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2008-03-21
글 : 오정연
<천일의 스캔들>의 스칼렛 요한슨

<인 터치>, 할리우드 최고 가슴의 소유자로 스칼렛 요한슨을 뽑다. 근소한 차이로 뒤를 쫓는 것은 제시카 심슨과 샐마 헤이엑. 이에 대한 요한슨의 반응. “우리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워하시겠는데요. 14년간 인디영화에 출연한 끝에 최고의 가슴으로 뽑혔다면서 말이죠.” 영국의 한 조사 결과, 요한슨, 이번에는 최고의 엉덩이를 소유한 여성으로 선정되다. 이에 대해서는? “그럴 리가! 나보다 훨씬 예쁜 엉덩이를 가진, 더 훌륭한 엉덩이를 갖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근데 내 뇌는 어떻게 생각해요? 심장이나 신장, 쓸개도 쓸 만한데.”


스칼렛 요한슨을 인터뷰한 기사의 서두는 한결같다. 그녀의 흔치 않게 여성스러운 외모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다. 허풍과 상상, 약간의 단서를 조합하여 인터뷰이와의 교감을 강조하는 할리우드식 저널리즘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여인과 소녀의 정신과 외모를 동시에 지닌 별종스타를 향해 잔뜩 세워진 그들의 촉수는 요한슨의 신장과 쓸개는 물론 어금니나 발꿈치까지 중대한 문제라는 듯 행간에서 번뜩인다. 그도 그럴 수밖에. 공허한 라이프스타일을 매일같이 타블로이드에 전시하는 ‘내추럴 본’ 셀러브리티와 자기만의 노하우로 사생활과 직업세계를 분리하는 ‘똑순이’ 배우. 이를 할리우드에 거주하는 혹은 제집 드나들 듯하는 여성 주민을 둘로 가르는 가장 명확한 틀이라고 할 때, 스칼렛 요한슨은 당연 후자이기 때문이다. <베니티 페어>의 표지를 누드로 함께 장식하여 화제가 됐던 키라 나이틀리, 잉글랜드의 왕을 향한 서로 다른 구애를 통해 첨예한 삼각관계를 연출했음에도 기묘한 자매애가 더욱 강조된 <천일의 스캔들>에 함께 출연한 내털리 포트먼 등의 또래 여배우들과 여러모로 비슷한 부류로 묶일 만하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일에 열중한다”는 다부진 면모에도 불구하고 털털한 입심과 거리낌없는 성격 덕분에 종종 선물 같은 멘트를 인터뷰이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녀가 독보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는 조건이 또 하나 있다면, 너나 할 것 없이 깡마른 체구에 열을 올리는 할리우드 제국에서, 비인간적인 다이어트 레이스에 언제나 초연했다는 점이다. “그런 몸매는 섹시하지가 않잖아요. 그처럼 비현실적이고 건강치 못한 이미지를 여성에게 강조하는 미디어가 문제예요.” “난 이제 22살이에요. 원하는 건 아무것나 입을 수 있죠. 게다가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요.” 단지 풍만한 몸매의 문제가 아니다. 외모는 물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모든 선택에 시종일관 당당한 면모. 스스로가 각인한 주홍글씨(scarlet letter)를 자랑스럽게 간직하되, 함부로 드러내거나 극성스럽게 안으로만 감추지 않는 24살의 여배우는 흔치 않다.

스칼렛이 메리일 수 없는 이유

그녀의 그 모든 매력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때문에 <천일의 스캔들> 속 ‘순수처녀’ 메리는 요한슨과 어울리지 않는다. 평범한 남편을 섬기며 살고 싶었음에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왕의 ‘수청을 들었다가’ 어쩌다보니 마음까지 줘버린 ‘순둥이’ 메리 볼린과 왕을 쥐락펴락하는 야심가형 요부 앤 볼린. 스티브 부세미부터 빌 머레이까지 숱한 아저씨들을 영화 속에서 홀렸고, 베니치오 델 토로, 자레드 레토, 저스틴 팀버레이크, 조시 하트넷, 라이언 레이놀스 등을 실제로 홀렸다고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17살난 그녀와 함께했던 빌리 밥 손튼은 “모두들 어떤 면에서든 자신의 인생과 일에 대해 회의하게 마련인데 그렇지 않았던 단 한 사람”으로 그녀를 꼽는다. “한번은 조엘 코언 감독이 그녀에게 해바라기씨를 씹으며 연기하라고 제안했더니, 스칼렛이 말하더군요. ‘대체 내가 왜요?’ 마치 ‘바보 아냐?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라는 식으로 조엘을 바라봤다니까요. 그때 조엘은 ‘미안’이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왔을걸요.” 운명의 장난처럼 왕의 침실로 내몰린 유부녀라고? 웃기지 마라.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숱한 CF 오디션에서 탈락하면서도 그보다 더 많은 오디션장을 기웃거린 끝에 영화에 첫 출연했던 10살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원치 않는 일에 자신을 내던진 바 없다. 영화에서는 자신보다 여러모로 우위에 선 듯 보이는 남자를 주로 상대하긴 했지만, 언제나 이들의 머리끝에 올라앉은 듯 당당했을 뿐 비참하게 버림받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스칼렛이 메리일 수 있는 이유

<천일의 스캔들>의 동명 원작 소설은 감춰졌던 앤 볼린의 자매 메리를 새롭게 부각시킨 가상역사소설이다. 자신을 짓밟은 언니를 위해 자신을 버린 왕을 두번씩이나 찾아가고 언제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영화 속의 조숙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 메리의 사생활은 앤 못잖게 화려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귀족과 잉글랜드 왕을 넘나드는 스캔들을 소유하고도 두번이나 결혼에 성공하고, 비운의 삼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인이다. 요란하게 사랑을 얻고 더욱 요란하게 죽음을 맞이한 앤과 달리 조용하게 실속을 찾아 마지막에 웃는다는 점은 영화와 실제가 같다. 한명의 매력적인 여인을 둘로 분리한 듯한 두 여주인공 앤과 메리를 연기한 포트먼과 요한슨이 나름의 내면연기를 펼치는 틈바구니에서 홀로 웃통을 벗으며 육체연기를 선보여야 했던 에릭 바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칼렛 안에는 서로 다른 두명이 있다. 몇년에 걸쳐 세계적으로 도약한 강한 여인과 테디 베어를 끌어안은 어린 소녀.” 이는 스칼렛과 메리가 공유한 지점이기도 하다. 우디 앨런과 세편의 영화(<매치 포인트> <스쿠프> <빅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를 함께한 뮤즈, <천일의 스캔들>의 출연 배경에 대해 “예전부터 존경했던 내털리와 함께할 수 있어서”라며 포트먼과 런던의 클럽을 순회하며 촬영 내내 자매처럼 속살거렸다는 철없는 20대, 2004년 존 케리에 이어 2008년에는 오바마의 선거전에 열을 올리는 극성스런 민주당 지지자, 뉴욕을 주제로 하는 옴니버스영화 프로젝트에 미라 네어, 앤서니 밍겔라 등의 연출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감독 지망생, 평소 사랑해 마지않던 톰 웨이츠의 노래를 새로 부른 앨범으로 뮤지컬 배우를 향한 오랜 꿈을 이룬 초보 가수…. 여러모로 평면적인 캐릭터 메리 볼린으로 그녀를 떠올렸던 제작진의 머릿속에 이처럼 다층적인 요한슨의 면모에 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똘똘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사진제공 UPI코리아,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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