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2008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23번째는 배창호 감독이 기증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감독상 트로피입니다.
1984년 12월 배창호 감독은 <깊고 푸른 밤> 미국 로케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제작사에서 걸려온 전화는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배우 안성기가 <적도의 꽃>으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는 희소식이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는 밤새 수상을 축하하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날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걸려온 전화는 남우주연상이 아니라 감독상이었다는 내용이었고 무안해진 배창호 감독은 좋은 내색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그 미안한 마음을 4년 뒤에 갚았지. 88년에 <기쁜 우리 젊은 날>로 안성기가 남우주연상을 탔거든.”
트로피에 얽힌 일화처럼 배창호 감독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겠지만, 64년 <빨간 마후라>로 신상옥 감독이 수상한 이후 20년 만에 돌아온 감독상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최인호의 신문소설을 원작으로 한 <적도의 꽃>은 80년대 현실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았던 <꼬방동네 사람들>이나 <고래사냥>과는 달리 세련된 영상미와 더불어 도시 젊은이의 황폐하고도 나약한 내면을 잘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작품이다.
배창호 감독은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에 전념하는 중에 짬을 내어 한국영상자료원을 방문, 80년대를 풍미했던 흥행감독의 징표와도 같은 이 감독상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트로피는 오는 5월 개관할 한국영화박물관의 코리언 뉴웨이브 섹션에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