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주택가. 무표정의 남자가 아무 집이나 불쑥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 중 문이 열려 있던 집으로 무작정 들어간 남자는 단란한 한 가족을 몰살한다. 일부러 경찰에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잡혀갈 때 그는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웃고 있다. 의문스런 이 살인마의 이름은 사카구치. 그가 왜 살인을 일삼았는지 알 수 없지만 삶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그의 웃음을 본 한 여자가 운명처럼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평범한 회사원 교코. 그녀는 사카구치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가고 사카구치의 관선 변호사 하세가와를 통해 사카구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길 원한다. 교코는 둘 사이에 어떤 관계도 없었지만 무언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자꾸 그에게 가도록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의 자기 변론도 거절한 채 사형대로 가기를 바라던 사카구치에게 쿄코의 존재는 그가 입을 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계기를 주고, 마침내 사카구치의 마음이 교코에 의해 열린다. 하지만 남아 있는 충격의 마지막 시퀀스. 살인자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교감을 느낀 뒤 그를 찾은 여자. 단박에 김기덕의 <숨>이 떠오를 만한 이야기지만 만다 구니토시의 <입맞춤>은 김기덕의 <숨>처럼 철학적 이기보다 육감적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간다천 음란전쟁>,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등의 각본에 참여한 바 있으며 평론가로도 활동했던 감독 만다 구니토시는 미사여구 없는 그러나 차가운 ‘애정의 하드보일드’를 선보인다. 갑작스런 교감에서 시작된 이 애정의 하드보일드는 과연 인물들의 관계가 어떤 끝점에 닿게 될 것인지 시종일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전반적인 인상은 국내에서 개봉했던 그의 전작 <언러브드>와 유사한데 <입맞춤>의 끝에는 기괴한 감정의 폭발지가 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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