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은성] 저요? 안드로메다에서 왔어요!
2008-01-24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더 게임>의 이은성

이은성은 튄다고, 들 한다. 외모가 튀고, 성격도 튄다고, 들 한다. 것뿐이랴. 내뱉는 말도 튀고, 갖고 있는 생각도 튄다고, 들 한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모은다. 드라마 <반올림> 1, 2로 정체를 드러낸 이후 그녀를 만나 적은 기록들은 여기에 더해 한술 더 뜬다. 심지어 그녀의 엉뚱함을 더욱 부각시켜 묘사하려는 욕심에 그녀를 외계인이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안드로메다 행성에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외계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지구로 날아들었다는 식이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맛보기 인터뷰 한 대목. “군대 가는 거 언젠가 꼭 해보고 싶어요. 사실 남자들이 궁금해요. 왜 그렇게 군대 가기 싫어하면서 막상 다녀오면 배운 게 많다고 하는지….”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무살이 되었어도 아직 버리지 않은 꿈이 군대 가는 거란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 쫓는 재미가 있는 건가. 임상수 감독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버지 면전에다 한방 먹이는 딸을 안긴 것도(<오래된 정원>), 이재용 감독이 하나의 성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두눈박이를 선사한 것도(<다세포 소녀>), 급기야 윤성호 감독이 언젠가 별로 돌아갈 때 긴요하게 쓸 만한 우주복을 공물로 바친 것도(<은하해방전선>) 다 이은성의 비지구적 감수성에 어느 정도 이끌린 것이 분명하다. 카메라 앞에서 “하나도 안 힘들다”며 펄떡펄떡 뛰는 이은성을 보며 도대체 무슨 신통한 재주가 있기에 했더니 매니저가 옆에서 슬쩍 거든다. “처음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저한테 시나리오를 툭 던져주는 거예요. 이런 게 좋은 시나리오라면서. 매니저가 배우한테 시나리오 주는 건 봤어도…. 그래도 그런 모습이 신기하게도 좋게 보이던데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캐릭터여서인지도 모르겠다. 감독들은 시나리오의 인물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외려 뜯어고친다. <더 게임>의 윤인호 감독도 그랬다. “시나리오의 은아를 처음에 보고서는 ‘뭐야, 이 여자’ 그랬어요. 눈물 뚝뚝 흘리는 순정만화 주인공이라니. 그런데 감독님이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모습이 좀 변했죠. 드레스 같은 원피스에서 청바지에 티셔츠 걸친 느낌으로.” <더 게임>의 은아는 몸을 내기 밑천으로 걸었다가 수술당한 뒤 거부 늙은이 강노식(변희봉)의 거죽을 뒤집어쓰게 된 거리화가 민희도(신하균)의 여자친구.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그 뒤 몸을 바꾼 노식과 희도 사이에서 진짜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인물이다. “하균 오빠는 전에도 연기를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원래는 <더 게임> 전에 윤성호 감독님 영화에 같이 출연하기로 하면서 만났다가 인연이 이어진 거죠. 옆에서 지켜보면 알겠지만 영락없는 천사표예요. 술 좋아하는 천사. 오빠 덕분에 (박)희순 오빠랑 셋이서 몰려다니면서 술도 배웠어요.”

연기학원 문턱에 가본 적도 없지만 이은성은 배우로서의 자기 확신이 남다르다. ‘날연기’를 아예 자신의 첫 번째 ‘무기’라고 말한다. 가수 지망생 친구따라 기획사 오디션에 갔을 때도, <반올림>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도 개인기 하나없이 그는 그저 “열여섯살 이은성입니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또래 중에 연기학원에서 말하는 것까지 배우고 나온 친구들이 있어요. 물론 그런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죠. 하지만 전 아무것도 모르니까 외려 감독님들과 더 많은 이야길 해요. 창작자들과 더 가까워지죠.” 두 번째 무기는 그럼 뭘까. “<더 게임> 보충 촬영하러 갔는데 제 얼굴이 달라졌어요. 안 좋게 말하면 삭은 거고. 좋게 말하면 성숙한 거고. 제 얼굴에서 여러 가지 분위기가 난다고 하는데 그것도 강점이죠. 물론 처음엔 이 찢어진 눈 때문에 밉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눈 땡그랗고 얼굴 하얀 애들만 보다가 절 봤으니. 미워, 미워, 미워 하는 거죠.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져서 고양이 같다고들 하세요. (웃음)”

물론 해치워야 할 숙제는 많다. “집중력을 더 키워야 해요. 연결장면을 다른 날 나눠 찍으면 애먹어요. 똑같은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힘들어하죠.” 스무살이 된 뒤 생겨난 또 하나의 고민. 이전엔 “둥글둥글하게 사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고,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점프, 점프 하면서 외치고 살았다”면, 이젠 “네모나게 각진 인생을 마냥 주장할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다고.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도 제가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지도가 낮아서, 연기력이 부족해서, 이미지가 안 맞아서. 일단은 계단을 하나씩 밟아가는 수밖에 없죠. <얼렁뚱땅 흥신소>를 하면서 만난 (예)지원 언니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랑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키울 거예요.”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무렵 눌러뒀던 욕심 하나만큼은(어디 그 하나뿐이겠는가!) 참지 못하고 털어놓는다. “<반짝반짝 빛나는>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정말 하고 싶어요. 주인공의 심리랑 제 울증이랑 너무 닮았어요. 너무 어릴지 몰라도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나쁜 마음인 건 알지만 그래서 요즘은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안 만들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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