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영화는 역사를 만드는 현대의 이야기
2008-03-14
글 : 진중권 (문화평론가)
역사 밖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한 천사를 그린 <베를린 천사의 시>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팔을 흔들고 다니며, 시내가 강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가 되었으면 했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아이는 자기가 아이인지 몰랐고, 그에게 모든 것은 영혼이 있었고, 모든 영혼들은 하나였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그는 아직 어느 것에도 견해를 갖지 않았고, 습관도 없었고, 책상다리로 앉았다가 뛰어다니기도 했고, 헝클어진 머리에 사진을 찍을 때 억지로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 영화는 페터 한트케의 시 <유년기의 노래>로 시작한다.

집단적 기억

천사는 어린이의 눈에만 보이기에, 베를린 쿠담의 번화한 거리에서 그를 보는 것은 오직 길을 건너던 사내아이,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쌍둥이 소녀뿐이다. 천사가 서 있는 빌헬름 프리드리히 기념교회는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뒤,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기 위해 복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파괴된 교회의 현재를 통해 과거는 미래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로써 두번의 전쟁을 일으킨 민족의 집단적 기억은 과거에서 현재로, 거기서 미래로 이어진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교회가 독일의 역사 그 자체라면, 천사는 그 역사의 바깥에 서 있다. 천사 다미엘이 동료 카시엘에게 말한다. “영원함 속에서 정신적 존재로 사는 것은 멋진 일이야.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순수 정신적인 것을 증언하면서 말이야.” 그들은 역사의 바깥에, 시간의 바깥에 존재한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영원한 정신적 존재가 지겨워. 더이상 영원한 시간 위를 떠도는 게 아니라(…) 매순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천사는 역사의 밖에서, 시간의 밖에서 그것의 목격자이자 보존자로 머물러야 한다. “일어나게 내버려둬.” 카시엘이 다미엘에게 말한다. “바라보고, 모으고, 증언하고, 확인하고, 보존하는 것 이상을 하지마. 정신적 존재로 남아, 거리를 둔 채로 떨어져, 그저 말로 남아 있어.” 하지만 다미엘은 역사 안으로,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것은 추락한 천사라는 아주 오래된 모티브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서 인류의 역사는 애초의 타락사가 아니었던가.

역사의 천사

이어지는 장면에서 두 천사는 베를린의 시립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중세에는 책을 소리내어 읽었으나, 근대에 들어와 책읽기는 묵독이 되었다. 하지만 천사의 귀에는 도서관에서 묵독을 하는 이들의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막으로 번역은 안 됐지만, 그중 한 여자는 베냐민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이다. “발터 베냐민은 1921년 파울 클레의 수채화 앙겔루스 노부스를 구입했다.” 이로써 두 천사가 바로 베냐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울 클레의 그림이 있다. 앙겔루스 노부스라는. 천사는 제 시선이 응시하는 곳으로부터 떨어지려 하는 것 같다. 눈은 찢어지고, 입은 벌어지고,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아마 이런 모습이리라. 그의 몸은 과거를 향한다. 거기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그는 오직 파국만을 본다. 그는 죽은 자를 깨우고, 패배한 자들을 한데 모으려 하나, 파라다이스로부터 한줄기 난폭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 바람이 너무나 강해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 없다. 이 난폭한 바람이 천사를 끝없이 미래로 밀어내는 사이에, 그의 눈앞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

여기에는 파국으로 치닫는 역사를 바라보는 베냐민의 멜랑콜리가 담겨 있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행복이 아니라 인류의 절멸을 위해 사용되는 상황. 점점 더 낙원에서 멀어지며 발 앞에 쌓이는 파국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했던 베냐민의 무력감. 그것은 파국의 결말을 알면서도 현실에 개입할 수 없는 천사의 무력감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파괴된 기념교회와 황량한 포츠다머 플라츠의 현재, 그리고 오랜 기록 필름 속의 폭격당한 베를린의 폐허가 등장한다. 이 모두는 그 역사가 천사의 발 앞에 쌓아올린 파국의 상징이다.

이야기꾼

도서관의 계단에서 천사는 한 늙은 시인과 마주친다. 천사는 호머의 내면을 듣는다. “나의 청자(聽者)들은 시간과 더불어 독자(讀者)가 되어버렸어. 그들은 더이상 함께 모여 앉지 않고, 각자 따로 앉아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게 되었지.” 이는 아마도 베냐민의 <이야기꾼과 소설가>에서 인용한 것일 게다. “이야기의 청자는 화자와 함께 있다. 이야기를 읽는 사람까지도 이 함께함에 참여한다. 그러나 소설의 독자는 혼자 유리되어 있다. 그는 다른 어떤 독자보다 더 고독하다.”

도서관에 앉은 사람들은 이야기의 청자가 아니라 건조한 산문의 고독한 독자들.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노인은 사라져가는 ‘이야기’의 상징이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이야기체 형식의 예술이 그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베냐민은 이야기 몰락의 원인을 정보사회에 들어와 “경험의 가치가 하락한 것”에서 찾는다. 현대의 독자는 함께 얘기를 듣는 대신에 혼자 정보를 읽는다. “정보는 결과적으로 얘기의 정신과는 서로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이상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고독한 독자들 틈에 앉아 그가 펼쳐든 것은 아우구스 잔더의 사진집. 이 ‘유형학적 사진’의 선구자는 당시 독일사회에 존재하던 모든 계급, 계층을 사진으로 찍은 바 있다.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베냐민이 그의 작품을 “일종의 사회학, 인상학적 지리부도”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초상을 스케치하는 이 영화의 형식도 어딘지 잔더의 사진첩을 닮았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여기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아? 만져봐, 시원하지.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환상적이지. 손 시리면, 이렇게 비벼봐.” 전직 천사의 유혹에 다미엘은 영원불변한 플라톤의 세계에서 감각의 세계로 내려오기로 결심한다. “시간의 강으로, 죽음의 강으로 뛰어들겠어.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망루에서 뛰어내려 위에서가 아니라 눈높이에서 볼 거야. 먼저 목욕을 하겠어. 터키인 이발사에게서 면도를 하고, 손가락 끝까지 마사지도 받겠어.”

다미엘이 말을 마치는 순간 흑백의 세계는 색채를 얻고, 땅 위에는 무게를 얻은 천사의 발자국이 나타난다. 천사가 인간이 되는 사건을 영화는 이렇게 흑백의 시각이 촉각이 되는 변화로 묘사한다. 이는 현대의 지각이 시각에서 촉각으로 바뀌었다는 <기술복제> 논문의 명제를 참조한 것이리라. 후속작의 제목(<먼 곳에서 가깝게>)도 그것을 시사한다. “멀어도 가까운 것”은 그 유명한 ‘아우라’의 정의가 아니던가.

크로노스 속에 들어온 천사는 이제 “모든 것을 아는 대신”에 기꺼이 시간의 유한성에 묶인 인간의 무지를 얻는다. 스스로 영생을 버리고 가멸적 존재로 내려온 그를 구원하는 것은 한 여인의 사랑. 그녀와 첫밤을 보낸 뒤 다미엘은 말한다. “이제 나는 안다. 그 어떤 천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역사, 이야기, 영화의 천사

카시엘과 다미엘은 “역사의 천사”다. 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사의 밖에 전지한 관조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안에 무지한 행위자로 들어갈 것인가? 다미엘은 역사 속으로 들어와 마리온과 더불어 역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말을 할 때, 여인의 얼굴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한다. “이제, 당신(들) 차례예요. 놀이는 당신(들) 손에 달렸어요. 지금, 아니면 다시는 못할 거예요.”

늙은 시인은 “이야기의 천사”다. “우리 중 누구도 평화의 서사시를 쓰지는 못했지. 평화는 왜 우리를 오래 열광시키지 못하고, 그토록 이야기하기 힘들까? 여기서 포기할까? 내가 포기하면, 인류는 이야기꾼을 잃고, 인류가 이야기꾼을 잃으면, 유년기도 잃겠지.” 전쟁으로 사라진 포츠담 광장을 다시 찾을 때까지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이야기꾼을….” “모든 전직 천사에게 바침. 특히 야스지로, 프랑수아, 안드레이에게.” 엔딩 크레딧은 오즈, 트뤼포, 타르코프스키를 “영화의 천사”로 소개한다. 신이 셋이면서 하나이듯이, 역사의 천사, 이야기의 천사, 영화의 천사도 셋이면서 하나다. 영화는 역사를 만드는 현대의 이야기. 역사의 물결에 몸을 맡긴 세 천사가 마리온의 입을 빌려 달콤하게 속삭인다. “우리는 올라탔다”(Nous sommes embarques). Je suis au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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