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꿈이 담긴 퓨전사극을 기대해도 좋다
2008-02-12
글 : 김도훈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여균동 감독의 <1724 기방난동사건> 촬영현장

유독 추웠던 1월30일 수요일 아침.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조선시대 오픈세트에는 바람이 매섭다 못해 무섭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세트를 가득 메운 엑스트라들의 의상. 왁스를 발라 뻣뻣하게 세운 펑크족 스타일의 머리를 보는 순간, 홍대 펑크밴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의 현장에 왔나 싶다. 하지만 김석훈이 나타나자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앙드레 김 선생님 옷이지요.” 홍보사 직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설명이 굳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부풀어오른 백색의 망토를 칭칭 휘감은 황금의 용을 보고도 누구의 의상인지 모를 사람은 남한에 흔하지 않다.

의상만 봐도 분명하지만 <1724 기방난동사건>은 일종의 ‘퓨전사극’이다. 천둥(이정재)은 양주파 두목 짝귀를 주먹 하나로 제압하고 조선 제일의 주먹으로 추대받는다. 하지만 주먹세계를 평정하겠다는 야심으로 뭉친 만득(김석훈)이 등장하자 조선 주먹계는 두 갈래로 찢어진다. 게다가 두 남자 사이에는 평양제일기생학교를 수석 졸업한 기생 설지(김옥빈)가 자리잡고 있다. 이날 공개된 분량은 천둥이 만득의 파티에 뛰어들어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 여균동 감독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오픈세트를 울리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도 추운 날씨라 모니터와 편집기를 기방 안에 설치한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현장의 모습을 보노라니 ‘감독이 신’이라던 초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명제가 돌연히 떠오른다.

여균동 감독은 강명근 교수의 <조선의 뒷골목>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설명한다. “친구 같은 인간들을 사극에서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느냐는 (사극의) 메시지에 염증을 느꼈다. 이 영화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꿈꾸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2006년작인 <비단구두>가 있지만, 여균동에게 사실상의 상업영화 연출은 <미인>(2000)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여균동 감독에게 불안한 기색은 없다. 오히려 새로 생긴 장난감들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모양이다. “지미집이 신기하더라. 처음에 <트랜스포머>의 로봇처럼 작동해보고는 이걸로 액션신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현장편집을 해보니 배우들과 함께 토론하며 촬영할 수 있어 좋다.” 이날로 99%의 촬영을 마친 <1724 기방난동사건>은 오는 5월경 개봉할 예정이다.

"오우~ 빤따스틱한 삘이 느껴져요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영화의상

<1724 기방난동사건>의 의상은 그야말로 ‘난동’이다. 색의 난동, 스타일의 난동, 시대 고증의 난동, 모든 난동이 다 들어가도 시원치 않을 난동이다. 이에 대한 여균동 감독의 설명은 “고증보다는 과장”이라는 것이다. “코믹, 퓨전사극의 느낌을 주는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엄밀히 말하면 깡패는 아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경호실장, 군수업자, 유통업자, 부동산업자쯤 되는 인물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돈은 많지만 신분적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향락적인 문화를 주도했다. 지금으로 치면 압구정족이나 패션디자이너의 느낌이다. 요즘 체형을 맞추기 위해서 여자 한복도 허리를 길게 만들었다. 건달들의 옷은 조선시대 별감들 옷을 최대한 변형해 만들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김석훈과 김옥빈의 의상이다. 특유의 용무늬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다. 제작진의 의상지원 요청을 받은 앙드레 김은 “제목에 기방이 등장하는데 이상한 영화 아니냐. 대체 장르가 뭐냐”고 물으며 조심스러운 눈치였다고. 여균동 감독은 “미필적 고의로 만든 옷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맞은 옷”이라고 자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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