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 모습 그대로 영화로 재현 <바보>
2008-02-27
글 : 강병진
1천만명의 네티즌이 본 강풀의 <바보>, 그 모습 그대로 영화로 재현되다.

바보의 하늘에 별이 떴다. 10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승룡(차태현)의 눈에 지호(하지원)가 보인 것이다. 그들의 재회로 시작한 영화 <바보>의 이야기는 원작인 강풀의 <바보>와 ‘싱크로율 100%’다. 10년 넘게 피아노만 친 지호는 갑자기 건반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손에 좌절하고, 승룡의 동생인 지인(박하선)은 바보인 오빠를 부끄러워한다. 승룡의 친구인 상수(박희순)는 건달로 살아야 하는 처지에 한숨을 쉬고, 상수의 가게에서 일하는 희영(박그리나)은 자신을 옭아매는 악덕업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들보다 모자란 바보 승룡에게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언제나 같이 놀아주는 친구도 있고, 동생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서 동생을 위해 돈을 벌 수도 있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호까지 돌아왔다. 게다가 그는 “항상 웃고 살아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 순수한 바보다.

<바보>는 <아파트> 이후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제작하고 개봉까지 한 2번째 영화다. <아파트>의 실패가 준 교훈이었을까. 안병기 감독의 <아파트>가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공포의 정서를 찾았던 것과 달리 <바보>는 원작의 장점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묘사한다. 승룡의 파란색 조끼부터 지호의 집 대문 손잡이를 물고 있는 사자할아버지까지 영화는 의상과 소품, 공간뿐만 아니라 대사와 사소한 유머들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하지만 모니터상에서는 장점으로 보였던 부분들은 성급히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종종 어색한 광경을 빚어낸다. 원작의 단순한 그림체에는 필요했던 인물들의 혼잣말이 실제 배우에게 발화되고, 원작에서는 글씨의 폰트를 키우며 감동을 자아낸 대사들이 영화에서는 사운드와 사이즈를 키우며 강조되면서 오히려 낯설어지는 것이다. 원작의 인물들이 가진 다양한 사연들을 모조리 담아내는 과정에서 정서보다는 이야기의 순서에 집착하는 것도 영화의 각색이 가진 폐해 중 하나다. 특히 승룡과 지호가 만나고 과거의 오해가 풀리는 전반부에서 다른 인물들에게도 시선을 나눠주는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이야기를 성급히 정리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말하자면 원작의 스크린버전 다이제스트를 만들면서 이야기의 정서마저 요약된 셈. 차태현의 성실한 연기가 돋보이긴 하지만 분명 <바보>는 <순정만화> <타이밍> <26년>등 현재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하려는 작가들에게 의미심장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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