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만약 너의 자식이 나중에 “사람들이 그러는데 엄마는 걸레라던데 정말이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서 아이가 굉장히 삐뚤어진다거나 하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글쎄 걔 인생은 걔 인생이지라고 말하는 게 쿨한 말이겠지만 정작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냐 아냐 엄마는 걸레가 아니야, 라고 이야기할까 생각해봤지만 “사람들이 엄마가 걸레라던데!”라고 하면 뭐 어쩔 수 있나. 그래서 내가 걸레냐 하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도대체 걸레의 정의가 무엇인가? 복수 이상의 남자와 무분별한 성관계를 갖는 여자? 태어나서 결혼할 단 1명 이상과 다회 성관계를 가진 여자? 사귀지 않더라도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 글쎄, 그중에 내가 어디 해당할지 몰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든 누구도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누구 남편하고 잔 적은 없고 애인있는 남자하고 잔 적도 없고 누굴 강간한 적도 없고, 병 옮긴 적도 없다. 결국 가상의 아들 혹은 딸에게 별로 대답해줄 말은 없다. 나는 내가 믿는 대로, 거칠게 살았어, 라고밖에. 물론 그것들을 후회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다만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여자는 없단다. 더 변명하고 싶진 않아.
그러나 나의 자식들이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본다면 나의 일생 따위는 생쥐처럼 얌전하고도 재미없어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 자주 갈아치운 마츠코는 걸레인가? 아무것도 아닌 인생인, 혐오스러운 여자의 혐오스러운 인생인가? 그녀를 걸레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마츠코의 거친 일생은 오직 사랑을 위해, 사랑에 의해, 사랑만으로 지배된다. 정말 덜 떨어진 남자들한테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고 얻어터지면서까지 그래도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 나도 남자로부터 모욕당한 적 있고 등처먹힌 적 있고 이용당한 적 있고 얻어맞은 적 있지만 나는, 그래도 사랑보다, 남자보다, 내가 더 훨씬 소중했다. 그리하여 모욕을 더한 모욕으로 되갚았으며 이용을 증오로 되갚았고 주먹은 벽돌로 찍어 되갚았다. 언제나 사랑받고 싶고 용서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열애했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헤어졌다.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이 많았는지 멍청한 사람이 많았는지 이 행각에 협조들을 해줘서 어느새 나는 남자 잘 갈아치우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 그게 걸레던가.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 그러나 마츠코는 주먹에는 울음으로 참고, 모욕에는 침묵으로 참으며, 착취에는 순종으로 참는다. 그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내 친구면 죽어도 뜯어말리겠지만 그래도 보고 있으면 죽어도 눈물이 나는 건, 사실 마츠코가 계속해서 용서를 빌고 있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나 끊임없이 용서받고 싶어하는 여자. “태어나도… 괜찮아요? 살아 있어도… 괜찮아요? 여기 있어도… 괜찮아요?”
보통 여자란 남자에게 그런 걸 묻게 마련이다. 나를 사랑해줄 거야…? 여기 있어도 괜찮아…? 살아 있어도, 괜찮아? 나를 낳아주지도 않은 남자에게 그토록 용서받기를 원하고, 살아 있어도 된다고 승인받고 싶어하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살고 싶어하는, 병신 같다는 거 알면서도 묻게 된다. 현실이 그렇듯이 물론 잘 용서해주지 않는다, 세상도, 남자도… 안 돼, 더 달려, 더 힘내, 나한테 이걸 내놔, 뭘 줘, 이거 아니야, 저걸 줘…. 시대는 더 그렇다. 남자건 여자건 내가 지금 가진 스펙으로, 내가 가진 조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상품을 고르려고 하는 시대. 나 가진 것 최대한 활용해서 그나마 제일 근사한 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략적으로 조건검색 정렬을 행하는 게 손해 안 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시대에 바보 병신 반푼이처럼 무조건 사랑을 향해 달리는 서글프고 사랑스러운 바보, 이 후진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 여자가 우리 안의 바보 멍청이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을 바라다 허망하게 죽어간 여자, 사랑이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던 그런 여자. 받을 걸 생각 않고 먼저 사랑한 여자, 보답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준 여자, 비웃음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한 여자, 이 후진 여자, 바보 같은 여자. 이 바보 같은 년아, 하고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해 미치면서도 끝내 눈물 한 방울 떨구고 만 것은 이 바보 같은 년아, 하는 말이 실은 나에게 중얼거린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촌스럽고 후진 글들이나마 늘 서투르고 뜨거운 마음으로 썼고 독자 여러분과 만나 뵙는 행운을 갖게 되어 행복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