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머나. 안소희다. <텔미> 한곡으로 지난해 하반기 가요계를 평정한 이 경이로운 소녀가 이제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안소희의 연기 데뷔작은 세 여성의 연애담을 솔직담백하게 그린 <뜨거운 것이 좋아>.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엄마 영미(이미숙), 시나리오작가인 이모 아미(김민희)와 함께 사는 고등학생 강애를 연기한 안소희는 40대와 20대가 됐지만 여전히 철이 없는 어른들을 챙기고 집안일도 도맡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더걸스 일원으로 10대들의 세계와 30대 이상 중년층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처럼 영화 속에서도 안소희는 어른들의 세계를 의젓하게 중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또래 속에서 강애는 숙맥에 가깝다. 남자친구인 호재(김범)와 스킨십을 갖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강애는 친구 미란과 예행연습을 하다 묘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실제 저와 닮은 면이 있기도 하고, 호기심도 많은 아이이기도 해서 재밌을 것 같았어요.” 무대 위에서는 거침없이 춤과 노래를 하지만 생활에서는 말도 별로 없고 무심한 편인 실제 성격과 영화 속 캐릭터가 비슷했다는 것.
안소희의 영화 출연은 한창 뜬 아이돌을 이용해 먹으려는 영화사의 얄팍한 전술의 결과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안소희가 <뜨거운 것이 좋아>에 캐스팅된 것은 지난해 3월. 그러니까 원더걸스가 <아이러니>를 담은 싱글음반을 낸 직후다. 영화사는커녕 원더걸스를 키워낸 박진영조차 이런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던 그때 안소희는 연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또래 친구들보다 연예계를 미리 알게 됐고, 많이 보고 많이 알게 되니까 재밌어지더라고요.” 안소희가 JYP 연습생으로 들어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4년. 안소희는 연습생 시절부터 노래와 춤뿐 아니라 연기에 대한 지망 또한 분명히 밝혔다. “연기에 대한 꿈은 가수에 대한 꿈과 비슷하게 시작했어요. 계기는… 잘 모르겠고, 하여간 전도연 선배님이나 박해일 선배님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만두소희’라는 별명을 붙여준 볼록한 두볼을 실룩거리며 안소희가 말한다.
안소희가 강애 역에 발탁된 것은 연기에 그야말로 생짜 초보였기 때문이다. “조감독에게는 스무살 때의 배두나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예쁘지도 않고, 규격화된 연기에 매여 있지 않은 배우를 찾고 있었다”고 권칠인 감독은 말한다. 강애 역을 두고 지난해 2월쯤에 열린 비공개 오디션에는 각 매니지먼트 회사가 힘을 기울여온 신예 연기자들이 응모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았지만, 소희는 학원에서 배운 연기가 아닌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줬다”고 권칠인 감독은 회고한다. 그러니까 안소희는 ‘같은 성형외과 출신 아니야?’ 하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외양으로 등장하는 여타 아이돌과 달리 정형화되지 않은 외모와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 외려 뜨거운 반응을 얻은 원더걸스의 성공담과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찍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찍었는데 지금 보면 왜 저렇게 했을까 후회되는 점도 많아요. 자기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감독님이 ‘크게크게 표현하라’는 데도 잘 못한 것 같아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안소희는 깜짝 놀랄 만한 천재적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만큼 연기를 못하지도 않았다. 지금 안소희의 경력만큼, 나이만큼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게 맞는 말일 터. 원더걸스가 되기 위해 매일 노래방에서 수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연습했고, 지금도 자신있는 라이브 가창을 위해 잠 못 자고 있는 지금의 자세를 유지하는 한 안소희의 배우로서의 미래 또한 열려 있다. “연기를 한번 하고 나니까 이제야 조금은 뭔가를 알 것 같아요. 다음에는 개성이 강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당분간 살인적인 일정에서 벗어나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휴식을 취하게 된 안소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이다. 모두를 ‘어머나’하게 해줄 엄청난 연기를 해주오, 비욘세처럼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오, 다음번엔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드러내주오 등등. 하지만 누구라도 그런 기대를 한방에 실현시켜줄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게다가 안소희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새싹 아닌가. 그러니 이 한마디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소희양, 지금 이대로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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