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아시아의 역사로 우린 무엇을 하는가?
2008-02-21
글 : 아드리앙 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알랭 코르노의 <두번째 숨결>과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여름 시간>을 보면서 영화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하다
알랭 코르노의 <두번째 숨결>

영화의 세계에서 상호영향이란 돌고 도는 것이다, 그것도 지극히 논리적으로, 빛의 속도로 빨리. 올 최고 탐정영화상이 1966년 장 피에르 멜빌의 작품을 시조로 한 알랭 코르노의 리메이크작 <두번째 숨결>에 돌아갔다. 사실 멜빌은 1980년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좀 잊혀진 감이 있었다. 하지만 홍콩계 영화의 상승으로 특징되는 1990년대 초부터 그 영화사적 중요성이 새삼스레 부각하고 있다. 롱코트, 모자, 배우들의 말없는 연기…. 이런 유의 영화의 미학은 중국계 영화인들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프랑스식 전통에서 유래한다. 코르노 감독은 이처럼 자신의 새로운 버전을 우회적인 아시아풍으로 만들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코르노 감독은 “지나간 신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라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했다”고 <포지티프>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지나간 신화들은 영화의 세계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다만 다른 곳으로, 그러니까 우리네 클래식에서 본떠 하나의 새 스타일을 창조하는 아시아계 작품 속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중략) 이 부분에 대해 이브 앙젤로 촬영주임기사와 티에리 플라망 미술감독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오우삼, 왕가위 감독은 물론이고 두기봉 감독과 여타 모든 아시아계 탐정영화의 신진들, 특히 한국 감독들의 작품을 보여달라고 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단순한 흑백대조 톤이 주류를 이뤘던 60년대형 탐정영화나 강철처럼 차갑고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80년대형 탐정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혼합형 톤의 탐정영화다. <두번째 숨결>은 갖가지 뉘앙스의 황금 빛깔을 입힌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인데, 이건 신기하게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비엔나 출신 화가 클림트를 연상케 한다. 시네필에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만큼이나 대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초대형 특작 <두번째 숨결>, 불행히도 이 작품은 심각한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만다.

현재 상영 중인 전혀 종류가 다른 영화 <여름 시간>(L’heure d’ete) 역시 아시아와의 연계성을 주장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아예 이 작품이 자기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대만적’인 작품이라고 선언할 정도다. <여름 시간>에서 아사야스 감독은 한 예술가 가족의 운명을 그린다. 어머니가 사망한 뒤 자식 중 어느 누구도 고인의 유물을 관리할 수가 없어 결국 집과 부동산, 유작 등이 박물관에 팔리게 된다. 가족관계 처리나 무대미술, 테마를 다루는 방법에서 <여름 시간>은 전형적인 프랑스영화다. 하지만 허우샤오시엔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에릭 고티에의 절묘한 영상 이미지는 동양적이다. 그만의 독특한 프로세스, 이마주들에 가볍고 예리한 감성을 더해주는 반사광들의 감동적인 흔들림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사야스 감독은 자신의 인물들을 다분히 동양적인 시간, 즉 사계절의 순환 속에 그려넣는다. 거기서 우러나오는 것이 느리고 희미하게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생에 대한 느낌이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의미가 깊다. 형제간에 더이상 유산배분을 두고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를 속시원히 처분해버릴까로 싸운다. 이것은 영화 <여름 시간>이 인류 역사상 기괴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현 시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전부라고 여겨지던 ‘과거’나 ‘근원’ 따위가 지금처럼 모던화된 세상에서는 그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이 아시아적인 영화 <여름 시간>은 ‘박물관적 프랑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그려진 ‘박물관적 프랑스’란, 이제는 역사가 다른 곳에서 쓰여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 시간 쌓아온 자신의 부유함에 계속 매달려야 할지 아니면 모더니티의 물결 속에 동화되기 위해 그걸 그냥 내팽개쳐버려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는 프랑스의 일면이다. 아사야스 감독도 말했지만, 지금 프랑스에서 의문시되는 것은 “역사를 우리가 쓰느냐?”가 아니라, “남의 역사를 가지고 우리는 뭘 하느냐?”다.

그걸로 우린 가끔 괜찮은 영화를 만든다.

번역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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