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쉬 페이션트> <리플리> <콜드 마운틴>의 감독 앤서니 밍겔라가 3월18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밍겔라의 홍보담당이 밝힌 사인은 대량출혈로, 지난 주 편도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입원해 경과를 지켜보던 중 치명적인 출혈이 발생해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지시각으로 19일 새벽, 사망보도가 나간 뒤 현재까지 장례식 일정은 알려진 바 없다.
안소니 밍겔라는 1954년 1월6일 영국의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섬 아일 오브 와이트(Isle of Wight)에서 태어났다. 성공적인 아이스크림 사업을 운영하는 이탈리아 이민가정의 둘째로 태어난 그의 첫 직업은 대학 강사였으나, 연극무대의 작가로 활동하며 영국과 유럽 등에서 호평을 받았고, 영화계에 입문하기 전 라디오와 TV 극작가로도 활동했다. 1990년 직접 쓴 각본으로 <유령과의 사랑>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 뒤 워너 브라더스에서 <미스터 원더풀>과 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필모그래피를 채웠으나, 앤서니 밍겔라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작품은 캐나다 작가 마이클 온다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삼아 아프리카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연기상 등을 포함해 이듬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씨>를 각색해 <리플리>를 만든 밍겔라는 또 한번 오스카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극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밍겔라는 종종 영화와 TV를 떠나 무대로 돌아가곤 했다. 오프 브로드웨이를 위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온 그는 오페라 연출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의 무대 중 가장 성공한 공연은 2005년 영국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다. <나비 부인>은 다음 해 뉴욕의 메트로폴라틴 오페라 극장의 시즌 개막작으로 초대됐는데, 주드 로, 시에나 밀러, 숀 코너리, 리브 타일러 등 감독과 친분이 있는 셀러브리티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뉴욕 메트의 정기공연으로 자리잡게 됐다.
영화감독으로서 밍겔라의 유작은 2006년 작인 <무단침입>이지만, TV 시리즈 제작자로서 그의 유작은 최근까지 보츠와나에서 촬영한 <No. 1 Ladies Detective Agency>가 될 것이다. 알렉산더 맥컬 스미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시리즈로 밍겔라는 파일럿의 연출과 제작을 맡은 상태였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화요일, BBC는 애초에 예정된 <No. 1 Ladies Detective Agency>의 파일럿 에피소드 방송을 취소할까도 고려했지만, “첫 방송은 축하의 의미가 됐어야 맞지만 커다란 슬픔이 되고야 말았다” 전하며 감독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대로 방영했다. 애초에 밍겔라는 파일럿만 연출하고 총괄제작자로 정해진 상태라, 시리즈의 제작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의 이름을 신뢰하고 이뤄졌던 전세계 TV 네트워크들과의 배급 계약이 다소 불확실해졌다.
앤서니 밍겔라는 밥 웨인스타인과 하비 웨인스타인의 TWC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어 인연을 맺었다. 최근 TWC에서 영화화하는 리즈 젠슨의 <비밀규칙>을 각색하기로 되어있었고, 니콜 키드먼이 임신하면서 케이트 윈슬렛으로 주연이 바뀐 스티븐 달드리의 <더 리더> 크레딧에도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2008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의 손길이 닿은 2개 작품이 후보작으로 올랐는데, 틸다 스윈튼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마이클 클레이튼>을 제작했고,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올랐던 <어톤먼트>에서는 밍겔라 영화 인생 최초로 노년의 브라이오니를 연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인터뷰어로 출연했다.
최근까지 영국 영화 협회의 회장직을 역임했던 그를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했다. 오랫동안 밍겔라와 영화를 제작하며 호흡을 맞춰온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하비 웨인스타인은 “그를 잃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나의 멘토였고, 파트너였고 무엇보다 형제나 다름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영화 속 우아하고 지적이고 또 아름다운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이 된 것처럼, 그가 보여준 베테랑으로서의 모습과 사적인 모습들은 나의 여생의 보물처럼 간직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에게도 조의를 표했다.
밍겔라와 미라지 엔터프라이즈를 함께 운영했던 시드니 폴락도 그를 회상했다. 올해 74세인 폴락은 최근 병세가 심각해 감독직을 맡았던 <리카운트>의 연출을 포기한 상태다. “앤서니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로맨티시스트였습니다. 시인이면서 현실의 수련을 외면하지 않았고, 숙달된 학자였고, 타고난 음악가요, 습관이 몸에 밴 다독가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서 배려와 친절을 봤을 겁니다. 전쟁을 겪어야 참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영화 만들기는 때때로 전쟁같은 일입니다. 안소니와 몇 개의 계절을 함께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존엄성과 예술성은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으며, 전쟁 같은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츠와나 대통령 페추스 모개의 대변인은 최근 TV시리즈를 위해 보츠와나를 방문해 지역에 대해 공부했던 성실한 감독을 잃었다는 사실에 “충격으로 할말을 잃었다”고 전했고, 2005년 밍겔라 감독이 선거 광고를 만들며 친분을 쌓은 전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도 “안소니 밍겔라는 인간으로 훌륭했고, 창조적이고 재능있는 감독인 동시에 겸손한 신사”라고 회고하며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고 매우 슬프다고 말했다.
<리플리> <콜드 마운틴> <무단침입> 등 앤서니 밍겔라의 페르소나로 3편의 영화에 출연한 주드 로는 감독의 이른 타계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친구처럼 동료처럼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재능있는 작가이자 감독이었고, 스크린 위의 대사가 어떻게 말해져야 하는지 노력하지 않고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을 놀이처럼 재밌게 만들어줬습니다. 따뜻하고 자상했으며 밝고 재밌는 사람이었습니다. 축구부터 오페라, 영화, 음악, 문학, 사람들까지 관심이 다방면에 많았지만 그가 가장 관심가졌던 사람들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를 아주 많이 그리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