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폴 다노] 벌써, 괴물의 조짐이 보인다
2008-03-13
글 : 김도훈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폴 다노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괴물이다. 캐릭터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화하는 이 지독한 메소드 배우는 <라스트 모히칸>을 찍었던 마이클 만의 표현에 따르면 “연기하는 게 아니라 변이(Mutate)”한다. 그런 배우를 상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싶다고? 소문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을 찍으면서 끔찍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하긴. 미치광이 도살자 역을 맡은 상대배우가 쉬는 와중에도 칼을 갈며 자신을 노려보는데 누군들 마음이 편했겠는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촬영 초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복음교회 목사 엘라이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는 폴 다노가 아니라 켈 오닐(Kel O’Neill)이라는 친구였다. 그러나 오닐은 스스로 촬영장을 걸어나갔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데이 루이스로부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런 상황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선택은, 엘라이의 형 역할로 딱 한 장면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폴 다노를 쌍둥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다노 같은 배우에게 그처럼 작은 역만 줬다니”라는 고백과 함께.

현명한 결정이었다. 폴 다노는 이미 (데이 루이스의 아내인) 레베카 밀러의 연출작 <잭과 로즈의 발라드>(2005)에서 데이 루이스의 딸을 탐하는 음험한 십대를 연기한 바 있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눈을 쳐다도 보지 않는 날들”을 이미 2년 전에 경험한 다노로서는 미치광이 메소드 배우를 상대하는 게 큰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니. 그는 심지어 즐겼다. 데이 루이스에게 죽도록 얻어맞는 장면을 촬영하며 실제로 얻어맞은 날은 “사실 꽤 재미있었”고, 그를 두들겨 패며 세례하는 장면에서 실재로 두들겨 패면서는 “스릴을 맛봤”다.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는 데이 루이스의 태도. 그건 두려워 해야할 것이 아니라 자극받고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23살이 된 이 어린 배우는 원래부터 배짱이 두둑하거나, 혹은 이미 대니얼 데이 루이스식 괴물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폴 다노는 지금도 여전히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아파트에서 고향 친구들과 동거한다. 그는 성공을 쫓아 LA로 갈 생각이 없다. “할리우드에 살게 되면 예술가로서 스스로 존중할 수 없는 역할들만 떠맡게 될 것 같다. 만약 배우도 예술가의 일종이라면 말이다.” <리틀 미스 선샤인> 이후 쏟아지는 코미디영화를 모조리 거절한 폴 다노는 텍사스 사막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찍고는 호주의 정글로 뛰어들어가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촬영했다. 존즈의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당연하게도, 괴물이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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