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린 사랑>을 두고 케빈 리마 감독이 말했다. “디즈니의 정수를 담은 통조림 같다. 이 영화의 8분짜리 오프닝에 물만 부으면 88분 분량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완성될 것이다.” 곳곳에 포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익숙한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은 이 영화를 관람하는 또 다른 재미. 전세계의 디즈니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발견한 숨은 공통점까지 합치면 그 목록이 꽤나 흥미롭다. 대부분의 평범한 관객이 적극 참고할 만하다.
1단계 초심자용- 이 정도는 기본
공주들에겐 육해공 동물 친구들의 도움이 필수다. 일곱 난쟁이의 집을 청소하던 백설공주와 집안일을 하거나 파티용 의상을 준비하던 신데렐라처럼 애니메이션 지젤은 비둘기, 사슴, 다람쥐 등과 함께 ‘진짜 사랑의 키스’를 선사할 꿈속 왕자님의 모습을 그리며 노래하고, 독신남 로버트의 집에서 아침을 맞은 실사영화 속 지젤은 비둘기, 쥐, 바퀴벌레의 힘을 빌려 대청소를 감행한다. 애니메이션 지젤이 두개의 보석으로 왕자의 눈을 표현하는 것은 <인어공주>를, 실사 지젤이 청소하는 모습이 비눗방울에 가득한 것은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한다. 전자에 흐르는 <True Lover’s Kiss>가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나타날 거’라고 믿던 백설공주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의 카피라면, 후자에 흐르는 <Happy Working Song>은 <백설공주>의 <Whistle While You Work>와 신데렐라의 <Work Song>을 교묘하게 섞었다. 지젤이 센트럴 파크에서 벌이는 거대한 군무 장면 속 <That’s How You Know>는 <인어공주>부터 <포카혼타스>까지 20세기 후반 디즈니의 새로운 전성기를 함께했던 작곡·작사 콤비 알란 멘켄과 스티븐 슈워츠의 셀프 패러디. <Under the Sea>(<인어공주>), <Be Our Guest>(<미녀와 야수>)를 닮았다. 로버트와 지젤이 해후하는 무도회 장면의 <So Close>가 <미녀와 야수> <알라딘> 속 사랑의 듀엣과 비슷한 것은 예상했던 바다. 루버트의 의상은 물론 샹들리에를 활용한 카메라 앵글과 무빙, 편집까지 <미녀와 야수> 속 춤장면을 연상시키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대부분의 왕자·공주 커플이 그처럼 춤을 통해 사랑을 확인했으니 원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지젤이 독사과를 베어무는 장면은 <백설공주>와 편집리듬까지 똑같다고 감독이 고백한 바 있다. 참고로 감독에 의하면, 지젤이 언덕 위를 달리며 노래하는 건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라 <미녀와 야수>를 참고했다.
2단계 중급자용- 이 정도면 당신도 전문가
이제부터는 각종 크레딧까지 꼼꼼히 챙겨야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지젤이 로버트의 사무실에서 어항을 바라볼 때 <인어공주> 속 <Part of Your World>의 한 소절이 흐르는 걸 눈치챈 관객이라도 그 노래를 로버트의 비서가 흥얼거렸으며 비서를 연기한 배우 조디 벤슨이 <인어공주>의 애리얼 목소리를 맡았던 주인공임을 알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세개의 인명으로 이뤄진 그 회사의 이름은 <백설공주>의 작곡가 세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이혼 소송으로 이곳을 찾은 부부의 이름 뱅크스는 <메리 포핀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의 불운한 약혼녀 낸시의 성은 신데렐라의 계모의 성과 발음이 같고, 지젤이 벌이는 소동에 대해 보도하는 TV리포터의 이름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백설공주>의 주연 성우의 이름에서 하나씩 빌려왔다. <포카혼타스>의 주연 성우는 로버트와 같은 빌딩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미녀와 야수> 속 벨의 성우는 TV연속극의 주연배우로 얼굴을 비췄다.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로버트의 성은 필립인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왕자의 이름과 같다.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동화책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내레이터는 줄리 앤드루스가 맡았다.
3단계 상급자용- 이건 감독도 몰랐다
“정말 그걸 찍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고전 디즈니 만화의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는 모양이다.” 지젤과 로버트가 센트럴파크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이 <인어공주>와 비슷하다는 팬들의 지적에 대한 리마 감독의 반응이다. 다섯살 때 <정글북>을 본 뒤 디즈니 애니메이터를 향한 일편단심의 목표를 유지했다는 감독은 <타잔>과 <102 달마시안>을 연출했을 뿐 아니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의 주요 조연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알라딘>에서는 스토리보드 작업을 함께한 바 있다. 이 어마어마한 디즈니광(狂)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숨은 요소를 찾아낸 이들이 바로 네티즌인데, 이들의 눈썰미는 지젤이 현실세계에서 처음 목도하는 타임스 광장에 내걸린 휘황찬란한 광고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에드워드 왕자를 연기한 제임스 마스덴의 출연작인 <헤어스프레이>와 <수퍼맨 리턴즈>, 로버트의 약혼녀 역의 이디나 멘질이 오리지널 캐스트였고 작사가 슈워츠가 참가했던 뮤지컬 <Wicked>와 <렌트>,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 <타잔>… 그곳에 있던 광고판 중 <마법에 걸린 사랑>과 관계된 텍스트의 목록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센 한방. 에드워드가 지젤을 찾아다니면서 노크한 아파트 중 714호가 있는데, 이 숫자는 디즈니 랜드가 원래 위치했던 오렌지 카운티의 지역 코드라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