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은 여전히 ‘미칠이’로 불린다.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2006)의 위력 덕분이다. 미칠이의 무개념 DNA를 성공적으로 이식했기에 ‘스타덤’에 올라서긴 했으나 사실 2년이 지났는데도 부작용이 만만찮다. 여전히 그에 관한 모든 기사의 첫머리는 ‘미칠이’로 시작한다.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인 셈이다. <이장과 군수>의 남옥에 이어 2월14일 개봉을 앞둔 <대한이, 민국씨>의 지은 또한 ‘수수하고 야무진 여성’.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최정원은 화려하지만 제멋대로인 미칠이를 이젠 상큼한 스타트 정도로만 여기고 싶고, 동시에 미칠이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어서 만나고 싶은 배우로서의 마음을 여러 번 내비쳤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나봐요.
=저야 뭐 항상 셀카, 셀카죠. 셀카 잘 찍는 비법이 뭐냐고들 많이 물어보는데. 일단 많이 찍으면 돼요. 여자들은 셀카 잘 안 나오는 휴대폰은 취급 안 해요.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하하. 여자들은 오늘 자신이 좀 예쁘다 싶으면 그걸 남기고 싶어하거든요. 공주병이 아니라도 다들 그래요.
-어떻게 찍어야 더 예쁘게 나오나요.
=아까 촬영 때처럼 누워서 찍으면 잘 나와요. 셀카가 의외로 공부가 돼요. 어떤 각도가 예쁘게 나오는지 알면 도움이 되죠. 원래는 오른쪽 얼굴인데, 오늘은 다들 왼쪽이 낫다고 하네.
-요즘은 좀 여유로운 편이죠.
=얼마 전에 일본도 다녀오고. 여행을 많이 다녀왔어요. 좀 되긴 했는데 지난해에 밀라노에도 갔다 왔고. 일 때문에 가긴 했지만 겸사겸사 멜버른도 구경했고.
-일하러 가면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고 누가 그러던데.
=그래요? 저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데. (웃음) 기분이 좋아야 일도 잘되죠. 저보고 사람들이 넌 참 근심 걱정 없어서 세상 살기 편할 것 같다고들 해요.
-외모는 깍쟁이 같은데 성격은 좀 느긋한가보죠.
=새침데기에 외동딸에 예쁨만 받고 자란 애인 줄 알다가 털털한 실체를 좀 알면 다들 깬다고 그래요. 제가 밑으로 여동생, 남동생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책임감이 강했어요. 대장부 같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동생들 맞고 오면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니까.
-철없는 미칠이하곤 영 다른데요.
=설칠이랑 더 닮았죠. 그래도 미칠이는 귀엽잖아요. 만날 사고치는 캐릭터지만, 밉지 않은 인물로 그리려고 해서 귀여운 행동이나 표정들을 많이 연구했어요. 왜 동정어린 눈빛 있죠. 눈을 좀 슬퍼 보이게 하면 돼요.
-연기는 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애교를 부리는 게 어색하지 않았나요. 부모에게 응석부린 적도 많지 않았을 텐데.
=투정을 하고 싶어도 억누르면서 살았으니까 저한테는 그런 게 모두 희열이었어요.
-<소문난 칠공주>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요.
=음… 미니시리즈 <쿨>(2001)로 데뷔했는데. 배우가 나한테 맞는 옷인가 싶을 때도 많았죠. 선생님들에게 혼나고 차에서 많이 울고. 같이 일하는 식구들하고도 잘 안 맞아서 힘들었고. 데뷔 전에 대학교 2학년 때는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때 연초에 눈밭에서 미끄러지는 꿈을 꿨는데 영화든 드라마든 오디션마다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그때 포기 안 해서 다행이에요. 그 시간들이 연기를 악착같이 해야겠다는 끈기를 심어줬고.
-과거에 부족했던 건 뭐였나요. 돌아보면.
=이런 일이 있어요. <올인>에서 벨리댄스 춰서 좀 주목을 받았는데. 그전에 몇 개월 동안 정말 죽음의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피멍 들 정도로 했는데, 연출자 선생님이 보시고는 아직 부족하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했는데 나중에 깨달음이 와요. 아 기교가 아니구나. 눈빛이나 느낌이구나.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전에는 제 눈이 정말 건조했어요. 지금 눈빛하곤 좀 달라요.
-연극영화과에 간 걸 보면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좀 일찍 했나봐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박정자 선생님이 나오신 연극을 본 적이 있어요. 무대는 자기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구나 싶어 동경했어요. 귀가 시간이 10분만 늦어도 긴장했을 정도로 아버지가 엄한 분인데, 그 아래서 자라다보니 좀 갑갑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단식투쟁도 하고.
-단식투쟁이라는 게 집에서만 밥을 안 먹은 거죠? 학교에 가서 영양보충하고.
=(웃음) 그렇죠 뭐. 집에서 나와서 떡볶이 먹고 뭐.
-고집은 좀 있나봐요.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안 돼도 만화에서 본 플루트 사서 배우겠다고 하고, 사고 싶은 인형 안 사주면 집에 와서 고집 부리고.
-그런 딸이어서 부모님이 엄했던 것 아닐까요. (웃음) <소문난 칠공주>를 찍으면서 첫 번째 영화 <이장과 군수>에 출연했잖아요.
=하루는 드라마 연기, 하루는 영화 연기. 같은 연기라도 이렇게 다르구나 제대로 알게 됐죠. 드라마는 편집, 편집, 편집 하는데 영화는 감정을 자르지 않고 가니까. 또 드라마는 규칙이 있어요. 즉각적으로 시청자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시선이나 감정을 드러내요. 반면 영화는 자연스러운 걸 원하죠. <이장과 군수> 때 차승원 오빠를 카페에서 달래는 장면이 있는데, 대놓고 몸으로 웃기는 게 아니라 흐름 안에서 코믹하게 보여져야 하니까 잘 안 됐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하루를 기다려줘서 가능했지만.
-<대한이, 민국씨>의 지은은 어때요.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 불행한 유년 시절이 있는데도 그걸 비밀로 삼지 않고 툭툭 내던지는 게 좋았어요. 바보 같지만 순수한 면이 잘 드러나 있었고. 미칠이와 달리 따뜻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대한이(최성국)와 민국씨(공형진)를 동생들 키우듯이 잘 돌봐주는.
-2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4명의 남자배우 중 누가 가장 웃기나요.
=1등을 뽑긴 어렵죠. 다들 분위기가 달라서. 유해진 오빠를 예로 들면 본인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영화 속 캐릭터랑 섞여서 말만 해도 웃겨요. 성국이 오빠도 능청스럽게 말하는 것만 봐도 재밌고. 형진이 오빠는 전에 몰랐는데 옆에서 보면 굉장히 귀여워요. 극중의 대한이랑 잘 어울려서 더 그런가. 아이 같고.
-지난번엔 면사무소였는데, 이번엔 미용실에서 일하네요.
=앞치마 두르고 만날 가위 들고 있어요. 동네 미용사거든요. 한달 정도 제가 다니는 숍에서 배워서 촬영 때는 스탭들 대상으로 연습을 좀 했죠. 가위질 못하면 관객이 계속 제 손만 볼까봐 제대로 된 자세를 익히려고 꽤 노력했어요.
-좀 화려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요.
=액션물을 해보고 싶어요. 한 체력 하거든요. 배우면 금방 배워요. 승마 배울 때도 그랬고 검도도 잠깐 기초는 했고. 초등학생 때 달리기를 잘해서 아버지가 한때는 운동선수 시키려고 맘먹은 적도 있어요. 이번 겨울에는 보드 연습 중인데. 이것도 똑같아요. 균형 잡으려면 느낌이 중요해요. 춤이든, 연기든, 스포츠든 다 똑같죠.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 서른이 된 뒤에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게 있나요.
=좀 달리 말하면. 내가 남자라면 멋있는 연상녀를 좋아할 것 같은데요. 서른 즈음에는 좀 멋스러운 여자,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미숙 선생님처럼 분위기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