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슈퍼볼 개막식에 참석한 것 같다.” 존 파브로 감독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4월1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에 첫인사를 건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현대적인 도시가 인상적”이라는 짧은 소감을, 존 파브로 감독은 <아이언맨>이 4월30일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을 들어 “한국이 할리우드에서 중요한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비보이 공연, 레이저 쇼 등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기자회견이 막을 내린 뒤, 직접 감독과 배우를 만날 수 있는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국내 관객에겐 시트콤 <프렌즈>를 통해서도 익숙한 배우이자 <엘프>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쳐>의 연출자인 존 파브로 감독, 약물중독으로 탈 많던 과거를 청산하고 마흔넷의 나이에 돌연 슈퍼히어로로 변신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만나 <아이언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블록버스터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난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웃음) 나는 뜻밖의 것을 좋아하고, 가능하면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
-스튜디오에서 당신을 1순위로 꼽지 않았고, <채플린> 이후 처음으로 스크린테스트를 받은 것으로 안다. 어떻게 당신이 슈퍼히어로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신시켰나.
=<채플린> 때처럼 내가 나서서 역할을 따내야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 스크린테스트의 경우 3개의 신을 연기한 다음 결정이 내려지는데, 나는 첫신의 첫 테이크를 찍고 나서 바로 믿음을 얻었다. 카지노 밖에서 <베니티 페어>의 여기자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슈퍼히어로가 되기 전과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나뉘는데, 연기에서는 어떤 차이를 뒀나.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음양 표시처럼 흰색과 검정색이 단지 자리를 바꿀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토니 스타크가 변화했다고 해서, 갑자기 유머감각을 모두 상실하고 진지하게 ‘지구를 구할 테다!’라고 외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건 연기하기에도 창피할뿐더러 모든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비웃을 테니까. 토니는 여전히 똑같은 영혼을 갖고 있다. 단지 그의 심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중년의 나이에 슈퍼히어로를 연기한다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
=한창때는 6주 정도 운동해서 몸을 만들면 6개월은 유지가 가능했다. 이제는 6분을 유지하기 위해 6개월이 걸린다. (웃음)
-토니 스타크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변화해가는 과정은 당신 자신의 삶과도 겹쳐 보인다.
=토니 스타크만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딱 맞는 슈퍼히어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 바로바로 이야기들이 올라오지 않나. 모두가 키보드 앞에 달라붙어서 뉴스가 뜰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고. 내가 캐스팅됐을 때도 좋지 않은 반응들이 있었다. 사실 그런 삶을 연기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그런 삶을 실제로 산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뭐 그런 말도 있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슈퍼히어로가 지금의 날 닮았다는 사실이 재밌을 따름이다.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나.
=푸~. 아니다. 나는 온갖 귀여운 소녀들에게 집착했다. (웃음)
-이미 <아이언맨> 3편까지 출연하기로 결정됐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창의적인 부분에 대해 합의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내게 아이언맨의 슈트가 있다면 그걸 입고 날아서 마블 본사로 갈 것 같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앞으로 이 작품을 안일하게 만들 작정을 한다면 몽땅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테다. (웃음) 대부분의 후속편들은 규모는 커지지만 동시에 멍청해지지 않나. 하지만 <아이언맨>만큼은 앞으로 내 출연 분량이 줄어드는 한이 있어도, 기술과 이야기 측면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처럼 거대 예산의 여름용 블록버스터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조니 뎁에게 그러했듯이 <아이언맨>이 커리어에 전환점이 될 거라 보나.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럴 거라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정말 끝내줄 거다! 모든 배우들은 이마에 유통기한이 찍혀 있지 않나. 특정한 시기나 나이를 지나면 버티기 힘들어지는데, 끝까지 살아남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자신은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지금은 어떤가.
=명백하게도, <아이언맨>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건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꽤 거칠었던 내 과거, 또 대중적인 이미지와 달리 나는 가정적인 남자(domestic man)다. 파티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외출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가정이다. 이게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알지만 정말 사실이다.
-토니 스타크는 기자들 앞에서 쇼맨십을 발휘하는 남자인데, 이렇게 세계를 돌며 기자회견을 하는 기분이 어떤가.
=지금 난 여기 앉아서 당신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통역을 하는 동안 내 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순간 생각한다. 환상적이라고. 생애처음으로 한국에 오고, 점심으로 갈비를 먹고, 이처럼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대화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웃음)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의 조그만 안전지대 밖으로 나온다는 건 계몽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이제 길에서 아이들이 당신을 보면 ‘아이언맨!’이라고 부를 텐데 어떨 것 같나.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크리스마스 때 우리집 트리 꼭대기에 아이언맨 마스크를 달아놨었다. 이 모든 게 사실 별것 아니라는 걸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이 잘된 날이면 우쭐대며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뭐라 했는지 아나? “아이언맨, 쓰레기 좀 내다버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