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월14일 오후 4시30분
장소 : 명보극장
개봉 : 2월28일
이 영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여대생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는 시내의 한 호텔을 예약한다. 임신한 친구 가비타(로라 바실리우)가 중절 수술을 위해 그녀에게 부탁한 것. 1980년대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루마니아에서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조심스래 임신 중절을 준비한다. 돈을 모으고, 장소를 마련한 뒤, 미리 약속한 불법 시술자 베베(블라드 이바노브)를 만난다. 임신 4개월이 지나면 원래 시술을 해줄수 없다는 베베는 두 여자를 범죄자 몰듯 몰아치고 오틸리아는 친구의 시술을 위해 베베의 과도한 주문을 받아들인다.
100자평
'4개월 3주 2일'이라는 제목은 마지막 생리일로 부터 계산하는 임신력(姙身曆)상의 '태아의 재태일(在胎日)'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는 차우체스쿠 정권하에서 낙태시술이 전면 불허된 가운데, 임신 19주가 넘은 여대생이 호텔방에서 불법 낙태시술을 받아 태아의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낙태시술을 받는 여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전적으로 도와주는 룸메이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리 친구라도 저렇게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나?'하는 의문을 갖지만, 후반부에 가면 그녀가 친구를 돕는 까닭은 다름아닌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자를 도울 사람은 처지를 공감하는 친구외엔 아무도 없기 때문'이란 점을 알게된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하일라이트가 될 만한 태아가 나오는 장면이나 적출된 태아를 처리하는 산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같은 시간에 호탈방에 혼자 둔 친구를 걱정하면서 유복한 남자친구의 집 파티에 초대받은 여자의 불안하고 착잡한 모습과 남자친구와의 짧은 실랑이를 담는다. 이 장면은 아마도 이런 의문을 유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녀는 왜 유복한 가정의 남자친구와 안온한 결혼을 꿈꾸는 대신, 친구의 낙태를 돕느라 저토록 큰 위험과 불쾌함과 죄의식을 감수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바로 영화의 핵심에 다가서는 열쇠이며, 낙태에 대한 추상적 도덕 논쟁이나 선정성 논란의 자리에 성, 연애, 결혼, 임신을 둘러싼 여성학적 논의가 들어가야만 하는 영화 구성상의 요청을 드러내는 부표이다. 그녀와 혼연일체가 되어 마음을 졸이며 스크린을 응시한 관객은 결국 최악의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최악의 일이 일어나지 않고 각자의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만 남긴 채 봉인이 되는 결말이, 오히려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많은 사연이 봉인된 무덤일까를 떠올리게 하기에 더욱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 가지 기우를 떨칠 수 없다. 영화가 낙태의 과정을 직접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행여나 낙태가 생각보다 쉽고 그다지 위험한 시술이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나 않을지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걱정된다.
황진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