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사회 전체를 향해 면도칼을 들다
2008-02-21
글 : 문강형준 (영화평론가)
빅토리아 시대 뿐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유효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스위니 토드 이야기’는 원래 19세기 중엽 런던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풍문이었다. 이발사가 손님들의 목을 따고, 기계장치 의자에 의해 시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아래층의 제빵사가 시체를 가지고 고기파이를 만들어 판다는 등 스위니 토드를 둘러싼 풍문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 시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스위니 토드에 의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익명의 손님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예외는 있지만,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비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극의 희생자들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는 인물들이다. 어떤 비극에서도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티터스 안드로니커스>에는 스위니 토드 이야기와 비슷하게 살인과 육체훼손, 그리고 죽은 시체로 만든 고기파이가 등장하지만, 그 극의 어떤 인물도 아무런 의미없이 죽어가지는 않는다.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위니 토드 이야기가 전 시대의 비극과 다른 점은 바로 그 무차별 살인에 있고, 그것은 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 즉 현대의 시작과 연관이 있다. 20세기가 다가오는 이 빅토리아 시기에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른바 ‘대중’이라고 하는, 반세기 뒤 서양 역사를 바꾸는 주축이 될, 새로운 익명의 집단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때의 비극은 왕실이나 귀족 집안의 고귀한 인물들이 펼치는 감정싸움을 넘어서게 되고, 그 익명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차원의 비극, 즉 무차별 살인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발사와 제빵사의 역할분담은 공장 노동자들의 역할분담을 닮았고, 시체를 고기파이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공장의 연기를 닮았다. 원래 스위니 토드 이야기가 싸구려 대중소설(일종의 ‘펄프 픽션’)에서 연유했던 점이나 이 시기에 실제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가 출현해 런던을 들썩이게 했다는 점 등도 모두 스위니 토드 이야기가 당시 사회의 특정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회화된 개인의 복수가 주는 진정한 공포

이 이야기를 스티븐 손드하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부인을 부당하게 판사에게 빼앗기고 유배를 떠난 한 착한 이발사의 복수극으로 만들었고, 이를 팀 버튼은 자신의 두 페르소나인 조니 뎁(스위니 토드)과 헬레나 본햄 카터(러빗 부인)와 함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잔혹 복수극으로 리메이크했다. 남의 부인에 대한 욕정 때문에 남편을 죽이는 내러티브는 멀리 <성경>의 다윗왕 이야기에서부터 반복되는 흔한 요소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는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볼 때는 이런 복수극의 전형성과 함께 19세기 중엽 영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특수성을 반드시 같이 읽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아내를 빼앗긴 이발사의 개인적 복수극이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극히 사회적인 복수극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틀이 힘없는 이발사가 법을 집행하는 막강한 판사의 욕정으로 몰락하는 구조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가 ‘악마 이발사’로 되돌아와 손님들을 무차별로 죽이는 이야기는 약자의 복수가 그를 파멸시킨 사회 전체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러빗 부인과 토드가 살인대상을 물색하는 노래를 할 때 이들은 목사, 판사, 지주 등 사회의 강자들만 지목하지만 그가 죽이는 손님들의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시체로 만든 고기파이 역시 손님에게 모두 제공된다. 이것은 특정한 계급에 대한 복수가 아닌, 부당하게 억눌린 약자가 악마가 되면 어떻게 사회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햄릿과 안드로니커스의 살인은 한정될 수밖에 없지만 토드의 살인대상은 무한하다는 점이 이 현대적 복수극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토드가 사는 ‘플릿’ 스트리트의 ‘플릿’은 ‘하수구’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 하수구를 흐르는 피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오프닝신은 바로 그 피가 런던 시민 모두의 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몰락(하강)한 이발사가 되돌아와 손님의 목을 딸 때 피는 솟구치고(상승), 시체는 떨어져(하강)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상승) 파이가 되어 다시 손님에게 접대된다(수평). 이 하강과 상승의 이미지는 결국 고기파이를 통해 시민 전체로 수렴된다. 개인의 복수는 이렇게 사회화되고, 대중사회는 그렇게 전 시대와는 다른 특별한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스위니 토드가 사실 당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보다 더 세련되고 혹독한 차별과 무자비함이 난무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스위니 토드가 뿜어낼 피는 가공할 만할 것이다. 컬럼바인과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지강헌 일파의 아지트와 대구지하철에서 우리는 이미 그 징후를 목격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