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애쉬는 여름방학을 맞아 여자친구 린다와 여동생 셰릴, 친구 스코티, 그의 여자친구 셜리와 함께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밤을 보내기 위해 누군가의 오두막에 무단으로 침입한 그들은 그곳 지하실에서 죽음의 책이라는 수상쩍은 문서와 총, 도끼, 전기톱 등의 무기들, 레이몬드 노비 교수란 작자가 자신의 연구를 기록해놓은 녹음테이프를 발견한다. 테이프에 녹음된 주문이 악령을 깨우리라는 노비 교수의 경고에도 그들은 기어이 이를 재생시키고, 나머지 인물들이 연애 행각에 바쁜 사이 이상한 소리를 따라 숲을 헤매던 셰릴이 가장 먼저 끔찍한 일, 그러니까 남자의 성기로 무장한 나무들에게 강간(!)당한다.
잠깐, 호러영화를 즐겨보는 당신에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야기라고? 그럴 수밖에. 뮤지컬 <이블데드>는 샘 레이미 감독의 B급영화 <이블데드> 시리즈를 토대로 하되 원작의 내용이나 공포영화의 규칙을 거침없이 코미디의 소재로 빨아들이는, 그야말로 재기발랄한 공연이다. 1편에 나왔던 인물들이 극의 초반을 장식하지만 이들이 물고 물리면서 이내 좀비로 변해버리거나 내장을 줄줄 뽑아내면서 나자빠진 뒤에는 2편의 인물들, 노비 교수의 딸 애니와 그의 애인 애디, 그들을 오두막으로 안내한 현지인 제이크 등이 좀비에 맞서 싸우는 애쉬의 고달픈 여정에 동참한다. 공연의 마지막, 애쉬가 에스마트 고객들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설파하는 부분에 이르면 이 뮤지컬이 3편을 포함해 시리즈 전체를 골고루 버무리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알 수 있으니, 영화 <이블데드>의 팬이라면 그 조각을 이어맞추는 재미가 녹록지 않을 듯. 하지만 나른한 봄을 맞아 오랜만에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폭소를 터뜨리고 싶은 이들이 선택해도 실망하지 않을 공연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단, 고상함 따윈 잠시 기절시켜둔다는 전제 조건하에서. 애쉬와 린다가 치솟는 애정을 견디다 못해 서로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스코티가 셰릴을 “짧은 년”이라고 욕하다가 결국 “짧은 놈” 취급을 받고, 뇌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금발의 셜리가 부풀어오른 가슴을 애교있게 흔들어대고, 애쉬가 린다의 목을 혹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손을 톱으로 써는 와중에도 깔깔거릴 수만 있다면 공연이 끝난 뒤 한껏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박수를 칠 수 있을 것이다.
우비를 쓰고 무대에서 쏟아지는 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스플래터존(Splatter Zone)을 따로 지정해놓긴 했으나 붉은 빗줄기가 생각만큼 거세진 않다. 피칠갑을 한 배우들이 직접 내려와 핏물을 발라주시니 오히려 배우들과 가까이서 접촉(?)하고 싶은 관객에게 유용한 좌석일지도. 무대에 막이 내린 뒤에도 앙코르를 외치면 배우들이 다시 등장해 다른 배우의 스코어를 열창하는 보너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반드시 목청 높여 앙코르를 열창할 것. 원작 뮤지컬은 캐나다 연출가 크리스토퍼 본드와 배우로 토니상을 3회나 수상했다는 힌튼 배틀이 함께, 이번 한국 공연은 뮤지컬 배우 출신의 임철형이 연출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주인공 스위니 토드 역에 더블캐스팅됐던 류정한, 양준모를 비롯해 백민정, 김재만, 정상훈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