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무자헤딘의 지원자, 찰리 윌슨은 누구?
2008-01-31
글 : 오정연
시대상, 등장인물, 각본가로 뜯어본 정치코미디 <찰리 윌슨의 전쟁>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세계 정치가 얽혀드는 복잡한 대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찰리 윌슨의 전쟁>에 더없이 어울리는 충고다. 찰리 윌슨의 전쟁이 무엇인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이 이야기에 달려든 각본가의 장기는 무엇인지. ‘남의 나라 전쟁에 끼어들어 기어코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실존인물’을 다룬 정치코미디, 이상의 텍스트로 영화를 활용하고 싶다면, 알고 봅시다.

1.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찰리 윌슨의 전쟁>

영화의 제목은 원작이 된 조지 크릴의 논픽션 <찰리 윌슨의 전쟁: 하원에서 가장 거친 남자와 CIA의 건달 요원이 우리 시대를 바꿔놓은 놀라운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찰리 윌슨의 ‘전쟁’은 일차적으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의미한다. 1978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마르크시스트 민중민주당 정부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자헤딘 반군의 대항이 거세게 일었고,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1979년 12월25일 소련이 국경을 넘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물론 이슬람 세계의 민감한 분쟁이어서, 유엔으로 대표되는 서방세계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이며 무역제한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찰리 윌슨이 주변 국가의 이름을 빌려 소련의 군사헬기를 격퇴할 만한 스팅거 미사일을 비롯한 일련의 군사지원을 행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1989년 2월 소련이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 버금가는 손실’을 뒤로하고 전쟁을 종결하기까지, 수백만달러에서 시작된 미국의 지원은 80년대 말까지 연간 7억5천달러를 퍼부어야 했다. 이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동유럽 민주화를 거쳐 냉전을 종식시키는 기회비용이 되어준다. 문제는 당시 무자헤딘에 흘러든 돈과 군사기술이, 곳곳에서 모여든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세력 확장에도 기여했다는 점.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여기에서 비롯됐고 결국 9·11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에 기반한다. 영화 속 윌슨은 “우방국을 도와주고 소리없이 빠진다”는 원칙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전후 아프가니스탄에 학교 건립 등 재건 비용을 대는 데는 실패한다. 넓은 의미에서 그의 ‘전쟁’이 패했음을 영화 역시 ‘소심하게’ 인정한 것이다.

2. 찰리 윌슨

위는 실존인물, 아래는 영화 속 인물.

민주당의 정체성을 좀처럼 확인할 수 없는 영화 속 찰리 윌슨(본명 찰스 네스빗 윌슨)의 모습 대부분은 진짜다. 실제로 그는 국회에서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시시껄렁한 법안에만 관여했으며, 자신의 집무실을 ‘쭉쭉빵빵’ 미녀(동료들은 이들을, 인기 TV시리즈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에 빗대어 불렀다)로 채웠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벌거벗은 여인들과 코카인 파티를 즐긴 혐의로 조사받았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여하는 과정에서는 휴스턴의 보수적인 반공주의자 로비스트 조앤 헤링의 (아마도 섹슈얼하게) 극진한 설득이 있었으리란 추측도 만연하다. 자신의 개를 독살한 이웃 구의원의 재선을 막기 위해 96명의 흑인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했다는 일화도 사실. 다른 점이 있다면, 윌슨 의원이 <AP>의 속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소식을 접한 것은 1980년이지만, 마약 수사를 받았던 것은 당시가 아니라 1986년이다. 수사를 지휘했던 루돌프 줄리아니 검사가 9·11 당시 뉴욕시장으로 재임 중이었다니 의미심장한 악연이다. 11번의 재선 끝에 1996년 은퇴한 윌슨은 1999년 66살로 전직 발레리나와 결혼했고 지난해에는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

3. 아론 소킨

아론 소킨

“그날부터 난 미국을 사랑하게 됐어.” 옆집 구의원의 재선을 막았던 어린 시절 일화를 회고한 뒤 찰리 윌슨이 덧붙인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캠프에서 참상을 접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결심한 그가 비행기 안에서 이 ‘당돌한 일화’를 고백하고, 그처럼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멘트를 덧붙인 것은 각본가 아론 소킨의 선택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1999년부터 7년 동안, 민주당의 이념을 전파한 정치드라마 <웨스트윙>. 민주당 출신 대통령 보좌관들의 일상을 소재 삼는 이 드라마는 87개에 달하는 각종 수상 기록을 세웠다. <찰리 윌슨의 전쟁> 도입부에서 “워싱턴판 <달라스> 같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던 제작자의 장광설은, 자신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인 셈이다. 1980년대의 대부분을 ‘안 팔리는’ 배우지망생으로 허비한 그는 심심풀이로 연극대사를 쓰면서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고, 자신의 희곡을 토대로 첫 번째 영화 시나리오 <어 퓨 굿 맨>을 각색할 때는 “시나리오를 읽어본 적도 없는” 초짜였다. 이후 윌리엄 골드먼(<내일을 향해 쏴라> 등) 밑에서 수학하며 <맬리스> <대통령의 연인>의 시나리오를 썼다. 4시즌을 끝으로 <웨스트윙>에서 하차한 뒤에는 생방송 코미디쇼의 긴박한 제작상황을 배경으로 TV시리즈 <스튜디오 60>을 기획한다. <웨스트윙> 이후 그의 손맛의 주요한 특징은 리얼한 장황함이다. 한꺼번에 두세 가지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막을 따라갈 수 없도록 온갖 지적인 언어유희가 흘러넘치는데, 복잡한 현실정치의 안건이 명쾌하게 대두된다. 잘난 척하는 유머로 흐르기 일보 직전에, 극중 인물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보여주어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지속적으로 헷갈리는 <찰리 윌슨의 전쟁> 속 정치가들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늘 헷갈리는 <웨스트윙> 속 보좌관을 떠올리게 한다. 알코올 중독 등 신념과 함께 약점을 간직한 인물들도 그가 사랑하는 캐릭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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