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그레고리 호블릿] “난 30년간 다이앤 레인의 광팬이다”
2008-04-25
글 : 김도훈
스릴러 <킬위드미>의 감독 그레고리 호블릿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의 장기는 두 가지다. 첫째, 중급 이상의 건실한 스릴러 연출하기. 출세작 <프라이멀 피어>부터 <프리퀀시> <다크엔젤> <하트의 전쟁>을 거쳐 <킬위드미>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릴러 장르에서 꾸준히 안타 이상의 타율을 기록해왔다. 두 번째 장기. 그는 새로운 젊은 배우를 발굴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콜린 패럴, 라이언 고슬링, 짐 카비젤, 에드워드 노튼이 모두 호블릿의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됐다. 인터넷 살인마를 다루는 <킬위드미> 역시 눈여겨볼 신인이 등장하는 스릴러영화라는 점에서 호블릿의 전작들과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와 서면인터뷰를 했다.

-대본의 어떤 요소에 끌려서 연출하게 됐나.
=‘디즈니’답다거나 풋볼 결승전 따위를 다루는 착한 영화에는 모든 게 평화롭게 끝나는 해피엔딩이 필요하다. 케빈 코스트너의 영화 <꿈의 구장>에서 내레이터가 말하지 않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만 나를 이 영화로 이끈 것은, 인터넷의 익명성 아래 악한 본능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었다. 인터넷 세계에 그토록 차가운 현실이 존재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 시대에 사자에게 잡아먹혔던 기독교인들이나, 혁명기나 공포정치 시대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인들, 또 단지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흑인들을 사형시켰던 미국 남부의 어두운 역사처럼 말이다. 세 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구경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장면을 인터넷에서 생중계한다면 굉장히 많은 접속자들이 몰릴 테니까.

-다이앤 레인을 주연으로 선택한 이유는.
=아주 쉬운 질문이다. 다이앤 레인은 스크린 위에서 정말 그 인물처럼 보이는 능력을 지녔다. 또한 관객에게 진짜 FBI 수사관이자 한 아이의 엄마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그녀 정도의 나이여야 했다. 게다가 난 30년 전 <리틀 로맨스>를 봤을 때부터 그녀의 광팬이었다. 당시 그녀는 12살이었다.

-<킬위드미>에는 두 가지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하나는 <양들의 침묵>류의 전통적인 스릴러, 다른 하나는 <쏘우>나 <호스텔> 같은 ‘고문 포르노’(Torture Porn)다.
=난 장르의 혼합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경찰물과 초자연적 스릴러를 엮은 <다크엔젤>, 소방관 이야기와 시간여행을 합친 <프리퀀시>, 전쟁영화와 법정극을 한께 다룬 <하트의 전쟁>처럼 말이다. 많은 미국 평론가들이 <킬위드미>를 보고 <양들의 침묵>과 <쎄븐>을 언급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른바 ‘고문 포르노’라고 명명되는 영화들를 연상했다고 한다. 후자와 같은 평을 듣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린 중심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딱 필요한 만큼의 폭력만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에겐 그 노력이 실패로 비친 모양이다. 스스로 최고작으로 여기는 <프라이멀 피어>나 <프랙쳐>는 더 전통적이고 단순한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이번에 교훈을 얻었다고 봐야지.

-당신은 스릴러영화만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그토록 한 장르를 파고드는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스릴러만 만들려 한 적은 없었기에 스스로에게도 궁금한 질문이다. <프라이멀 피어>의 리처드 기어에서부터 <프랙쳐>의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역할까지, 나의 관심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악에 맞서며 변해가는 그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말이다. 난 확실히 악당과 그들에 대한 부수적인 이야기보다 주요 인물들의 감정과 정신적인 여정에 관심이 더 많다.

-이 영화는 인터넷 세계의 악마적인 단면을 강조한다. 인터넷 공간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른 매체들처럼 검열되어야만 하는 걸까.
=총이나 자동차가 잠재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듯이 인터넷도 다루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좋은 곳에 쓰일 수도 있고 악하게 쓰일 수도 있다. 엄청난 수의 컴퓨터 이용자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지금의 현실을 볼 때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웹상의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문제는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각국이 운영하는 사이버 수사대들은 범죄자들을 앞지르기는커녕 그들을 비슷하게 따라잡기도 버거워하고 있다. <킬위드미>가 경고하는 것처럼 우린 작은 전투에서는 이겨왔을지 모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젊고 재능있는 배우를 알아보고 데뷔시키는 특별한 눈이 있는 것 같다.
=칭찬 고맙다. 특별히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프로젝트마다 수많은 배우들을 내게 소개시켜 준 훌륭한 캐스팅 디렉터 덕분이다. 나는 오디션에 참가한 재능있는 배우들을 보고 어떤 역할에 어떤 배우가 적합할지를 본능에 따라 판단하기만 하면 됐다. 물론 운도 많이 따라줬고.

사진제공 쌈지 아이비젼영상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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