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4월5일(토) 밤 11시20분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공적인 명예를 누리지만, 사적으로는 더없이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불워스(워런 비티). 때마침 의료보험업계의 로비스트가 찾아오고 그는 범국민 의료보험안의 부결을 약속하는 대가로 자신의 딸에게 남길 어마어마한 생명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자신을 살해할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선거 캠페인 마지막 주, 이제 승패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진 불워스는 거침없이 진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흑인 교회에 가서는 민주당이 당신들을 버렸다고 말하고 마이크만 주어지면 민간 보험업계와 정치인들간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분방한 흑인 문화를 접하게 되고 사회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그 역시 흑인들의 리듬, 몸짓으로 선거 캠페인에 임한다. 가식적인 정치인의 얼굴을 버리고 사회 밑바닥을 대변하는 불워스의 돌출적이고 솔직한 태도는 오히려 그의 인기를 상승시키는데, 상황이 그렇게 변하자 생에 대한 그의 의지도 커져간다.
워런 비티의 연출작이기도 한 <불워스>는 정치인이 명예와 권력욕을 버리고 정치인이길 포기하는 막장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당에 상관없이 정치자금 앞에서라면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낯설지 않다. 영화는 국민의료보험 공약을 결국 지키지 않은 클린턴 정부와 어린 시절부터 총과 마약을 곁에 두고 사는 흑인 빈민가의 현실, 그들을 무조건 범법자 취급하는 백인사회 등을 환기시킨다. 백인 민주당 상원의원이 흑인 슬럼가에서 그들의 말투를 익히고 그들과 같은 복장을 한 채 ‘교양’있는 백인 선거판을 휘젓고 다니는 과정은 유머러스하고 통쾌하다. 하지만 기득권은 쉽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법. 하층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하려는 찰나 그가 맞이하게 되는 비극은 부패한 정치판의 굳건한 벽을 실감하게 만든다. <불워스>는 미국 민간의료보험제도를 비판하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 그리고 지금 미국을 휩쓸고 있는 오바마 열풍과 함께 읽어볼 수 있는 영화다. 물론 시종일관 흑인 문화와 백인 문화를 하층과 상층으로 대립시키거나, 흑인 슬럼가의 풍경을 범죄의 온상지로 또다시 스테레오타입화하는 영화의 부주의한 시선은 지적당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