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 1월27일(일) 오후 2시20분
‘폭스’라고 불리는 사기꾼 바누치는 특유의 재치로 탈옥에 성공한 뒤,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여동생을 감시하겠다는 목적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경찰에 쫓기면서도 새로운 사기를 계획하는데, 카이로에서 이탈리아로 황금을 밀반입하려는 일당이 그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 때마침 우연히 영화 촬영현장을 목격하게 된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감독 행세를 하며 가짜 촬영현장을 만들어서 범행에 이용하자는 것. 바누치는 자신의 여동생과 당대의 유명배우 토니를 기용하고 작은 도시 셀바리오에서 가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참여 덕분에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마침내 황금 무더기가 손에 들어오는데….
<폭스를 잡아라>는 <자전거 도둑>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수로 등장한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하고 닐 사이먼과 세자르 자바티니(자바티니는 데 시카와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자전거 도둑> <움베르토 D> 등을 함께 작업한 작가다)가 각본을 썼지만, 이들 조합이 생산한 가장 덜 흥미로운 작품들 중 하나로 보인다. 멜로드라마로 시작해서 네오리얼리즘에 합류했다가 다시 느슨한 멜로드라마로 방향을 선회한 데 시카의 필모그래피 중 후기작품에 속하는 영화는 모자란 캐릭터들로 넘쳐나는 코미디물이다. 그저 피식 웃고 넘길 만한 상황들이 성기게 얽혀 비약적으로 이어지지만, 데 시카는 틈틈이 당대 이탈리아 영화산업에 대한 풍자를 첨가한다. <카이로의 황금>이라는 가짜 영화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풍경들, 이를테면 스타 배우의 거만함, 감독의 권력, 관객 대중의 무지, 나아가 비평가의 허세 등이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당대 최고의 배우 토니는 “네오리얼리즘영화라는 게 뭐야?”라고 묻고 비평가는 엉터리로 찍힌 필름을 본 뒤 “대단히 새로워! 천재적이야!”를 외친다. 결국 영화는 영화산업과 관련된 이들이 황금 밀반입에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공모한 범죄자들과 별다를 게 없다고 판단한다. 아마도 데 시카는 네오리얼리즘의 치열한 태도를 잃어버린 이탈리아영화의 현실, 혹은 자신의 현재를 그렇게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