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깨어 있는 의식, 선동하는 이미지
2008-05-03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회고전 열리는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세계
알렉산더 클루게

우리가 보통 ‘영화’라고 말할 때, 이 어휘는 묵시적으로 ‘이야기가 있는 영화, 곧 narrative cinema’를 의미한다. 스토리가 없으면, ‘실험’, ‘급진’, 혹은 ‘순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모두 골치 아픈 예술지향적인 영화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영화의 탄생은 원래 이야기가 없는 필름의 상영이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그렇게 시작했고, 그의 동료들이 대개 그런 영화들을 들고 나왔다. 영화는 원래 이랬는데, 이를 ‘오염’시킨 장본인이 멜리에스다. 이야기를 넣고 ‘재미’를 추구했다.

‘프로그램’, 철학적 주제 다루는 영화에세이

알렉산더 클루게(1932-)는 지금도 영화는 이야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오랜만에 베니스영화제의 비경쟁부문에 <75세 알렉산더 클루게>라는 작품으로 참여하며 그는 여전히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원래 영화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로 영화를 대신했는데, 필름으로 말하고 싶은 ‘진행목록’(program)을 보여주는 게 영화라는 의미다. 그의 영화가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영상 에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려진 대로 그는 1960년대에 시작된 ‘뉴 저먼 시네마’의 이데올로그다. 감독이 되기 전에 <사적 기록>(Lebenslaeufe)이라는 사회학적 주제의 책을 발간한 학자였다.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그는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할리우드적인 상업영화가 횡행하는 독일영화 관습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세대교체를 위한 권력투쟁의 선언이었다. 클루게의 깃발 아래, 라이너 파스빈더, 베르너 헤어초크, 에드가 라이츠, 폴커 슐렌도르프, 그리고 빔 벤더스 등의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었다.

클루게는 나치의 역사는 물론이고, 아데나워로 상징되는 기독교민주당 정권을 반역사적인 현상으로 비판한다. <돌 속의 숨은 야만>(1960), <경주>(1961), <위기의 교사들>(1963) 등의 단편들은 독일사회에 대한 학자적 비판의 영상이미지다. 단편작업을 거친 뒤 그는 <어제와의 이별>(1966)이라는 장편데뷔작을 내놓는다. 바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아, 새로운 독일영화의 출발을 전 세계에 알렸다. 데뷔작에 클루게의 영화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주요한 테마들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아니타 G.(감독의 여동생인 알레산드라 클루게)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유대인 여성이다. 옷을 훔쳐 재판에 불려올 정도로 서독에선 고립되고 가난하다. 그녀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막노동을 시작한다. 주로 호텔청소 같은 힘든 일이다.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박박 닦는 모습으로 그녀의 사회적 조건이 압축적으로 제시돼 있다. 그런데 이런 험한 일 마저도 늘 있는 게 아니다.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 애인에게도 버림 받은 그녀는 넓은 서독 땅 어디에서도 자기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다.

고다르 영향 받은 몽타주 옹호자

<어제와의 이별>은 사회비판적인 감독들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별 받는 여성이주노동자의 이야기다. 클루게의 영화에는 여성이 주로 주인공이고, 그들의 차별 받는 현실이 중심 이야기다. <어느 여자노예의 부업>(1973)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 이야기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클루게 영화의 특징은 형식에 있다. 누가 봐도 그는 누벨바그의 영향, 특히 고다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몽타주 옹호자이고, 영화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적극적인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 아니타의 삶을 찍은 화면과 그녀의 삶 속에 파고든 독일사회 공동의 기억에 관한 화면들이 겹쳐 있다. 특히 나치 관련 자료화면은 이 영화뿐 아니라 클루게의 거의 모든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을 중요시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그는 현대독일사회를 여전히 나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브레히트의 영향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이 기승전결의 논리를 갖춘다거나, 연대기적 순서를 따른다거나 하지 않는다. 이는 클루게의 영화 모두에 해당된다. <애국자>(1979), <감정의 힘>(1983), <블라인드 디렉터>(1985) 등 이번의 상영작 모두가 그렇다. 대신 그의 말대로 ‘프로그램들’을 편집한다.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이 조화롭게 연결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화면과 사운드가 충돌하며 서로 방해한다. 이래선 관객이 좀체 영화 속으로 빠져들 수 없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화면에 비친 현실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감독의 요구다. 그래서 클루게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종종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비판적 읽기 속에 통찰의 쾌감이 숨어 있다. 물론 전적으로 관객 자신의 영화보기 태도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클루게의 오페라 사용이다. 왠지 오페라와 그와의 궁합은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전혀 예상 밖이다. 브레히트식의 반어적인 사용이든 혹은 관습적인 사용이든, 그의 영화에서는 오페라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데뷔작에서는 베르디의 <돈 카를로>가 주요하게 쓰였다. 아니타를 버릴 남자는 <돈 카를로>의 유명한 베이스 아리아인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를 노래 부른다. 아니타도 옆에서 함께 연습하는데, 현실은 이와 반대로 그가 아니타를 사랑하지 않는다. 오페라의 삽입은 계속하여 클루게 영화의 특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감독은 보여주고, 해석은 관객 몫으로

데뷔작 <어제와의 이별>로 단숨에 주목을 받은 클루게는 두 번째 장편 <서커스단의 예술가들>(1968)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소위 ‘68세대’의 상징적인 감독으로 떠오른다. 그를 ‘작가’로 인준한 곳은 베니스다. 여전히 여성이 주인공이고, 데뷔작처럼 어느 여성의 일기형식이며, 해설 역할을 하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수시로 등장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편집이다.

아버지로부터 서커스단을 물려받은 여성이 자기만의 혁신적인 극단을 만들려고 한다. 서커스의 ‘혁명’을 요구하는데, 당시의 보수적인 독일사회에 대한 강렬한 알레고리이다. 여전히 독일사회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풍부한 자료들이 제시된다. 그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다. 그는 보여주고 ‘우리’가 생각하도록 영화는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영화의 도입부, 히틀러의 나치군인들이 바둑판처럼 줄을 맞춰 행진하는데, 들리는 음악은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스페인어 버전이다. 일종의 브레히트적 소격효과인데, 관객에게 비판적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감독의 입장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녀의 서커스 혁신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의 편집을 보면, 독일의 정체성이 한 개인의 삶을 그렇게 구속한다는 것이다. 1차대전 전투 관련 자료화면 혹은 유사자료화면,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의 <10월>(1927)에 보이는 민중봉기가 삽입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를 보여주며, 형제살해의 갈등이 오페라 속에 얼마나 복잡하게 짜여 있는지 설명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관습적인 논리라는 것은 아예 없다. 이 모든 자료를 총체적으로 묶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77년 소위 ‘바더-마인호프’ 사건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독일의 가을>(1978)은 클루게의 기획으로 진행된 작품이다. 파스빈더, 슐렌도르프, 라이츠 등이 참여했다. 좌익극단주의자인 ‘적군파’(RAF)가 독일사용자협회 회장을 납치하고 살해한 ‘정치테러’가 벌어진 그해 가을을 ‘독일의 가을’이라고 부르는데, 영화는 그 현상을 변혁의 시각에서 관찰한다. 클루게가 만든 부분은 여전하다. 살해된 경영자의 장례식, 1차대전 관련 자료화면, 나치들, 최고경영자들, 정치가들, 독일의 현재를 여전히 나치사회라고 생각하는 어느 역사교사, 미국을 파시즘의 국가로 정의하는 어느 테러리스트와의 인터뷰 등이 몽타주되어 있다. 현대와 나치를 연결한 이런 이미지쯤 되면 클루게의 생각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 편이다.

현대독일사회와 나치의 연관성

가장 최근에 발표된 <서펀틴 갤러리 프로그램>(1995-2005)을 보면 그의 영화는 여전히 철학적 명상을 유혹하는 ‘프로그램들’의 편집으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초도 안 되는 단상 같은 이미지부터 수십 분에 해당하는 환경관련 주제의 가짜 인터뷰(배우가 환경을 파괴하는 축산업자로 나온다), 그리고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해설이 연결된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이미지들이 제시돼 있는데, 극장문을 나서면 그들이 전체로 종합되는 경험도 한다. 클루게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하며, 그런 자신의 의식을 이미지로 선동한다. 투쟁하는 사색가 클루게의 철학적 이미지가 현재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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