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3월22일(토) 밤 12시45분
어린 시절 상처를 공유한 기수(김병석)와 종대(유아인)는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암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묵묵하게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수와 달리 종대는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허황된 욕망을 품으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늘 그 자리를 맴도는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종대는 결국 막다른 선택을 하고 늘 그랬듯 기수는 그런 종대 곁에서 선택의 대가를 함께 짊어진다.
노동석의 두 번째 장편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마이 제네레이션>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건조한 현실에 잠시 카메라를 밀착시켰던 것처럼 느껴지던 전작보다 드라마틱하다. 부재하는 아버지, 집을 나갔거나 종교에 빠진 어머니, 조폭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강한 아버지, 유약한 소년의 총에 대한 집착 등은 예상 가능한 틀 속에서 예상 가능한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몇몇 평자들은 이를 두고 소년의 성장기에 관한 반복되는 클리셰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표면적 소재들로만 보자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마이 제네레이션>과 다른 화법 속에서 다소 상투적이고 산만하게 진행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섣불리 낭만적인 태도로 꿈과 희망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의 정글 속에 무책임하게 소년을 버려두거나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거나 세상에 대해 냉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노동석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스산한 뒷골목의 풍경에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감독이며 배우들의 정제되지 않은 연기는 오히려 조화롭고 신선하다.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 아직 소년을 벗어나지 못한 어른과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소년이 “휼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라는 질문을 주고받을 때, 기수와 종대가 부둥켜안고 상처와 분노를 서로의 몸과 마음으로 나눌 때, 마침내 기수가 종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넌 내 꿈이니까. 어딜 가서도 꿈을 버리지 마”라고 말할 때 눈물이 날 것 같다. 좋은 아버지가 없는 이 잔인한 세상. 그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 아직 멀었다면, 그들은 적어도 서로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