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닥터 수스의 동화
2008-01-29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미국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호튼>

닥터 수스의 작품 중 처음으로 입체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호튼>(Horton Hears a Who!)은, 그러나 2D가 아니라 3D라는 점을 강조하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성있는 영화에서 CG가 그저 스토리텔링의 도구로만 이용되는 것처럼 <호튼> 역시 닥터 수스가 만들어낸 다양한 캐릭터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최신 애니메이션 기법들이 이용된 듯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월 초, <호튼>의 미국 개봉을 몇 개월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영화는 아직 미완성이라 기자들은 감독 지미 헤이워드와 스티브 마티노의 설명을 곁들인 일부 장면들만 볼 수 있었다. 10대 청소년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헤이워드는 몇몇 장면을 보여주기 전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하겠나? 모두가 당신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끝까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겠는가?” 사실 영화 <호튼>이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명제, “사람은 사람이다, 아무리 작을지라도”(a person’s a person, no matter how small)라는 것이다. 헤이워드는 “후반부로 갈수록 <호튼>은 서사시에 가깝지만, 이야기는 아주 작은 이벤트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호튼(목소리 짐 캐리)은 정글에 사는 성격 좋은 코끼리다.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 재주 덕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머리를 완전히 덮을 정도로 큰 귀를 가진 호튼은 어느 날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소리는 계속 들린다. 자세히 보니 작은 먼지 알갱이에서 나는 소리다. 귀가 커서 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호튼은 먼지 속에 ‘후’라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후빌’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빌’은 일단의 계기로 보금자리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신세다. 호튼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 한명의 ‘후’는 바로 후빌의 시장(스티브 카렐)이다. 호튼과 시장은 서로를 볼 수 없지만 대화를 통해 존재를 알게 된다. 후빌이 담긴 먼지 알갱이를 핑크색 클로버에 올려놓고 다니는 호튼에게 시장은 “후빌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할 정도로 일상적이던 이들의 삶은 이때부터 큰 위기를 겪게 된다. 호튼은 후빌의 존재를 믿지 않는 심술궂은 캥거루(캐럴 버넷)와 일당들에 쫓기게 된다. 시장은 후빌에 닥친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평스러운 주민들 때문에 “하늘 저 너머에 우리를 도와줄 거대한 코끼리가 있다”는 말을 하다가 왕따를 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이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모습은 ‘평등’이라는 명제의 교훈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와 <로봇> 등을 선보인 블루 스카이는 많은 미국인들이 보고 자란 닥터 수스의 작품을 되살리기 위해 세세한 부분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몸에 털이 많은 ‘후’ 캐릭터들에게 원작에서처럼 옷을 입히는 대신 털이 옷이 되는 만화 같은 아이디어를 시각화했다. <아이스 에이지>에 등장한 매머드 맨프레드를 그대로 호튼에 적용하기보다는 두발로 일어서고 걷기도 하는 곰의 동작을 모형으로 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후빌 시장은 지금까지 2D 캐릭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체의 유연함이나 극단적인 변형(순간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거나, 얼굴이 일그러지는 등)을 보여줘 잔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호튼>의 매력은 캐릭터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닥터 수스의 미망인 오드리 게이슬은 2000년 <그린치>나 2003년 <더 캣> 등 실사 작품들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호튼>이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진은 캐릭터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에 닥터 수스의 느낌이 나면서도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물론 캐릭터마다 미망인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감독은 물론 작품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도 <호튼>이 “개인적으로 무척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마티노 감독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면 애니메이션이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튼>의 캐릭터는 목소리를 맡은 배우들의 생김새와 캐릭터를 비슷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배우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호튼은 짐 캐리와 외모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움직이는 모습이나 표정만으로도 누구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NBC> TV시리즈 <오피스>의 팬이라는 애니메이터들은 후빌 시장의 캐릭터에 스티브 카렐의 긴장된 표정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호튼>에는 부부 코미디언인 에이미 폴러와 윌 아넷이 각각 후빌 시장의 부인 역과 호튼의 클로버를 빼앗으려는 독수리 블래드 블래디코프 역을 맡았으며, 데인 쿡과 제시 매카트니, 세스 로건, 조나 힐 등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목소리로 참여했다.

<호튼>의 메인 캐릭터, 한국인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다

<호튼>의 숨은 한국인 공로자들

-각자 맡은 일을 소개해달라.
=이상준/캐릭터 디자이너다. 메인 캐릭터는 모두 디자인했다. 호튼과 시장, 블래드 블래디코프, 캥거루 등. 대본이 주어지면 캐릭터를 2D 이미지로 비주얼화한다. 과거에는 ILM와 루카스필름에서 작업했다.
=이숙연/모델링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했다. 2D 캐릭터를 3D로 만들고 마지막으로 모델링을 한다. 캐릭터 외에도 세트도 만드니까 20여명이 캐릭터를 몇명씩 맡고, 나머지는 나눠서 일하는 식이다. 드림웍스와 미드웨이 게임스에서도 작업했다.
=성지연/극중 세트가 바뀔 때마다 시퀀스당 각각의 라이팅 리드가 있다. 그중 한팀을 맡고 있다. 영웅씨와 함께 일한다. 라이팅이 제일 마지막 작업이기 때문에 오늘 인터뷰에도 나오지 못할 뻔했다. (웃음) 블루 스카이에서 세 작품을 했고, 큐리어스 픽처스에서도 있었다.
=장영웅/(다른 세명이 함께 입을 모아 장영웅을 가리키며 “저 친구는 학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승했다”며 일제히 말한다. 그는 제34회 학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라지>로 애니메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라이딩 테크니컬 디렉터로 참여했다. 극영화는 처음이다. 광고회사에 잠시 다녔다.

-<호튼> 홍보차 한국에도 간다던데.
=이상준/맞다. 그런데 이런 투어는 처음이다. 감독 두분이 너무 바빠서 못 가기 때문에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의 공동 창시자인 크리스 웨지와 함께 가게 됐다.

-한국에는 닥터 수스의 작품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성지연/국제적으로는 닥터 수스의 작품을 잘 모르더라. 아마도 시처럼 라임(rhyme)이 있어서 번역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그것 때문에 걱정하더라.
=이상준/미국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동화라고 하더라. 하지만 <호튼>은 유니버설한 이야기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장영웅/아이가 읽을 책을 사러 서점에 간 적이 있는데 한 섹션이 모두 닥터 수스 작품이더라. 유명하더라. 아이와 함께 보다 보니까 단순하면서도 교훈적이고, 동양적인 부분도 많았다. 왜 한국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았는지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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