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수창]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을 보여주려 했다”
2008-04-02
글 : 오정연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의 공수창 감독

<파업전야> <하얀 전쟁>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텔미썸딩>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공수창 감독이 두 번째 연출작을 완성했다. 시나리오까지만 쓸 줄 알았던 영화 <알포인트>를 연출하면서 캄보디아의 정글에서 전쟁을 치르듯 감독 데뷔했던 그가, 이번에는 촬영 중간에 제작비 문제로 촬영이 4달 동안 중단되는 일을 겪고 각본, 감독에 제작자라는 타이틀까지 덧붙이고는 폭우가 쏟아지는 비무장지대의 경계초소를 헤맸다. ‘군대영화’를 연달아 찍은 사람답게(?) 그의 말투는 굳이 따지자면 삐딱하고 거칠다. ‘굳이 따져야’ 하는 이유는 영화든 대화든 좀 덜 세련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하는 쪽을 택하는 그 진심 때문이다. 군인만 떼지어 나오는 영화에서 그 흔한 적과의 대치 상황 한번 연출하는 법이 없다. 그의 영화에서 두려운 것은 눈에 보이는 외부의 적이 겨눈 총구가 아니라, 언제고 유령처럼 출몰하는 내부의 망상이다. 군대는 그에게 소재나 배경이 아니라, 조직의 은유이자 거대한 화두 그 자체다. 베트남에서 비무장지대로, 1971년에서 현재로, 한결 바싹 다가선 거리만큼 화두를 향한 그의 근심과 연민 역시 보다 강렬하고 직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초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개봉을 코앞에 둔 공수창 감독은 “이상하게 걱정이 안 된다”며 말문을 연다. 위악과 위선, 농담과 진담, 장르와 현실, 한계와 가능성 사이. 그의 말은 영화보다 미묘한 편에 속한다, 굳이 따지자면 말이다.

-기자시사와 VIP시사 결과, 지인들의 반응이 어땠나.
=제일 신뢰하는 장윤현 감독은 “표현 수위가 너무 세다. 두번의 총격신은 감정도 많고 참 좋은데, 그전에 영화가 너무 세서, 정작 그 장면에서는 폭발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근데 이상하게 나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어떤 스탭은 ‘그런 게 우리 영화의 무기’라고 얘기할 정도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영화가 중단됐을 때 이미 단련돼서 그런 것 같다. 좀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그저께 마지막으로 사운드를 수정한 버전을 확인하고 집으로 가며 운전하다가 갑자기 울컥하더라. 촬영이 중단됐을 때도 늘 사무실에 나갔는데, 다섯시쯤 되면 직원들이 퇴근 안 하냐고 묻곤 했다. 그럼 난 또 직원들에게 집에 안 가냐고 물었는데, 왜냐하면 저녁값 때문에. (웃음) 결국 같이 밥먹고 나면 퇴근하는 시간이 꼭 그저께 그 시간이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누군가가 투자한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며칠이라도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내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시기. 내가 그렇게 비즈니스에 능한 사람이 아니어서, 죄다 선배이고 친구인 이은, 오기민, 차승재 등을 만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근데도 그렇게 안 만나면 나중에 내가 후회할 것 같아서, 차일 걸 뻔히 알면서도 확인해야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스탭들을 생각하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저께 그렇게 감정이 울컥하고 나니 동요가 없더라. 어쩔 수 없다. 그런 센 표현들을 순화시키면 영웅 이야기가 될 텐데,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을 보여주려 했던 거니까.

-세트며 분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 자체가 너무 강렬하다.
=결국은 내 책임이지. 지난 기사를 보니 스탭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장난처럼 불만을 토로했지만, 시나리오에 대한 서로의 해석을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서로 면역된 점도 있다. 그렇게 분장한 배우와 함께 밥도 먹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에 단말마를 남기고 죽어가는 이들이 ‘학살’됐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분장이 필요했다.

-이런 명백한 장르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나 혹은 다큐멘터리처럼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제작자가 싫어했겠지.

-팔릴 만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장르를 택했다는 건가.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됐달까. 절대 군대에 물들지 않을 거야, 하다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웃음)

-필영우 작가는 <알포인트>에서도 함께 시나리오를 썼던데, 어떤 분인가.
=나랑 6,7년가량 함께 작업했다. 부산대 물리학과를 나와서 시나리오와 전혀 관계없이 살다가 내 시나리오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됐다. 그리고 여자다.

-앗. 그럼 이름은 일부러 남자처럼 보이려는 가명인가.
=가명이긴 한데,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똑똑한 친구인데, 부산 출신이라 그런지 성질이 좀 있다. 내가 유일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여자기도 하다. 예전에 <알포인트>를 김동빈 감독이 하려고 했을 때, 나 없는 사이 둘이 붙기도 했다. (웃음) 어쨌거나 오랫동안 함께했으니 내 의중을 가장 잘 아는, 함께할 때 시행착오가 가장 적은 사람이다.

-<알포인트>와 구조적으로도 상당히 비슷하다.
=쓸 때는 <알포인트>로부터 벗어나고 싶기만 했다. 영화를 찍으면서는 일란성 쌍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알포인트>는 60년대, <GP506>은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아무래도 내가 끌리는 이야기의 근원에 그런 게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런 구조나 캐릭터에 끌린다는 건가.
=노 수사관 캐릭터는 예전부터 꼭 다뤄보고 싶었다. 노 수사관의 계급이 원사인데 하사부터 시작하는 하사관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계급이다. 소위부터 시작해서 별까지 달 수 있는 장교와 다른 일종의 노동자 계급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의 계급은 중세의 신분상 계급과도 같다. 김민기의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는 퇴역하는 하사관에게 바치는 노래다. 간혹 군 수뇌부들이 말하길, ‘푸른 옷에 청춘을 바쳤다’지만, 웃기지 마라. 푸른 옷에 청춘을 바친 건 하사관들이고, 수뇌부야 어차피 출세를 위해서 그런 거 아닌가. 시나리오 초기에는 노 수사관의 계급이 중령 정도였다. 나이는 있는데 성품 때문에 더이상 진급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근데 아무리 봐도 느낌이 안 나더라.

-노 수사관은 원래 수사를 전담했던 사람인가.
=군인 형사라고 보면 된다. 20, 30년 동안, 진급이 확정된 하나회 장군이 있는 부대 안팎에 강간사고, 자살사고 등이 일어나면 그걸 은폐시키는 게 일이었던 거지. 원래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노 수사관은 그러지 않아서 일은 깨끗하게 처리하고도 욕만 먹는 타입이지.

-<알포인트> 때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는 내가 고민해야 할 것과 고민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한꺼번에 고민했기 때문에 아침이 두려웠다. 제작자 장윤현이 후배니까 고민이 더 많았다. 그냥 쭉 잤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내 식대로 표현해서, 한국 돌아가면 장윤현부터 시작해서 다 죽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웃음)

-이번 현장에서는 즐거워 보이더라.
=그랬다. 하지만 그때가 더 순수했다. <알포인트> 때, 무지무지하게 힘든 밤촬영을 끝내고 아침 7시에 잠이 들어서 9시에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의상팀 애들이 아홉명 옷을 손으로 빨고 있더라.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난리를 쳤다. 들어가는 척하더니 또 나와서 빨래를 하더라. 꼭 해야 하는 일이었던 거지. 돌아서는데 코끝이 찡했다.

-<GP506>이 김 일병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제 기자간담회 때도 <월간 군사세계> 기자가 김 일병 사건의 유족에 대한 미안함이 없냐고 질문했다. 그래서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김 일병 사건과는 무관한 내용이다. 외람되지만,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나 내가 무슨 국방부나 국가도 아니잖나.” 이 영화를 입대를 앞둔 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느냐기에 “그런 애들이 봐야 한다”고 했다. 사실 김 일병 사건 같은 것을 말하라고 하면 난 스무개도 더 댈 수가 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땐 소대 하나를 아작내고 (북으로) 넘어간 애도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밝혀진 것뿐이다.

-주제 면에서 <알포인트>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GP506> 엔딩에서는 군인이라는 존재가 훨씬 피동적으로 느껴진다. 노예들, 식민지 시대의 인간이 군대에서 비로소 이해가 됐다. 거기서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일요일에 빨래하고 축구하는 거라지만, 난 축구는 몰라도 빨래는 싫었다. 속옷을 뒤집어가면서 보름씩 입은 적도 있다, 정말이다. 그렇게 굉장히 피동적인 존재가 되어서 감염되었음에도 살고 싶어하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고 본다. 나와 너, 적과 아는 여기 없다.

-두 영화 모두 군인‘만’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적과의 교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알포인트>에도 역시 외부의 진짜 적은 없었잖나.
=나이가 들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20대에는 용병으로 참가한 우리는 정말 못할 짓을 많이 했다는 생각만 했다. 기본적으로 그 생각에 변화는 없지만, 거기 참전했던 개인에게 무슨 죄가 있나.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돈이 벌고 싶은, 외국이라는 데를 생전 처음 가보는 사람들 아닌가. 근데 그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멀리 지나가는 사람을 한방에 맞힐 수 있는지 없는지에 돈내기를 한다. 그런 사람의 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연민이 생기더라.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얘기할 수 없으니 영화를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 되겠지만, 노 수사관의 마지막 선택은 또 다른 의미의 파시스트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일정 정도 동의하고, 어느 정도 그런 걸 의도했다. 노 수사관의 그런 모습이 가장 두드러져 보일 만한 순간, 원래는 음악도 다 빼려고 했다. 근데 주변에서 그럼 너무 하드하다고 말리더라. 난 지금도 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노 수사관의 진짜 모습이 더 차갑게 보일 수 있을 텐데, 그러길 원했단 말인가.
=그렇다.

-그럼 개인적으로 노 수사관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난 노 수사관이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도 그랬다, ‘이 사람 파시스트다. 그런데, 그렇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 노 수사관이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물끄러미 누군가를 바라보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파시스트인 것과 아닌 것 사이에 딱 걸려 있달까.

-영화가 지지하는 캐릭터가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것이 불편하다.
=역시 먹물은 안 돼. 어쩔 수 없어. (웃음) 나는 노 수사관이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욕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군대라는 조직의 파시즘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개인도 파시스트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조직을 어쩔 수 없다는 냉소적인 이야기 같다.
=노 수사관에게 처음 GP506에 들어가달라고 부탁 혹은 명령하는 박 대령(손병호)과 노 수사관은 서로 형식상 존대말과 반말을 할 뿐 사실은 친구다. 노 수사관이 하사였을 때 박 대령 역시 소위였고, 그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 그리고 노 수사관이 손에 피묻히면서 일을 처리해준 덕분에 박 대령은 승승장구하면서 신세를 졌던 거지. 그런 친구인데도 마누라 발인날 와서는 가라고 말하는 게 박 대령이다.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런 부탁을 기어이 하는 인간의 면면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노 수사관이 그런 박 대령의 부탁을 받고, ‘너도 정말 지독한 놈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나, 간다’ 하는 심정도 말이 된다.

-노 수사관의 마지막 결정도 그래서 이해하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건가.
=그렇다.

-허….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안 읽어서 그걸 이해 못하는 거다. (웃음)

-음. 장산곶매 얘기도 진짜 싫어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장산곶매 출신 영화인 중에서, 가장 장산곶매 출신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당신뿐인 것 같다. 이런 말이 기분 나쁜가.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일종의 친목회가 있다고 아는데, 거기서도 연락이 계속 오지만 여러 핑계로 안 나간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영화치고는 영….
=그런 건 있다. 난 제작비를 못 건지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제일 무섭다. 무지하게 노력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죄책감은 지녀야 한다. 근데 어떤 선 밑으로는 못 가겠다. 이렇게까지 영화를 해야 하나, 싶은 선까지 오면 때려치우고 동네에서 호프집이나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그 선이라는 게 장산곶매 때문인지, 80년대를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쨋거나 80년대를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영화나 관객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건데, 그게 당신에게 어떤 장점이자 답답한 굴레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컷이 폭파장면이었다. 해가 뜨는데 폭약은 장착이 안 돼 있고, 내일 찍네 마네 큰소리가 오다가다 결국 폭파를 시켰는데 이번엔 세트에 불이 붙은 거다. 근데 그 직후에는 포스터 촬영이 있으니, 다들 달려가서 불 끄고, 20분 동안 난리였다. 이후 10분 동안 넋이 나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난 우아하게 영화찍기는 글렀구나. 사실 한때는 그런 맘도 있었다. 품격있는 여자 PD와 우아한 영화 만들면서, 밤에는 와인도 마셔가면서 그러고 싶다는. (웃음) 근데 어쩔 수 있나. 끝까지 악다구니를 쓰면서 영화 찍을 운명인걸.

-충무로에서 공수창이랑 안 친하면 진짜 나쁜 놈, 이라는 말도 들었다. (웃음) 스스로도 ‘너무 맘이 약해서 문제’라고 느낀 적은 없었나.
=많이 느끼지. (웃음) 예전에 정지영 감독님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분은 부정하실지 몰라도 사실 난 그분을 스승이라고 생각하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외람된 말이지만 너무 답답했다. 사람이 저렇게 착해도 되나, 싶어서.

-자녀가 있나.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데, 아빠 영화에 관심이 굉장히 많다. 걔가 제일 싫어하는 감독이 최동훈이다. <알포인트> 만들었을 때, 내가 네 군데 영화제에서 신인감독 후보로 올랐는데, 모두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이가 휩쓸었다. 그때부터 우리 아들이 최동훈 감독이란 말만 들으면 인상을 쓴다더라. (웃음)

-차기작은 어떻게 되나.
=존 르 카르라고 <콘스탄트 가드너> 등의 영화의 원작자가 있다. 그의 출세작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인데 그걸 영화로 옮길 생각이다. 원래는 알렉 기네스가 주인공으로 80년대 초반 영국에서 5부작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더라. 인도차이나반도를 배경으로 하는 첩보드라마다. 내년 1월 정도 촬영이 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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