가 되고, 후자는 로맨틱코미디가 된다.
<내 사랑>에는 섹스신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그것은 있는데 없는 척 넘어가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순수한 사이들이라서 통 그럴 생각들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섹스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세진과 주원이 지하철에서 타의로 부비부비하다가 얼굴이 빨개지는 정도다. 이외에는 각 커플의 뽀뽀-키스가 아니다- 정도가 <내 사랑>에 등장하는 육체적 관계의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향해 “귀여워, 귀여워”를 외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노래가 관객의 정서를 대변한다기보다는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를 강요하는 캠페인송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 모두 다 육체적으로 끈적끈적하게 굴어야만 현실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날개없는 천사처럼 똑같이 동화에나 나와야 하는 수준의, 그리고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그런 무색무취의 섹스리스한 관계만을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은가. 이한 감독이 <연애소설>에서 그런 사랑을 선보였을 때는 나름의 동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어떤 남녀들의 특수한 삼각관계에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시간, 다른 세계에 속한 모든 커플이 ‘귀여운 사랑’만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좀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프리허그 운동가 진만의 ‘프리허그’가 공허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프리허그’를 처음으로 생각해낸 이는 분명 차가운 이 세상을 인간의 온도로 따듯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미있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진만의 방황이 왜 프리허그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성의있는 대답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것은 현실성 제로의 ‘귀여운 사랑’처럼 그저 안아주는 행위의 외양만을 모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기다리다 미쳐>에서 섹스는 사랑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섹스를 통해 사랑의 권력관계를 탐구한다느니 뭐 그런 심오한 짓거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건 몰라요’라며 내숭을 떨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비록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바람직한 섹스신은 남보람(장희진)이 서민철(데니안)을 유혹하기 위해 면회를 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남보람의 깜찍한 계획에 따라 서민철은 아직 마음이 동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몸이 움직이는 대로 관계를 막 시작하려는 그 순간, 그녀는 콘돔없는 섹스를 살짝 거부한다. 결국 그녀가 준비한 콘돔을 찾느라 그냥 날이 새고 말지만, 안전한 섹스와 자신의 몸을 위해 당당히 요구하는 남보람은, 좀체로 한국의 주류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섹스가 원래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20대 여성으로 그려진다. 군대 간 애인 때문에 외로워하다가 ‘외로워서 섹스를 할 수도 있구나’ 깨닫게 되는 강진아(유인영)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섹스에 대한 욕구와 그 때문에 빚어진 결과- 짝사랑의 민망함과 파탄 난 연애- 를 자기비하나 자책으로 연결하지 않고 성장통으로 인정하며 훌쩍 자라는 모습은 어떤 ‘가장한’ 순수보다도 아름다워 보인다. 게다가 이전까지 한국영화에서 30대 커리어 여성에게만 한정되었던 섹스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그것에 대한 건강한 자기긍정이 20대 여성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관객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려면
이렇게 유사한 기획의도를 가진 두편의 영화가 현실감각을 상실한 판타지와 현실을 다소 과장한 로맨틱코미디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근본적인 차이는 영화 내부에 자신이 다루는 사랑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서 비롯한다. <내 사랑>의 엑스트라들은 주인공들의 사랑놀음에 동원된 방청객 역할을 충실히 한다. 같이 감탄하고 같이 웃어주고 같이 귀여워해준다. 하지만 <기다리다 미쳐>의 엑스트라들은 약수터신에서 물 뜨러 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처럼 ‘쟤들 뭐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세상도 그 사랑에 포옥 빠져서 같이 웃고 울어 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커플이라면 ‘염장질’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사랑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까지 헤아려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들끼리만 사랑하다 마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