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허밍>
2008-03-12
글 : 강병진
뇌사에 빠진 여자의 영혼이 남자를 맴돈다. 그래서 남자가 지금 만나러 간다

준서(이천희)와 미연(한지혜)은 2000일 기념일을 앞둔 연인이다. 꽃다발 이벤트는 100일 기념일에 했고 커플반지는 500일 기념일에 주고받았으며, 1000일 기념일에 풍선까지 깔아본 이들은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감정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미연은 공부만 하는 남자친구의 건강이 걱정돼 암벽등반 등의 세계로 그를 이끌지만, 그런 여자친구가 준서에게는 “특이하고 위험한 것만 있으면 꼭 같이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여 부담스럽다. 기어이 준서는 미연과 잠시 떨어져 있을 요량으로 남극기지연구팀에 파견을 신청하고,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만나기로 한 준서가 오지 않자 미연은 그에게 줄 선물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 빠진 준서에게 미연은 여전한 모습으로 찾아와 2000일 기념일이 언제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곧 그녀의 사고소식을 접한 준서는 아침에 만난 미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연풍연가>를 연출한 박대영 감독의 신작인 <허밍>은 표면적으로는 영혼의 불가사의한 존재를 그리는 판타지 멜로영화다. 미연의 영혼은 달력에 기념일을 표기해놓고, 앞으로 기를 수 없는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맡기는가 하면 준서의 집에 메시지를 숨겨놓는 등 영혼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지금, 만나러 갑니다> <환생> 등의 영화를 떠올린다면 <허밍>에서 반전을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허밍>의 전략은 그처럼 과학적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은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준서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과학적인 논리로 풀어보려는 노력을 해보긴 하지만,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늦기 전에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란 메시지다. 분명 예기치 않은 사고와 그로 인해 과거에 품었던 순수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는 분명 요즘처럼 멜로영화가 센 시대에 유독 도드라지는 특징일 것이다. 특히 여자친구를 한창 사랑하던 시절,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남자의 모습이나, 남자친구가 등굣길에 이용하는 버스의 번호만 봐도 설렌다는 여자의 고백은 유치해보일지라도 비난하기는 힘들어보인다. 하지만 그런 복고적인 감성을 정말 복고적으로 묘사한 <허밍>이 TV드라마가 아닌 극장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호응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커플인 관객과 싱글인 관객 사이에서는 반응이 갈릴 수도 있을 듯. <허밍>은 화이트데이 전날에 개봉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