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임스 마스덴] 2% 모자란 왕자님의 마법
2008-01-10
글 : 오정연
<마법에 걸린 사랑>의 제임스 마스덴

<마법에 걸린 사랑>의 주된 재미는 디즈니 만화영화 속 공주님이 냉소로 가득한 현실에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시각적인 면에서는 공주님도 왕자님을 능가하지 못한다. 부푼 소매의 붉은 벨벳 셔츠와 타이트한 바지, 갈색 부츠와 장갑, 노란 망토를 걸친 왕자님이 버스를 향해 용맹스런 일침을 가하는 모습. 제아무리 심드렁한 관객도 웃을 수밖에.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동화 속 공주님에 대해선 제법 많은 논의와 비판과 이해가 이뤄졌지만, 공주에게 키스하는 왕자님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일 뿐 호기심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백마를 타고 용과 싸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젤을 구하기 위해 맨해튼에 떨어진 에드워드는 인간 냄새를 풍기며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보기 드문 왕자님이다. 주인공인 로버트 역할이 공석이었음에도 처음부터 에드워드에 눈독을 들였다는 제임스 마스덴의 이야기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만화에서는 더없이 완벽한 왕자님이 희한하게도 현실에선 2%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할리우드의 정석. 선의로 가득한 채 언제나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외모는 그저 훌륭한데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듯한 느낌이다. 현실에 찌든 98% 부족한 범인으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지만, ‘사서 고생’이 주특기인 할리우드영화 속 선남선녀들은 이런 완벽한 상대를 뒤로하고 ‘진실한 사랑’을 택한다. 이럴 때 어이없이 버림받는 희생양이 필수적인데, 마스덴은 이런 상황에서 매번 패자였다. 게다가 잘생기고 돈 많고 능력 많은 이 남자는 버려지고도 별다른 동정을 얻지 못한다. 지젤에게 외면당한 에드워드가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약혼녀에게 내 사랑이 되어달라고 꼭 말해야겠어?”는 그의 주된 대사인데,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슈퍼히어로에게, <노트북>에서는 평생 하나의 사랑을 지켜낸 로맨틱 가이에게 두눈 멀쩡히 뜨고 약혼녀를 뺏긴다. 아무리 성실하게 진의 곁을 지키며 엑스맨을 이끌어도 난봉꾼 같은 울버린을 뛰어넘지 못했던 사이클롭스는 마스덴이 연기했던 숱한 ‘삼각관계의 완벽한 패자’ 중 거의 유일하게 원초적인 동정을 이끌어낸 캐릭터다.

재밌는 것은 이 완벽남의 모자란 2%다. 에드워드는 지나치게 로맨틱한 게 문제였고,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광선을 주체할 수 없었던 사이클롭스는 사랑하는 연인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운명이었으며, <헤어스프레이>의 코니 콜린스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를 진행하면서도 TV카메라 프레임 안에서조차 신세대에 밀려 뒷전이었다. 오클라호마 시골뜨기였던 그의 과거와 묘하게 겹친다. “그 시절 나는 일종의 제임스 딘이었는데, 쿨한 면을 배제한 채 외로움만 공유했달까. 여자애들은 나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근육질의 풋볼 거인들만이 눈에 띄는 그곳에서 나는 작고 마른 아무개일 뿐이었으니까.” 마스덴의 인터뷰 대부분에는 그 시절을 포함하여 저널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배우가 되기 위해 LA에 입성했을 무렵 느꼈던 다양한 문화충격에 대한 농담 섞인 진담이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5년간의 연애 끝에 2000년 결혼한 부인, 사이클롭스 액션피겨를 지붕 위로 집어던지면서 노는 것을 즐긴다는 1남1녀에게 둘러싸인 마스덴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만족스럽다. “그들은 나에게,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이 더욱 충만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이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그만두고 생각한다. 그저 나아갈 것, 실천할 것, 살아갈 것.”

“매력적인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싫은 상황”이라는, 위험천만하게 재수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 완벽한 가장의 진면모는 <헤어스프레이>의 코니 콜린스와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마스덴은 그를 연기하면서, 앞에 나서서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시대의 변화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난기 가득한 입매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푸른 눈, 베르사체 모델 출신치고는 아담한 179cm의 키를 가진 이 배우의 필모는 사실 희한한 방식으로 남들과 다른 소수자를 대변한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액션 대작을 찍는 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가장 멋진 건 그 영화들 모두 관객에게 색다른 취향을 권했다는 점이다.” “<헤어스프레이>와 <엑스맨>은 비슷한 영화다.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 발톱과 레이저 빔 대신 트위스트와 맘보로 무장했을 뿐이다.” 이는 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에서 약간씩 비껴나는 조연을 열과 성을 다해 선택하고 연기하는 이유다. 알 수 없는 할리우드만의 룰에 의해 조연에 머무는 그에게, 우리가 매번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