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1월20일(일) 밤 12시50분
“죽을 팔자면 어딜 가도 죽겠죠.” 목숨을 걸고 런던으로 향해야 하는 두 젊은이에게 나이든 노인이 말한다. 하루 꼬박 일하고 1달러를 받는 곳, 아무런 희망도 꿈꿀 수 없는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 죽은 듯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 한 줄기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사람들. 마이클 윈터보텀은 최소의 스탭들과 실제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을 데리고 다큐멘터리를 찍듯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시작과 중간에 난민들의 현실을 전하는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있으며, 영화의 끝에는 자말의 실제 운명(그는 촬영이 종료된 후 영화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영국에 밀입국했는데, 망명신청은 거부되었고 18살이 되기 전에 런던을 떠나야 한다)이 전해진다. 파키스탄의 샴샤투 난민촌에서 이란으로, 터키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그리고 고대하던 런던으로 이어지는 고달픈 여정과 함께하는 카메라는 아마도 결코 감상에 호소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육체적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점을 찍을 때마다 관객을 눈물에 젖게 하는 대신, 디지털의 거친 입자를 살려 인물들이 겪는 그 어둠 속에 던져놓고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를테면 자말과 에나야트가 터키로 넘어가는 눈덮인 산을 힘겹게 오르는 밤신이나 그들이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 안에서 산소부족으로 질식의 고통을 울부짖는 컨테이너 박스신은 의도적으로 신파의 감정을 차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아 쉽사리 감정 이입을 할 대상을 찾기 어려우며 지옥 같은 전체적인 상황과 가쁜 호흡소리만이 재차 마음에 밟힌다. 선명한 컬러를 벗어버린 거칠고 흐릿한 장면들은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영화는 묻고 있다. ‘당신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것이 바로 이들의 현실이라는 점이 보이는가?’
홀로 살아남은 자말이 마침내 런던에 도착해서 파키스탄 난민촌에 전화를 걸자, 수화기 저편에서 사촌 에나야트의 안부를 묻는다. 자말의 대답. “그는 지금 이 세상에(in this world) 없어요.” 이것은 같은 세상을 살지만 결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냉정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