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앉아도 되죠?” 야구공이 그려진 푸른형광색 점퍼, 넉넉한 쪽빛 청바지 아래 흰 운동화 끈을 풀려던 박신양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 물어본다. ‘당연히…’라는 동의가 오가고 그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의자 위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영화를 잘못 본 걸까?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스님편’과 ‘건달편’이 구분된 <달마야 놀자>에서 그는 분명, 스님이 아니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지적인 남자의 모습은 ‘시주’하려 해도 찾아볼 수 없는 깡패, 건들건들한 눈빛에 주먹이 앞서는 조직폭력배 보스 재규. 그러나 이 순간 “노력하고 원했던 것만큼 이룬 것 같다”고 말하는 박신양의 눈은 부처의 그것만큼이나 평온하다. “영화보셨어요? 보고 뭘 느끼셨습니까?” “아뇨, 분석하지 마시구요. 가슴으로 느낀 걸 말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금 당황스런 경험이지만, 박신양은 질문을 기다리지 않는다. 잠시 그가 삭발을 했었나, 양복을 입었었나를 혼동했던 것만큼이나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역할이 혼란에 빠진다. “주지스님이 밤새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그 새벽에 돌아가신 장면이 남는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화해와 용서’를 느끼신 거군요. 정말 다행입니다”한다. 합장을 올리듯 진지하게, 그리고 느리게.
박신양은 <달마야 놀자> 시사회장에 특별한 손님을 모셨다. 동국대 연영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들과 짐을 싸들고 들어간 산사에서 만난 스님. “특별한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절에서 3개월 정도 살았어요. 그땐 정말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님들하고 장난도 치고, 몸싸움도 하고 그랬죠. 영화 보신 스님에게 ‘너무 황당한 설정인가요?’했더니 ‘너도 그랬잖아, 너 원래 그런 놈이잖아’하시더라구요. 불가능한 상황설정이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이걸 판타스틱 리얼리즘이다, 들뜨지 않은 영화라고 봤어요. 단순히 웃기려는 가벼운 영화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에게 <달마야 놀자>의 시나리오는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맑은 물처럼 정확히 보였다. 쉽고 명쾌했고 그래서 선택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저는 쉬운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평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걸 좋아하죠”, “채플린도 당대에는 폄하되고 인정받지 못했어요, 너무 쉬운 걸 한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진리는 쉽습니다”.
“아빠, 누가 오나 잘 보세요.” 68년생인 박신양은 이제 ‘쉬’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양복재킷으로 가려주는 다정한 아빠 역할도 제법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달콤한 연인의 모습이 서려 있다. 사그라드는 생명을 뒤로 하고 아내를 위한 마지막 편지를 준비하는 검은 낯빛의 남편이나, 비둘기 다리에 연서를 날려보내는 남자, 살인죄를 언도받은 사형수와 시한부 사랑에 빠지는 변호사 같은 역할은 어쩌면 우리가 처음 그를 스크린의 연인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모습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박신양은 이런 부드러운 남자들 사이사이 균형감 있게 정반대의 모습을 박아넣었다. 그래선지 그에게 ‘건달’은 낯선 직업군(?)이 아니다. “전세계 영화를 통틀어 마피아나 조폭, 야쿠자의 등장은 의외로 보편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여러 군상이 있는 거죠.” 하여 건달과 양아치의 구분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약속>의 공상두도,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킬리만자로>의 해식이자 해철도 모두 통틀어 ‘건달’일 테지만, 박신양이 말하는 <달마야 놀자>의 재규는 확연히 다르다. 지적일 필요도, 멜로의 부담도, 정체성의 고민도 필요없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투박한 우정이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는 원석 같은 사람이어야 했다고. 단순한 듯하지만 그걸 표현하기 위해선 정말 쉽지 않은 고민을 거쳤노라고.
한 차례 사진촬영이 끝나고 의자에 풀썩 앉는 박신양은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듯이 조용히 담배만 뻑뻑 피우곤 했다. “제가 뭘 하든 이렇게 소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바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들기 때문에 여기저기 얼굴 비추는 일을 못해요. 그래서 욕을 많이 듣죠. 그런데 정말 혼신을 다바쳐 인터뷰를 하고 돌아섰는데 결국 ‘건방진…’, ‘힘들어간…’ 뭐,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되면 갑자기 맥이 쫙 풀려요. 그 긴 시간이 서로간의 완벽한 오해를 쌓기 위해 허비된 시간이었다니, 허무해지는 거죠. 많지는 않지만 몇번 겪었던 그런 기억들이 저에겐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유난히 오랫동안 단어를 고르고 혹은 정정하고, 질문에 오래 생각하는 그의 버릇은, 강박적으로 때론 현학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아픈기억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통은 타이밍이다. 이제 <달마야 놀자>를 거치며, 남들이 말하는, 눈과 어깨에 힘을 뺀 박신양. 오래 전부터 오해없는 대화를 바라던 그에게나, 뒤늦게 진심을 알아버린 우리에게나, 이제 ‘진짜 소통’의 때가 찾아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