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밥상>은 신인 노경태 감독이 연출한 독립장편영화다. 짐작건대 화성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화성이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은 어쨌든 더이상 지구(라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살 여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잃은 중년의 남자, 무력과 실의에 빠져사는 것 같은 젊은 남자, 장터에 무언가를 내다팔며 근근이 삶을 견디는 시골의 할머니, 군에서 아들을 잃고 무속에 기대어 사는 중년의 여자,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덩치 큰 젊은 여자.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가난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실은 이 인물들이 어떤 사회적 소집단으로 서로 얽혀 있는지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영화는 밝히고 있지만 그걸 밝히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어법상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중요했다면 좀더 긴밀하게 다뤄야 했으며, 밝힌다고 해서 영화의 사유가 더 진전되는 지점이 없다. 그들이 외롭고 헐벗어서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강조점이다.
영화 전체를 따져서 빈번히 등장하는 장면의 특징이란 ‘화면 안에 홀로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허상의 존재처럼 의지를 잃고 겨우 무언가를 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홀로 버티는 그들의 상황을 주목한다.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사회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슬프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혹은 “사회가 더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지구를 떠나서라도 좀더 인간적인 삶을 찾고 싶어하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거다”라고 감독은 말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 내지는 뜨고 싶다. <마지막 밥상>은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상징의 연쇄로 그 의지를 표현한다.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고 로카르노, 로테르담 등 실험성을 높이 사는 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해석의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도식적인 상징의 제스처(일례로 옆면이었다가 정면으로 자세를 바꾸는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가 상당수라는 건 확실히 <마지막 밥상>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