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왕국이 개점을 앞두고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약 4개월이다. 개점 준비가 한창인 중국은 지금 날이 갈수록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선진문화를 주입하고자 정부가 강제하는 각종 규제들과 티베트 탄압 등 중국 내 인권문제를 향한 전세계적인 비난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조화의 여정이라 이름붙인 성화 봉송길은 각국에서 벌어진 시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하겠다는 전세계 총리들의 뜻이 연이어 통보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4월15일 영화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이하 <포비든 킹덤>)의 주연배우인 성룡과 이연걸의 기자간담회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아마 중국으로서는 <포비든 킹덤>이 달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림픽을 앞둔 지금, 중국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높일 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포비든 킹덤>은 보스턴의 한 백인 소년이 어느 날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고대 중국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쿵후를 배우며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쿵후에 빠진 한 백인의 ‘동유기’쯤 될 것이다. 할리우드가 만들어 전세계에서 개봉시키는 영화인 만큼 올림픽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베이징올림픽 홍보의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게다가 주연이 성룡과 이연걸이다. 성룡은 최근 중국의 <봉황위성TV>가 선정한 ‘2007년 세계화인 영향력 조사에서 영향력이 큰 중국인 11인’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지난 4월12일에는 <CNN>에 출연해 “최근 중국에서 인권문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인구가 3억명이 아니라 14억명에 이르기 때문에 자연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반(反)중국’ 시위로 멍든 중국 정부의 자존심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 성룡과 이연걸이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는 이벤트다. 간담회 장소인 베이징호텔에 나타난 두 배우 또한 중국인들이 그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동양의 기자들에게 줄곧 “아시아의 배우로서 아시아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것과 “아시아를 묶은 하나의 영화시장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포비든 킹덤>이 성공할 경우, 할리우드는 앞으로도 동양 문화에서 소재를 찾게 될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성룡의 말이나, “<포비든 킹덤>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그때의 공간은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이연걸의 이야기는 같은 동양인으로서 영화의 흥행을 도와달라는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동양의 대표배우가 가진 의무감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2008 베이징올림픽 공식추천영화’라는 엠블렘을 <포비든 킹덤>의 타이틀 시퀀스 앞에 붙여도 좋을 듯 싶다. 이날의 기자간담회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영화 프로모션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였다. 물론 성룡과 이연걸을 추억하는 한국의 기자들에게는 그들이 영화 속에서 벌인 대결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 <포비든 킹덤>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드디어 성룡과 이연걸이 한 영화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성사됐나.
성룡=둘이 알고 지낸 지는 2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보통 친구였는데 점차 아주 좋은 친구로 변해왔다. (웃음) 한때 같이 영화를 찍으려고 구상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소속사에서 라이선스 경쟁을 하면서 무산됐다. 배우로서 우리 둘은 그저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 뒤 둘 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또다시 만나게 됐다. 이제는 정말 같이 해야겠더라. 그런데 어느 날 <포비든 킹덤>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감독이 <라이온 킹>을 연출한 사람인데다, 이연걸이 나온다는 거다. 그래서 이연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너 정말 나오는 거야?” 그랬더니 사실이라더라. 그래서 <포비든 킹덤>에 출연했다. 이제 내 나이가 70살이 다 돼가는데, 더 늙으면 어떻게 액션을 하겠나. (웃음)
-<포비든 킹덤> 시나리오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연걸=처음에 받았던 시나리오는 완전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동양이 묘사돼 있었다. 중국 역사도 여러 시대의 것들이 혼합돼 있더라. 그래서 제작자하고 시나리오작가를 불렀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판타지라도 합리적으로 보이는 설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인공 소년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했다. 꿈이니까 무술도 하고,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이건 매우 중요하다. <포비든 킹덤>이 성공할 경우,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아시아의 더 많은 공간이 허락될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웃음)
-공교롭게도 지금 중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포비든 킹덤>이 베이징올림픽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성룡=그런 시점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동양적인 소재라도 서양 사람들이 찍었을 때 전세계가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의아해했던 것은 미국이 아시아 문화를 다루면 전세계인들이 이해하는데, 왜 아시아에서 아시아 문화를 다룰 경우에는 외면받는가 하는 문제였다. 중국의 역사는 칭기즈칸으로 끝난다. 아마 그들에게 한국의 <대장금>을 보여준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킹 아더> 같은 영화도 이해하지 않나. 나는 할리우드가 우리 문화를 대신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포비든 킹덤>을 만들면서도 이렇게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했다.
-두 사람의 대결장면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술 고수끼리의 액션연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성룡=원화평 감독이 스턴트맨들에게 연기를 시켜 액션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이제 연습을 해보라고 하더라. 나는 이연걸에게 “우리 (연습없이)그냥 해볼까” 그랬는데, 이연걸이 너무 쉽게 그러자고 하더라. 사실 나는 그냥 해본 소리인데, 스탭들이 다들 환호성을 지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웃음) 그러고 나서 바로 싸우기 시작했다. 계속 싸우면서 속도가 붙으니까, 나중에는 감독이 컷을 부른 뒤에도 계속 싸우고 있더라.
이연걸=마치 탁구를 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액션을 연기하면서 내 속도를 그대로 받는 상대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마다 상대가 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속도를 내곤 했다. 하지만 형님과의 액션연기는 올림픽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큼 빨랐다. 서브를 빨리 주면 그만큼 빨리 넘기는 것처럼, 서로 공을 놓치지 않으니 자연히 더 빨라질 수밖에 없더라. (웃음)
성룡=이연걸이 자신의 액션 실력을 보여주려고 연습도 안 하고 찍자고 한 것 같더라. (웃음) 그런데 그때 그 장면은 쓰지 못했다. 촬영감독이 우리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찍지 못했다며 다시 하자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던 순간은 없었나.
성룡=나는 언제나 내가 출연하는 영화의 무술감독이었다. 하지만 이연걸이 상대역이라고 해서 이번에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연걸 역시 다른 영화에는 직접 디자인을 많이 하면서 이번에는 말을 아끼더라. 그래서 차라리 우리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액션을 맡기자고 했다. 그렇게 합류한 게 원화평 감독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액션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원화평은 매우 부담스러웠다고 하더라. 나나 이연걸 모두 잘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신경써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액션을 연출해야 했으니까.
이연걸=한국 사람들이니 음양의 조화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형님과 나를 보면 형님이 양이고 내가 음이다. 현장에서 보면 형님은 항상 밝고 소란스럽다. (웃음) 나는 원래는 얌전한데, 같이 있으니까 밝아지는 것 같다. 의견 충돌은 전혀 없었다.
성룡=아마 20년 전이었다면 서로 경쟁심을 느끼곤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웃음)
-두 배우 모두 영화에서 1인2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성룡이 연기한 전당포 할아버지와 이연걸의 손오공은 모두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성룡=정말 새로운 도전이었다. 루얀보다 할아버지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역할이었지만 더 재밌더라.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가 연기하는 모습을 나름 따라해보려 했다.
이연걸=형님이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는 영화의 제목이 <손오공>이었다. 그때는 손오공과 그의 분신인 란이 등장인물이었고 나 혼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영화가 잘되면 속편을 찍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로서도 란보다는 손오공을 연기하는 게 즐겁더라.
성룡=정말 못됐다. 나를 출연시키려고 손오공과 란이 아니라 또 다른 배역을 만들어버리다니. (웃음)
이연걸=그때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손오공을 연기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웃긴 표정이 힘든 게 아니라 분장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형님께 드릴 걸 그랬다. (웃음)
-성룡과 이연걸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란 문제는 당신들의 팬이면 누구나 상상해보는 것이다.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성룡=작가한테 알아서 쓰라고 하겠다. 이왕이면 이연걸이 이기는 걸로 썼으면 좋겠다. (웃음)
이연걸=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많은 부분이 열려 있고, 그만큼 관객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연걸은 <무인 곽원갑> 당시 다시는 무술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무술을 보여준다.
이연걸=그 말의 의미는 배우가 아닌 무술인으로서의 정신과 내면을 보여주는 게 끝났다는 뜻이었다. <포비든 킹덤>은 단지 몸을 쓰는 영화일 뿐이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아니다. 아직도 나에게 영화는 즐거운 일이다. 이제 무술인으로서의 나는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
성룡=이연걸은 이제 은퇴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내 세상이 온다. (웃음)
이연걸=맞다. 나의 차세대 계승자는 형님이다. (좌중 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