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바버라 해머] “잊혀지는 여성의 역사를 찾아 기록해야 한다”
2008-04-25
글 : 박혜명
글 : 이혜정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미국 여성감독 바버라 해머

세계 퀴어시네마의 선구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여성감독 바버라 해머가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았다.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제를 방문한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제주도 해녀들과의 닷새를 담은 30분짜리 다큐 <제주도 해녀>를 공개했다. 포스트모던 예술에 깊이 영향을 받아 매우 실험적 성향을 띠는 전작들에 비하면 <제주도 해녀>는 다소곳하고 전통적인 형식의 다큐다. 시작은 여행책자였다. 7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하며 샀던 여행책자에서 해녀에 대한 짧은 단락을 읽고 이를 잊지 못한 그는 결국 제주도를 찾았다. 또래의 서양 할머니와 한국의 제주도 할머니들이 함께한 5일. <제주도 해녀>는 우리에게도 생소한 그녀들의 비릿한 바다 노래로 가득하다.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노란 오징어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갯벌마다 스며든 아픈 역사의 기억. 짧은 은발을 한 색목인 할머니의 카메라가 낯설었는지 <제주도 해녀> 속 해녀 할머니들이 감독을 향해 생소한 방언으로 투박하게 내지른다. “할배야! 할배야!”

-제주도 해녀 할머니들의 첫인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러게. 대체 왜 나보고 할아버지라고 한 건지 모르겠다. (웃음)

-본인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없었나.
=나에 대해 묻지 않아서 내 얘기를 해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말수가 적었다.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할 때도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전작들과 달리 형식이 얌전하다.
=찍고자 하는 대상과 걸맞은 형식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 함께 지내면서 이 다큐는 지금 나온 것처럼 단순하게 가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약 35년간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영역에서 페미니스트 감독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그동안 페미니즘의 이슈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많은 게 바뀌었다. 가령 예전에는 레즈비언 및 게이 인권에 대한 이야기조차 낯설었다면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대신 세계 각곳에 아직도 여성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또 자기가 속한 사회의 주류에서 잊혀지고 있는 여성의 역사들을 계속 찾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해녀>도 그 일종일 것이다. 일제시대와 6·25에 얽힌 제주도의 여성사와 그들의 현재 삶을 남겨야 한다. 여건상 이렇게 짧게 찍고 끝냈지만 난 외국인이니 한국인만큼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여성감독이 한다면 훨씬 의미있고 훌륭한 기록이 될 것이다.

-최근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말은 은유가 아니다(Horse is Not a Metaphor)>란 제목의 영화를 찍고 있다. 제목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말이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웃음) 몇년 전 나는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나는 내년 5월이면 일흔이 된다. 두 번째 삶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 항암치료를 받고 병원에 누워 있던 내 모습들을 다 담았다. 주변 사람들은 마음 아파했지만 나는 괜찮다. (웃음)

-앞으로 남은 인생 단 한편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무엇에 관해 찍고 싶은가.
=찍지 않아도 된다면 찍지 않고 싶다. 영화 찍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겐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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