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이란 이름의 소년이 가상 게임의 무대 19세기 런던에 가 영국 최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만난다. 영화 안에 게임이 있고 그 안에 코난 도일의 소설과 실화가 엉켜 있다.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은 아오야마 고쇼의 인기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코난 도일의 작품과 19세기 실화를 섞어 꾸며 쓴 작품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추리하고 악당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별로 새롭지 않지만 실화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픽션을 만들어낸 솜씨가 흥미롭다. 어디까지가 허구고, 어디까지가 실재일까.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에서 궁금한 것 몇 가지.
1. 원작_김전일 이후 최고의 추리만화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의 원작은 1994년 <주간소년선데이>에 5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아오야마 고쇼의 만화 <명탐정 코난>이다. 아오야마 고쇼는 1986년 <잠깐 기다려>로 소학관신인코믹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만화가. 추리물은 물론 <YAIBA> 같은 격투만화, <잠깐 기다려>와 같은 SF만화 등 전형적인 소년만화를 그리는 작가다. 그중에서도 <명탐정 코난>은 1994년부터 2008년인 지금까지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인기 작품. <주간소년선데이> 역사상 최장기간 연재작이다. 큰 줄거리는 약을 잘못 먹어 고등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된 주인공 코난이 친구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해간다는 이야기로 완결성이 강한 에피소드가 한회를 구성한다. 이 작품은 1992년부터 <주간소년매거진>에 연재된 <김전일 소년 사건부>, <주간소년점프>에 연재된 <심리수사관 쿠사나기아우기> 등과 함께 당시 추리만화 붐을 이끌었는데, 대다수의 작품들이 선두자적 역할을 한 <김전일 소년 사건부>의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을 면치 못한 것에 반해 <명탐정 코난>은 코난 도일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 설정 등으로 인기를 누렸다.
2. 애니메이션, TV드라마, 영화_끊이지 않는 이야기
<명탐정 코난>은 1990년대 인기를 누렸던 추리만화 중에서 가장 빨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96년 1월8일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 시작해 10년 넘게 월요일 오후 7시 시간대를 지켜왔으며, 시청률도 항상 10% 이상을 유지했다. 애니메이션의 인기로 스핀오프 격의 프로그램 <네프리그>도 제작돼 방영됐다. 초기엔 셀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지만 기술의 발달로 2002년 7월1일부턴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었고, 2006년 10월23일부터는 하이비전 포맷으로 제작됐다. <명탐정 코난>은 TV애니메이션 외에도 2006년 10월 TV드라마인 <명탐정 코난 10주년 드라마 스페셜 에도가와에게 도전장>으로 만들어졌으며, 1997년부터는 극장판으로도 제작되기 시작해 매해 4월이면 <명탐정 코난>이 일본 극장가에 걸리고 있다.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은 2002년 4월20일에 일본 개봉한 <명탐정 코난> 극장판 6번째 작품. 34억엔의 흥행수익을 거둬들였다.
3. 미스터리 작가_노자와 히사시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 크레딧에는 눈에 띄는 사람이 한명 있다. 각본을 쓴 노자와 히사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남자 흉포하다>의 각본으로 유명한 그는 <잠자는 숲> <얼음의 세계> 등 TV드라마로 명성을 얻은 뒤 미스터리 소설, 영화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노지마 신지와 함께 1990년대 일본 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꼽히며, 1997년에는 소설 <파선의 마리스>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선 드라마 <연애시대>의 동명 원작 소설로 이름을 알려 연애 작가의 이미지가 크지만 노자와 히사시의 작품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느낌이 더 강하다. 기무라 다쿠야가 주연해 인기를 끌었던 <잠자는 숲>도 수많은 복선이 깔린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였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얼음의 세계>도 범죄를 다룬 수사물이다. 보는 이의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는 노자와 히사시의 트레이드 마크. 하지만 그는 2004년 44살의 나이로 자살해 세상을 떠났다.
4. 실화와 픽션 사이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에는 셜록 홈스와 잭 더 리퍼의 관계가 하나의 대결구도로 제시된다. 주인공 코난은 가상 게임을 통해 1888년 9월30일의 런던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셜록 홈스의 집을 방문하고 잭 더 리퍼의 살인을 목격한다. 셜록 홈스는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탐정 캐릭터고, 잭 더 리퍼는 5명의 창부를 죽이며 19세기 런던을 암흑으로 몰아넣은 실제 살인마다. 이 둘은 사실 별 관계가 없지만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은 19세기 런던이란 키워드로 연상되는 두 인물을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넣었다. 두 인물이 가진 배경이나 실제 사건을 참조해 새로 구성해 넣은 에피소드가 재밌다. 특히 극중에서 두 번째로 죽은 피해자 허니 챨스턴은 잭 더 리퍼가 실제로 죽인 두 번째 여자 아니 채프만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었고, 허니 챨스턴은 아니 채프만과 마찬가지로 한 아들의 엄마다. 극중에서 허드슨 부인이 말하는 베이커가 이레규라즈가 사건은 1988년 9월에 일어난 ‘4개의 서명’ 사건을 가리킨다. 셜록 홈스가 사랑한 여인 아이린 애들러, 잭 더 리퍼를 키운 모리아티 등은 코난 도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