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칸영화제에서 <사우스랜드 테일>은 <브라운 버니> 이후 최악의 폭탄이라는 수모와 야유를 받았다. 성공적인 컬트영화로 자리매김한 <도니 다코>의 리처드 켈리가 만든 신작이고, ‘더 록’이란 이름으로 친숙한 드웨인 존슨, 사라 미셸 겔러, 숀 윌리엄 스콧, 맨디 무어, 케빈 스미스와 미란다 리처드슨, 크리스토퍼 램버트 등 주목할 만한 신구 배우들이 여럿 출연했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라는 깜짝 카드를 숨겨둔데다 모비가 음악을 담당했으니 환영받을 조건은 충분했다. 그러나 로저 에버트의 평- ‘켈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나키스트다. 문제는 그가 자기 영화에 폭탄을 던졌다는 거다’- 처럼 평단은 영화를 내동댕이쳤다. 급기야 15분을 편집해 개봉했으나 관객의 외면도 피할 순 없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2005년 미국 독립기념일, 텍사스주의 애빌린이 핵 공격을 받는다. 미국이 이라크, 이란, 시리아, 북한을 침공하면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가운데, 2008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사위가 납치된다. 얼마 뒤 기억상실증에 걸려 나타난 그가 포르노 스타와 쓴 각본이 기이하게도 현실로 이어진다. <사우스랜드 테일>을 본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인물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그들 간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무작위로 삐져나오는 이야기의 가지는 유기적인 연결과 정돈된 내러티브와 거리가 멀다. 그 결과, 145분이 지난 뒤에도 영화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해서 모두 욕을 듣진 않는 법. 관객의 분노는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켈리는 영화를 뉴미디어인 양 다룬다. 블록으로 구분지어진 화면 안에 사건, 인물, 광고판, 계기판 등이 제각각 제시되는가 하면, 애니메이션,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니터 영상, 뮤직비디오, 정보창이 수시로 삽입된다. 게임과 웹 스페이스에 낯선 세대,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에 익숙한 사람은 스크린으로 드나드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처리하기는커녕 시선을 어디에 둘지 난감할 판이다. 그래도 여기까진 새로운 영화 세대를 위한 시도로 여기면 그만이다. 켈리의 실수는 그런 시도에 어울리는 독창적이고 유의미한 세계관을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게다가 세상의 종말을 게임하듯이 즐기라는 그의 태도에 적잖은 관객은 심사가 뒤틀리게 마련이다. 이후에도 켈리는 그래픽노블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충실한 웹사이트를 구성하면서 뉴미디어로서의 영화를 재구축하려 했는데, 사실 <사우스랜드 테일>은 그렇게 덜떨어진 영화는 아니다. 예산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았다면 저예산 SF영화로서 현재의 완성도를 보여주긴 힘들었을 것이며, 한 소년의 묵시록을 세상의 그것으로 확장하고 비선형적인 시간여행을 자유로이 상상하는 켈리의 연속 시도엔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이 없지 않다. 더욱이 자유, 진보와 보수 노선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했다지만, 민주당원인 켈리로선 정치적 소신을 선명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을 테니, <사우스랜드 테일>의 팬은 영화의 실패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공화당의 음모 탓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사우스랜드 테일>는 천생 컬트로 운명지어진 영화다. DVD는 부록으로 메이킹필름(34분) 하나만 제공하는데, 웹에 접속해 정보를 얻는 형식으로 꾸민 점이 영화와 어울릴뿐더러 그 내용도 즐기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