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 <겨울>
2008-02-14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EBS 2월16일(토) 밤 11시

일자리를 잃고 막막해진 모크타는 아내 카툰과 어린 딸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날 결심을 한다. 카툰과 딸은 그런 모크타의 결정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다. 눈이 쏟아지는 어느 날 모크타는 그렇게 떠나고 카툰은 생존을 위해 노동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찾아 이 가난한 마을에 들어온 시계공 말하브가 카툰 주위를 맴돈다. 때마침 모크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카툰은 말하브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하지만 말하브 역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카툰과 어린 딸은 또다시 무력하게 그의 선택을 지켜본다.

이란 테헤란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그간 우리가 보아온 이란영화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동심에 호소하는 휴머니즘이나 관념에 지배되는 세계관 등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냉엄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이 <겨울>을 이룬다. 영화는 대사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테헤란을 대량 생산 공장과 침묵하는 노동자들의 황량한 공간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추운 겨울과 여기저기 흩어진 기계의 촉감만큼이나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이들의 선택을 지켜본다. 그 선택은 언제나 최후의 절박한 결단이며, 또한 그것은 한 개인의 실존을 넘어서 동일한 현실조건하에 있는 타자의 실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빈곤한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선택은 언제나 최악의 선택과 같고 선택의 결과는 예상대로 비극으로 돌아오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운명의 우연한 장난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부과한 필연적인 운명이다. 영화에는 그걸 보여주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 눈발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모크타를 태운 기차가 떠나자 그 자리에는 아내와 딸이 외롭게 남겨져 있다. 두 여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 남자는 다시 이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바로 그 철로 위에 돌아온 건 한쪽 다리가 잘린 모크타의 시체와 자신의 미래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모크타의 목발을 응시하는 말하브의 표정이다. 이때 무심한 눈발 아래 겹치는 두 노동자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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