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바쁜 인물 중 한명이다. 2007년은 그에게 가장 정신없는 한해였고 올해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2006년 <그해 여름>을 개봉한 뒤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했던 그는 2007년 초부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돌입했고, 초여름에는 기무라 다쿠야와 <히어로>를 찍었고, 한여름과 가을에는 중국에서 트란 안 훙 감독의 <아이 컴 위드 더 레인>(I Come with the Rain)을 촬영했으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투어를 가졌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G. I. 조>(G. I. Joe) 출연을 결정했다. 그리고 최근 10개월 가까이 걸린 <놈놈놈>의 대장정을 마친 그는 말 그대로 촬영이 끝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월23일 <놈놈놈>에서 자신의 촬영분량을 모두 마친 이병헌은 현장에 싸갔던 짐가방을 챙겨들고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한 것이다. 미국에서 그는 우선 <G. I. 조>를 위해 이런저런 훈련을 받거나 다양한 만남을 가지면서 현재는 공개할 수 없지만 논의되고 있는 몇개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타진할 예정이다. ‘한류’ 스타에서 ‘월드’ 스타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 덕분에 지난해 중순부터 논의돼왔던 이병헌과의 인터뷰도 출국 사흘 전인 1월20일에야 가까스로 성사될 수 있었다. 워낙 여유가 없어 부득이하게 <그해 여름> 개봉 당시 <씨네21>이 찍었던 사진과 <놈놈놈> <히어로> <아이 컴 위드 더 레인>의 스틸, 그리고 소속사에서 찍은 스냅사진을 보여줄 수밖에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놈놈놈> 촬영을 4월부터 지금까지 했으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많이 쌓였겠다.
=아마도 가장 바쁜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놈놈놈>을 찍으면서 트란 안 훙 감독의 <아이 컴 위드 더 레인>까지 동시에 찍어서 중국과 홍콩을 오가야 했다. 거기에 일본 4개 도시를 돌면서 ‘아레나 투어’라는 이름의 공연까지 했다. 애초 계획으로는 영화를 모두 찍은 뒤에 하기로 잡혀 있었는데, 영화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됐다.
-<놈놈놈>의 창이 역은 어떻게 맡게 됐나. 첫 악역이 아닌가. 전형적인 악역은 아니더라도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악역의 위치에 서게 될 텐데,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심하게 다리를 두드리면서 건너온 게 아닌가. 왜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것을 재고 따지면서 작품을 결정했을까. 시행착오는 그때 많이 겪었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를 그냥 확 열어놓고 싶어졌다. 예전 같으면 갸우뚱했을 역할도 추진력있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됐고 새로운 것도 시도하게 된 것 같다. <놈놈놈>의 창이는 연기생활 17년 동안 처음 맡은 악역인데, 공교롭게도 <아이 컴 위드 더 레인>에서 내가 맡은 역할인 수동포도 악역이고, <G. I. 조>의 스톰 섀도도 표면적으로는 악역이다.
-그렇게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이 혹시 <그해 여름> 이후 아닌가.
=<그해 여름> 때문은 아니다. <그해 여름> 이후 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데까지 미쳤던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창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했나.
=그 시대의 양아치라고 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따지는 사람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그런 인물이다.
-막상 처음 맡은 악역 연기는 어땠나.
=나는 무척 재미있었다. 연기란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지만, 나는 캐릭터에 최대한 감성적으로 몰입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하지만 <놈놈놈>은 배우들의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만 고집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약간의 과잉과 스타일이 필요한 영화 같다. 스타일이 나오려면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팔은 딱 이 정도만 접어주고 시선은 정확히 어딘가를 보고, 이런 식으로 연기해야 한다. 결국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초반에는 그렇게 손동작 하나, 고갯짓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연기를 하다보니 감성적인 부분을 제약받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 그런데 거기서 재미있는 게 생겨났다. 모니터를 보니 어떻게 나왔는지는 몰라도 생각지도 못했던 내 표정이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느낌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악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하여간 이 영화는 한마디로 한바탕 잘 논 기분이다.
-꼭 악역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악역이기 때문에 좀더 그런 부분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주 디테일한 동작들을 감독님이 요구하는 대로, 혹은 내가 설정한 대로 연기해놓고 모니터로 보면 두 사람 다 상상하지 못한 것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느끼는 쾌감인 것 같다.
-하긴 스탭들에 따르면 같은 악역이라도 창이는 달리 보인다고 하더라.
=어제 촬영 때도 감독님과 그 얘기를 했다. 영화에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장면이 2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태구가 탄 기차를 세울 때다. 그때 모습은 상당히 쿨하다. 후반부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눈빛이나 표정이 굉장히 사악하고 비열한 양아치 같다. 이 두 장면을 보니 내 연기가 일관되지 않은 것 같더라.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지, 창이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놈놈놈>을 위해서 배운 게 많지 않나. 일단 말 타는 것부터 배웠어야 할 텐데.
=배우긴 했지만 힘든 과정이 있었다. 출연 결정을 한 다음날 처음 승마를 배우러 갔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날 저녁, 집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복숭아뼈가 똑 부러졌다. 정도가 심해서 결국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뒤로는 얼마 동안 집에서 쉬어야 했는데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로스트 플래닛>이라는 게임에 빠졌다. 이게 온라인 대전이 되니까 재미가 있더라.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다. 다들 열심히 준비 중인데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몸 근육을 만들기로 했다. 창이라는 캐릭터는 큼직큼직한 근육을 가진 게 아니라 아주 잘게 찢어진 근육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몸만 봐도 ‘야, 저놈은 정말 악랄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그래서 트레이너를 집으로 불러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근육 훈련을 했다. 한번에 50분씩만 하는데도 트레이너가 요구하는 강도는 엄청났다. 완전 지옥훈련이었다. (웃음) 그래도 내가 독한 면이 있는지 트레이너 말이 이 정도 훈련을 소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
-앞으로 참 많은 사람들이 물어볼 질문일 텐데, 송강호, 정우성과 개인적으로 친하긴 하지만 현장에서 캐릭터로 맞붙다보면 아무래도 경쟁심이 생기지 않나.
=경쟁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똑똑한 배우들이고 경험도 많으니까 영화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영화는 죽고 자신만 산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 것을 너무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의식도 다들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기무라 다쿠야와 함께 출연한 <히어로>는 어떻게 제안받았나.
=기무라 다쿠야의 매니저 이이지마란 분이 있다. 꽤 오래전에 알게 된 이후 이런저런 의논을 하게 되는 관계가 됐는데 어느 날 <히어로>에 카메오로 출연해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이전에도 <스마프X스마프> 쇼 출연 등 몇 가지 요청을 거절한 적이 있어서 미안하기도 했고,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게 나쁘지 않은 일 같기도 했다. 대신 기왕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잘하자는 마음에 신을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트란 안 훙 감독의 <아이 컴 위드 더 레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놈놈놈>보다도 먼저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2006년쯤인가, 트란 안 훙 감독과 프로듀서인 페르난도 술리친이 한국을 찾아와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트란 안 훙은 이문열씨의 <사람의 아들>을 좋아한다면서 그 작품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 건데 출연해달라는 거다. 나 또한 대학 1학년 때 충격적으로 봤던 소설이라 호감이 있었다. 얼마 뒤 시나리오가 왔는데 이야기가 난해하긴 하더라. 아트영화를 만드는 분이라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너무 어려워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웃음)
-그렇게 어려운데 출연 결정은 어떻게 내렸나.
=뭐 난해한 면이 있긴 해도 내가 맡을 수동포라는 캐릭터는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트란 안 훙 감독의 세계에서 내가 뭔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내가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다. 악역에 대한 도전과 비슷한 차원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젊다고 생각할 때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보자는 것 말이다.
-트란 안 훙 감독은 당신을 왜 캐스팅했다고 했나.
=<달콤한 인생>을 봤는데, 표정이 다 좋았다고 했다. 그런 디테일한 표정들, 디테일한 감정들은 아시아 배우 중에서 보기 힘든 것이라고 말하더라. 그게 아니면… 이 영화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홍콩 조직의 보스인데, 내가 <달콤한 인생>에서 조직의 2인자로 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웃음)
-<아이 컴 위드 더 레인>은 무슨 얘긴가.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제작진도 너무 상세하게 공개하지는 말아달라는 입장이라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주인공이 조시 하트넷인데 그는 어떤 일로 경찰에서 쫓겨난 뒤 사립탐정을 하고 있다. 그가 어느 날 샌프란시코의 한 중국인으로부터 실종된 아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결국 홍콩까지 가게 된다. 그는 여문락이 맡은 역할인 홍콩 형사와 함께 다니는데, 이 형사에게는 꼭 붙잡고 싶은 범죄자가 있다. 그게 수동포, 그러니까 나다. 수동포는 홍콩 범죄조직의 보스로 인정사정없고 무자비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아킬레스건이 함께 사는 여자 릴리다. 수동포에게 릴리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릴리가 어느 날 사라지고 수동포는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만나게 되는 게 기무라 다쿠야가 연기하는 시타오다. 그는 신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면서 조시 하트넷이 의뢰받은 실종된 아들이기도 하다.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놈놈놈>과 동시에 찍었다고 했는데 촬영 분량은 많았나.
=15회차 정도였는데, 문제는 여러 번 가야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2번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5번인가 6번을 홍콩에 가야 했다. 그래도 중국에서 홍콩이니까 서울에서 제주도 오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갔다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번 가면 13시간이나 걸렸다. <놈놈놈> 촬영지인 둔황에서 홍콩까지 가려면 다른 도시로 나왔다가 다시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가서 홍콩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하도 비행기를 타니까 나중에는 내가 파일럿이 된 것 같더라. (웃음)
-외국이기도 하고 예술영화 감독이 이끄는 곳이기도 해서 현장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많이 달랐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달 뒤의 촬영일자와 배우들마다의 집합시간까지 디테일하게 예고되는데다가 그것을 정확히 지킨다는 점이었다. 촬영 도중 비가 오면 그냥 찍기도 했다. 물론 제작자에게 닦달당하는 것도 있었고, 워낙 바쁜 배우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릴리와의 러브신이었다. 릴리는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의 주연이자 트란 안 훙 감독의 부인인 트란 누 옌케가 연기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좀더… 조그만 더…” 이러는데 참 난감하더라. (웃음)
-조시 하트넷은 아무래도 주연이라 대우가 남달랐을 텐데, 한국의 톱 배우로서 꿀리는 느낌은 없었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엔 그럴 필요가 뭐 있나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시 하트넷이란 친구가 워낙 붙임성이 좋고 서글서글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첫 촬영을 위해 홍콩에 갔을 때도 조시 하트넷이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 그래서 이 친구가 왜 이러지, 하는데 방금까지 트레일러 안에서 <달콤한 인생> DVD를 봤다는 거다. 나중에 친해져서는 <달콤한 인생>을 미국에서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랬으니 별로 꿀릴 것은 없었다. 처음 하는 영어 대사 연기 때문에 걱정도 했지만, 어차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로 똑같은 일인데, 하면서 마음을 잡았다.
-이제 <G. I. 조>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식으로 제안이 들어왔나.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던 것인가.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에는 해외 파트 담당인 찰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내 미국 에이전트인 엔데버와 함께 몇년 동안 여러 작품에 관해 논의해왔다. <G. I. 조>는 지난해에 제안받았는데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트리트먼트 정도를 보고 판단했다. 시나리오는 한참 뒤에야 받았다. 그런데 확실히 그런 면은 철저하더라. 할리우드에서는 마니아들이 스튜디오 근처에 숨어 있다가 컴퓨터를 훔쳐가기도 하고, 시나리오 한장을 건지기 위해 건물 쓰레기통까지 뒤진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나리오가 유출되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다. 내게 보내준 시나리오도 복사를 못하도록 빨간색 종이에 글씨를 찍어서 보내왔다.
-어떤 배경에서 출연 제의에 응하게 됐나.
=사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쪽이 60% 정도였다. 고민이 된 점은 제작비가 큰 블록버스터영화라 남녀노소 모두가 볼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서 후회하자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었고, 평소에 조언을 주는 여러분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해보라고 하더라. 박찬욱 감독도 “이걸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고 얘기해줬다.
-<G. I. 조>는 미국에서 워낙 유명한 만화다. 영화도 설정이 같나.
=<G. I. 조>는 장난감에서 시작해 시리즈 만화로 만들어진 것인데, 원래는 미군들이 주인공이다. 한국에서도 <G. I. 유격대>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적이 있을 거다. 영화 버전에서 ‘G. I. 조’팀과 상대편인 ‘코브라’팀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뭉친 국제기구로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그들 사이의 대결을 그린다. 말했듯이 할리우드쪽의 보안 요구가 철저해서 이 이상은 말해주기 어렵다.
-당신이 맡게 될 스톰 섀도는 어떤 인물인가.
=스톰 섀도는 어렸을 때 아버지 같은 스승으로부터 닌자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스네이크 아이즈라는 서양 아이와 함께 닌자 교육을 받는다. 둘은 경쟁자이면서도 형제 같은 관계이기도 한데, 어느 날 스승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스톰 섀도가 사라지자 스네이크 아이즈는 범인이 스톰 섀도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둘은 숙명의 라이벌이 된다. 듣자하니 이 둘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가장 환호받는 캐릭터라고 한다. 둘 다 전투력이 강하고 신비로움까지 느껴지는 인물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병헌이 일본 닌자 역할을 맡았다’고 떠들썩했는데.
=스톰 섀도는 한국인으로 설정한다고 제작진과 합의돼 있다. 그것은 캐스팅될 때부터 내가 내세운 조건이기도 하다. 서구인들은 아시아인을 볼 때 국적 구분을 잘 안 하잖나. 게다가 일본시장이 크니까 일본인 캐릭터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하여간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국인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했고, 제작진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액션연기를 많이 해야 하나.
=양이 많다기보다 한번 액션을 펼치면 아주 큰 규모로 펼치는 것 같다. 처음 캐스팅될 때 내가 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성룡도 아니고 이연걸도 아니라고. 나에게 그런 무술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그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기본적인 훈련은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지금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G.I. 조>는 3월부터 시작해 6월까지 찍을 예정인데, 한달 반 정도 준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안에 그런 훈련도 있을 것 같다.
-여러 편의 해외 프로젝트에 동시에 출연하게 됐다. 부담과 각오가 있을 것 같다.
=트란 안 훙 감독의 영화와 <G. I. 조>는 극과 극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이제는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G. I. 조>에 출연한다는 결정 이후 우려하는 시선도 많아졌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정말 다른 분위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감독들에게 나를 맡겨보는 것이 개인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활동의 무게중심을 할리우드 또는 해외로 옮길 생각도 갖고 있나.
=전혀 없다. 한국에서 좋은 감독들과 작업하는 것은 너무나 변함없는 기정사실이고, 그러다 기회가 되면 할리우드건 외국이건 다녀올 수도 있다는 차원이지 거기에 눌러앉아서 뭘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이 모든 해외 프로젝트가 <달콤한 인생>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과의 만남이 정말 운명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변화된 것이 많다. 김지운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하게 되면 당분간 외로워질 거란 생각은 안 하나.
=먼저 간 강제규 감독님도 계시고 해서 아직은 그런 생각을 안 하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그게 나를 좀 단련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톱스타로 군림해왔는데, 거기에서는 그만큼 인정받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마음속으로 각오를 하고 있다. 어디서 난다긴다 해도 생판 모르는 친구가 와서 자신을 톱 대우를 해달라고 한다면 받아들이겠나. 기본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인 <로스트 플래닛>에는 어떻게 등장하게 됐나.
=아는 분이 게임 제작사인 캡콤과 연결해줬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꼭 어드벤처 게임만 한다. 내가 구기종목 운동을 잘 못해서 그런지 게임도 <위닝일레븐> 같은 구기종목은 안 한다. (웃음) 특히 좋아하는 게임이 <바이오하자드>와 <귀무자>인데 그 게임을 만든 캡콤이 나를 모델 삼아 게임을 개발하겠다니 팬으로서는 신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조종하면서 게임을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촬영은 이틀 정도 걸렸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떤 기계 앞에 앉혀놓고 화난 표정, 즐거운 표정을 지으라고 한다. 그것도 가끔 NG를 내곤 했지만(웃음), 그렇게 10분 정도 한 뒤 컴퓨터를 툭툭 건드리니까 자동적으로 3차원 모양이 됐다.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