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작가이론에 동의합니까?” 미국에서도 한창 ‘작가’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인 1972년, <필름 코멘트>와의 인터뷰에서 은퇴한 감독 프랭크 카프라가 받은 질문이다. 그는 작가 개념 따위가 만들어지기도 전인 30, 4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감독이다. 카프라는 ‘작가’라는, 자신에겐 생경한 단어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작가이론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나의 영화는 오직 한 사람이 만든 하나의 영화(One man, One film)였지요.” 비록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작업했지만, 언제나 자기의 스타일대로 만들었고(One man), 일관되게 하나의 이야기(One film)만 했다는 뜻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그만큼 작가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 감독도 흔치 않을 것이다.
‘One man, One film’의 작가감독
‘One man, One film’, 이는 빈센트 미넬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미넬리도 작가 개념이 유행하기 전인 40, 5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감독이다. 그는 뮤지컬, 멜로드라마 그리고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카프라가 거의 코미디만 만들며 자신의 색깔을 유지한 사실과 비교하면, 미넬리가 무려 세 장르나 오가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미넬리의 영화에는 언제나 그만의 향취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빈센트 미넬리(1903∼86)가 영화사에 자기의 이름을 남겼다면, 먼저 뮤지컬 장르의 선구자로서 일 것이다. 제작자 아서 프리드, 감독 빈센트 미넬리, 그리고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 켈리는 MGM의 자랑이자 할리우드 뮤지컬 장르의 역사가 됐다. 할리우드 뮤지컬이 뉴욕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옮겨놓는 작업에 머물러 있을 때, 미넬리는 연극 무대의 한계를 벗어나 현실 속의 자연스런 환경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세련된 형식의 뮤지컬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주로 무대 주변에서만 진행되던 백스테이지 뮤지컬(Backstage Musical)의 한계가 극복됐고, 노래와 춤은 현실 속에 융합된 채 연기됐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1944)는 뮤지컬 발달의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으로 기록됐으며, 이후 아서 프리드와 빈센트 미넬리 콤비의 작업은 곧바로 뮤지컬 장르의 역사가 된다.
미넬리가 뮤지컬 장르에서 재능을 보인 것은 아마도 뉴욕에서 뮤지컬 작곡가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미넬리도 영화 작업을 하기 전에는 아버지처럼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일했다. 그는 유명한 미술감독 중 한명이었는데, 브로드웨이의 미술감독 미넬리를 할리우드로 부른 장본인이 제작자 아서 프리드였다. 이른바 ‘프리드 사단’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뮤지컬 장르의 정점은 미넬리의 예술 기량이 정점을 보일 때와 겹친다. 미넬리 개인의 발전사가 곧바로 장르의 발전사와 맞먹기 때문이다. 1951년 <파리의 미국인>, 52년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고 53년 <밴드 웨건>의 연속적인 등장은 뮤지컬 장르가 최고치에 도달한 순간이다. 이 가운데 미넬리는 <파리의 미국인>과 <밴드 웨건>을 만들었고, 스탠리 도넌과 진 켈리는 공동연출로 <사랑은 비를 타고>를 발표했다. 두 진영 사이의 묘한 대결의식마저 보인 이때가 할리우드 뮤지컬의 최절정이었다.
뮤지컬 장르의 절정과 쇠퇴를 모두 경험
<파리의 미국인>은 미넬리 뮤지컬의 일관된 테마와 스타일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진 켈리는 파리에서 화가로 출세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화가로 나온다. 그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지만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과연 화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자기를 포기하고 사회의 요구에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회의에 빠진 그가 자기 내부의 욕망을 포기하고, 외부로부터 강요된 정체성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려고 노력할 때 드라마도 갈등을 겪는다. 미넬리의 뮤지컬에서는 이런 식으로 정체성과 관련해서 외부의 강요와 자기 내부의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약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외부의 강제와 내부의 욕망은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런 것과의 갈등으로 표현되는데, 짐작하겠지만 미넬리는 내부의 욕망에 편을 든다. 그게 자연스런 것이고, 자연스런 행동이 이성의 인위적인 행동보다 선(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가 특유의 감정과잉의 화면으로 표현되는 게 미넬리 뮤지컬의 또 다른 매력이다. <파리의 미국인>에서는 결말 부분에서 진 켈리의 욕망이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표현돼 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배경으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망은 진 켈리와 레슬리 캐런의 열정적인 춤으로 대신 묘사되는데, 두 배우는 무려 20여분 동안 미친 듯 춤을 춘다. 현실의 억압은 상상의 꿈속에서 모두 무너지고, 연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꿈 장면 혹은 상상 장면의 삽입은 미넬리 영화의 형식적 특징으로 깊게 각인됐는데, 이런 아이디어는 이미 <해적>(1948)과 코미디 장르인 <신부의 아버지>(1950)에서도 훌륭하게 표현된 바 있다.
미넬리 뮤지컬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밴드 웨건>은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역설적인 운명을 갖고 있는데, 뮤지컬 장르의 정점이자 동시에 묘비명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웨스턴 장르의 선구자인 존 포드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로서 웨스턴 장르의 종말을 기록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전달한다. 다시 말해 <밴드 웨건>은 뮤지컬을 일으켰던 감독이 그 뮤지컬의 종말을 지켜보듯 만들었다. <밴드 웨건>은 미넬리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형식인 자기반영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영성은 뮤지컬 형식에 대한 성찰에서도 뛰어나지만, 그것보다는 뮤지컬의 상징인 프레드 아스테어라는 배우에 대한 성찰로 더욱 빛난다. 장르로서 웨스턴이 과거의 생명력을 잃었을 때, 웨스턴의 상징 존 웨인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장례되듯, <밴드 웨건>에선 프레드 아스테어가 한 시대를 끝내고 있는 것이다.
아스테어는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하고 이젠 한물간 배우로 나온다. 쇼 비즈니스는 그를 다시 무대에 세우지만 과거의 그가 보여줬던 춤과 노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아스테어는 발레음악에 맞춰 ‘우아한’ 동작을 새로 배운다. 그런데 나이 든 아스테어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가면을 쓰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복잡한 생각을 유발하는 것이다. 한 시대가 저물고, 하나의 장르가 끝나고, 그 장르를 일으키고 발전시켰던 한 스타가 사라지는 것이다. 훗날 <지지>(1958)가 무려 9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뮤지컬을 화려하게 부활시켰지만, 장르로서의 뮤지컬은 사실 <밴드 웨건>에서 장례식을 치렀던 것이다.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장르의 트로이카
미넬리는 뮤지컬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장르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그는 니콜라스 레이, 더글러스 서크와 더불어 1950년대 멜로드라마 장르의 트로이카였다. 멜로드라마에서 미넬리가 보여주는 인물은 뮤지컬의 인물과 본질적으로는 같다.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요구가 충돌하며, 그 때문에 정체성의 혼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뮤지컬의 주인공이 느끼는 외부의 압력이 주로 사회의 통념 같은 공동체적 가치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멜로드라마의 압력은 아주 개별적이며 특히 가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대중드라마에서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는 ‘아버지의 억압과 아들의 고통’이 미넬리 멜로드라마의 반복되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억압자로 등장하고 아들은 결국 그 억압을 넘어서는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궤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차와 동정>(1956)처럼 남성성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여성 같은 아들이 충돌하는 구조는 미넬리 드라마의 큰 특징이 된다. 아버지는 사내는 남자다워야 한다며 아들을 윽박지르고, 아들은 그 아버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괴롭다. 아버지는 억압자의 슈퍼에고로 제시되고, 아들은 강요된 정체성에 고통받는 식이다. 미넬리는 네번이나 결혼하고 라이자 미넬리 같은 스타 자식까지 뒀지만, 그가 동성과 사랑을 나눈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나 아는 비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미넬리처럼 성정체성에서 모호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차와 동정>의 여성 같은 소년, 또는 <언덕 위의 집>(1960)에서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아들 같은 주인공들이 미넬리의 드라마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런 주인공들이 미넬리처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운동을 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연극에 매혹되는 것을 보면 멜로드라마는 감독의 사적인 고백론처럼 보일 정도다. 어머니에 의존적인 아들이 아버지의 질서와 갈등을 빚는 이야기는 미넬리가 말년에 발표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주연의 <샌드파이퍼>(1965)에서도 반복된다.
슈퍼에고로서의 아버지의 존재를 넘어서려는 자식의 고민은 <미녀와 악당>(1953)처럼 아버지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 멜로드라마에서도 여전하다. 이 영화는 자기반영성의 주제에서 볼 때, 멜로드라마의 <밴드 웨건>이다. 다시 말해 영화에 대한 영화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주요 내용이다. 커크 더글러스는 전설적인 제작자의 아들로, 라나 터너는 명배우의 딸로 나오는데, 두 사람 모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요구에 단단히 매여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죽은 아버지의 ‘명령’에 부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식들의 성장기에 다름 아니다.
장르영화의 전성기, 스튜디오 시절을 회상하며
반영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미녀와 악당>은 아마 최고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제작자, 감독, 배우 그리고 작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영화제작 현장이면 언제 어디서나 목격되는 실감나는 갈등을 긴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녀와 악당>을 발표한 지 약 10년이 지난 뒤, 미넬리는 다시 반영성을 주제로 삼은 속편 격인 작품 <낯선 곳에서의 2주일>(1962)을 발표한다. 역시 영화에 대한 영화인데, 마치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되돌아보듯, 어느 배우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여기서도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을 맡았고, 그가 과거를 떠올릴 때면 돌아갈 수 없는 장르영화의 전성기가 아련하게 기억나는 식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커크 더글러스의 과거에 대한 송가이자, 할리우드 시스템 자체에 대한 송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미넬리 자신의 화려한 과거에 대한 송가인 것이다.
뮤지컬에서 사회적 타협을 거부하고 결국 자신의 길을 고집한 뮤직맨들, 또는 멜로드라마에서 남성답게 성장하기를 강요받았지만 결국 자기 식으로 자란 정체성이 모호한 남성들은 모두 미넬리의 스크린 속 분신에 다름 아니다. 그는 오직 하나의 이야기를, 오로지 자기 스타일대로만 만들어온 ‘One man, One film’의 표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